정의선 선봉 나서자 韓 기업들 대미 투자 뒤따른다 … 반도체·철강에 방산까지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로 하면서 국내 주요 대기업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속속 미국 현지 투자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2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24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대 속에서 210억 달러(약 31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투자 계획에는 현대차의 완성차 생산 체계 확대, 현대제철의 자동차 강판 생산용 전기로 신설, 에너지 협력 등이 포함됐다.

정 회장의 통 큰 투자 결정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대적인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투자 발표 행사에서 "위대한 기업인 현대와 함께하게 돼 큰 영광"이라며 "현대차는 미국에서 생산해 자동차를 만들 것이며, 그 결과 관세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대규모 대미 투자 결정에 국내 글로벌 기업들도 추가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할지 이목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달 2일부터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현재 대미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업계로는 반도체가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인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시사한 바 있다. 

특히 이미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를 확대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삼성전자는 앞서 바이든 정부 시절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 2곳과 R&D 시설 1곳 등을 짓기로 하면서 37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인디애나주에 HBM 패키징 공장과 R&D 시설 설립을 발표하면서 38억7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단 미국 투자 계획을 변함없이 그대로 추진하되, 통상 정책 동향을 예의주시면서 다각도로 시나리오를 분석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 추가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에 큰 부담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공장 증설에 추가로 자금을 대거 투입하기보다는 공장 가동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 등이 대응 방안으로 거론된다.

포스코도 미국이 수입산 철강에 대해 관세장벽을 높이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이날 현대제철이 58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연간 270만 톤(t) 규모의 일관 제철소 건설을 발표한 만큼, 포스코 역시 친환경 철강 제품의 미국 현지 생산 검토도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포스코는 미국에 '상공정' 분야 투자를 검토 중이다. 상공정은 고로나 전기로를 통해 철광석을 녹여 반제품을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이밖에 한화도 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위성, 발사체, 자주포 등 국산 무기 체계의 미국 현지 생산과 수출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도 최근 327억 달러(48조 원) 규모의 미국산 여객기·엔진 구매 계획을 공개했다.

홍지상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미국도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실제 자국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의미를 두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움직임이 다른 기업들로도 이어진다면 미국도 (대한국 관세 정책) 방향에 수정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