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1.9조·SKB 매각대금까지… 유동성 사상 최대 14년째 멈춘 신사업… M&A·적기투자 전략 사라져트러스톤 "복귀 촉구"... 간암 투병이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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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이 사상 최대 수준의 유동자산을 확보했지만, 오너 부재 장기화로 미래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호진 전 회장이 건강 문제로 경영 일선에 나서지 못하면서, 인공지능(AI) 등 산업 재편 흐름에 적기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15일 태광산업 사업보고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2조121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6.3% 감소한 수치다. 영업손실은 271억원을 기록했고 총포괄손실은 125억원에 달했다. 다만 계속영업 기준 당기순이익은 2208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수익성은 다소 주춤했지만 재무 여력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2024년 말 기준 유동자산은 1조9654억원이며,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 1조4344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오는 5월 14일에는 SK텔레콤으로부터 SK브로드밴드 지분 매각대금이 약 1조원 유입될 예정이다. 이로써 그룹이 보유한 총 유동성은 3조원 규모에 달하게 된다.애초 태광산업은 SK브로드밴드 지분 16.75%를 SK텔레콤에 매도하면서 계약대금으로 7776억원을 체결했으나 투자금 대비 내부수익률(IRR) 3.5%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등으로 SK브로드밴드로부터 배당금 약 1200억원을 수령하게 돼 총 8976억원을 받게 된다.그러나 이 같은 자금력을 신사업 투자로 연결하는 데는 제약이 있다.태광그룹의 실질적인 총수인 이호진 전 회장은 2011년 간암 3기 판정을 받고 간 절제 수술을 받은 이후 줄곧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이후 사법리스크를 겪었으나 광복절 특사로 복권되며 경영복귀 가능성을 높인 상황이다. 다만 건강 회복이 더뎌 복귀 타이밍을 기약할 수 없다.이 전 회장이 경영에 나서지 못하는 동안 태광산업의 신규 투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한때 공격적인 인수합병(M&A)과 적기 투자 전략으로 재계 순위 36위까지 올랐던 태광그룹은 현재 52위로 밀려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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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광산업 이호진 전 회장 ⓒ뉴데일리
10년 넘게 이어온 전문경영인 체제가 명확한 투자 의사결정이나 실행력에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전 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지난 10여년 간 신규 투자 결정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이 마저도 신규 투자 보다는 기존 투자 설비를 확대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8월, 총 1500억원을 투입해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 내 청화소다 생산공장 증설 정도다. 해당 투자로 기존 연간 6만6000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2027년까지 13만2000톤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아라미드 섬유 생산능력도 연 5000톤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회사는 이를 통해 고부가 소재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이러한 투자는 신사업 진출보다는 기존 사업군의 연장선에 가까워, 국내 대기업들이 AI, 전고체 배터리,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태광의 행보는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평가다.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최근 이 전 회장의 등기 임원으로 재선임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며 지배구조 개선을 촉구했다.이에 태광산업 측은 "이 전 회장이 상근 임원으로 경영활동을 수행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의료진의 권고가 있었다"면서 "당분간 비상근 고문으로 자문 역할을 맡을 것"이라 밝혔다.재무 여건이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태광이 산업 전환기 속에서 투자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한 재계 관계자는 "유동자산이 3조원이면 어떤 사업이든 시작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국내 기업 중 이 정도 유보 자금을 보유한 곳은 많지 않다. 태광산업이 다시 도약하려면 이호진 전 회장이 복귀해 과감한 투자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