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韓 쌀·소고기 줄줄이 문제 삼아 농식품부 "美, 협의 표명 없어 … 예의주시"한우협회 "한우농가에 심각한 위협" 반발 농업 협상카드로 삼아 비농업부문 요구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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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가운데 한국에 가장 높은 25%의 상호관세율을 적용했다. 한미 FTA로 관세율은 사실상 0%대지만 한국이 각종 비관세장벽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상호관세 발표 과정에서 직접 쌀 시장 개방 문제를 언급하는 등 농업 무역장벽을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국내 농축산업도 트럼프발 관세 영향권에 들어가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8일 미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20개국과 포괄적 FTA를 체결한 상태다. 한국에 매겨진 25%에 이르는 상호관세율은 미국이 FTA를 맺은 국가 중 앞서 관세를 부과한 멕시코, 캐나다와 함께 가장 높은 수준이다. 호주, 칠레, 싱가포르와 중남미 국가 등 11개국은 기본관세율 10%만 부과됐고 이스라엘(17%), 니카라과(18%), 요르단(20%) 등도 한국에 미치지 못했다.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높은 상호관세율을 적용한 근거로 비관세장벽을 콕 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쌀에 대해 중국은 이른바 '쿼터 초과 관세' 65%를 부과하고 한국은 사실상 항목에 따라 50%에서 무려 513%까지 다르게 부과하며 우리 친구인 일본은 700% 관세를 부과한다"며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미국산 쌀과 다른 농산물이 자국 시장에 들어오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높은 불만을 드러냈다.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은 저율관세할당(TQR) 물량 40만8700톤에 대해서는 5% 관세를 적용한다. 이 중 미국에 할당된 TQR 물량은 13만2304톤이다. 중국(15만7195톤) 다음으로 가장 많다. TQR 물량을 초과해 수입하는 쌀에는 513%의 관세율이 적용되나 미국에서도 할당 물량 수준 내에서 수출하고 있다.한미 FTA 협상과 재협상에서도 한국 쌀은 양국간 합의로 제외했던 품목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쌀 관세를 저격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산 쌀에 50~513% 관세를 부과한다고 주장했는데 쌀 관세 50%의 근거는 찾을 수 없다.농식품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관세나 그밖의 조치에 대해 협의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산업분야와도 연결이 되어 있는 만큼 일단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TQR 물량 조정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물량 조절은 미국과의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WTO 양허표 상에 기제된 회원국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수정하는데는 굉장히 많은 어려움이 뒤따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앞서 USTR이 전 세계 무역 상대국의 무역장벽을 망라한 '2025 국가별 무역 평가 보고서(NTE)'에서는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을 문제삼았다. 보고서는 2008년 한미간 소고기 시장 개방 합의 당시 한국이 30개월령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을 과도기적 조치로 규정하고 16년간 유지됐다고 비판했다. 매년 발간하는 NTE보고서에서는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제한 조치에 대한 문제제기는 단골 이슈다.농식품부는 이와 관련해서도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농업계 등에서 지속 제기한 의견을 기술한 것으로 미국 정부의 협상 요청은 없었다는 입장이다.업계 안팎에서는 쌀 관세나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등이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부 명예교수는 "중국, 일본, 대만은 미국산 소고기 30개월령 제한을 해제한만큼 한국에 미국산 소고기 월령조치 해제를 압박할 수 있다"며 "만일 월령 제한이 해제될 경우 농가들을 다독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한우농가들은 반발하고 있다. 서영석 전국한우협회 정책국장은 "한미 FTA에 따라 내년부터 미국산 소고기 관세가 0이 되는데다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까지 허용되면 한우농가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며 "광우병 파동 등 부정적 인식 때문에 미국산 소고기는 물론 소고기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이어져 한우 소비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민감한 농산물 비관세 장벽을 문제삼아 실제로는 제조업 등 비농업부문을 얻어내려 하는 전략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은 "쌀 관세를 낮추더라도 중국산이나 호주산에 비해 미국 캘리포니아산 쌀의 경쟁력이 낮고, 소고기 30개월령 제한 해제도 간접적으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30개월령 이상 소고기가 유통되는게 거의 없어 미국 측 수출 확대 등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서 원장은 "한국으로서는 굉장히 민감한 쌀, 소고기 문제를 협상카드로 삼아 실제 목적인 제조업 등 비농업분야의 투자 유치,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요구할 공산이 높다고 본다"며 "현재 한국은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인만큼 앞서나가면 손해로 중국, 유럽연합(EU) 등 대응을 지켜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