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美 규제에 구형 AI 가속기 대중 수출 막혀B300 양산 시점 내달로 앞당겨 … HBM3E 12단 첫 적용SK하이닉스, 12단 선두 진입 … 마이크론도 이름 올려삼성전자 퀄테스트 '아직' … 시간적 여유 부족 조바심
  • ▲ 삼성HBM3E 12단 제품 이미지 ⓒ삼성전자
    ▲ 삼성HBM3E 12단 제품 이미지 ⓒ삼성전자
    엔비디아가 차세대 AI(인공지능) 반도체인 'B300'을 내달 양산키로 하며 여기에 처음 적용되는 HBM(고대역폭메모리)인 'HBM3E 12단'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엔비디아 공급망에 진입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공급 일정을 소화하기에 분주한 반면 아직 퀄테스트(품질 검증)를 마치지 못한 삼성전자는 조급해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29일 반도체업계와 대만 공상시보 등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반도체 '블랙웰 울트라' 시리즈에 적용되는 GPU(그래픽저장장치) 'B300' 양산 시점을 내달로 앞당기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작인 B200에서 설계 결함 등의 문제가 발생해 올해 블랙웰 울트라 출시도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제기되던 가운데 엔비디아가 강행군에 나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열린 엔비디아 자체 행사인 'GTC 2025'에서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B300 출시 시점에 대해 "올 하반기"라고 발표한 바 있지만 여기서 몇 달이나 앞당겨 출시하는 방안을 추진해 설계나 품질 관련 이슈를 정면돌파하는 모습이다.

    대만 공상시보는 엔비디아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중국 수출 전용 제품인 'H20'이 미국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 막혀 수출길이 막히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B300 조기 출시에 힘을 싣는 것으로 분석했다. 더불어 블랙웰 울트라 시리즈의 서버용 제품인 'GB300' 역시 올해 안에 양산이 시작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B300을 시작으로 GB300까지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블랙웰 울트라 시리즈가 예상보다 빨리 시장에 투입될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여기에 HBM을 공급하는 메모리 3사의 발걸음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엔비디아의 블랙웰 시리즈에 들어가는 HBM은 AI 반도체업계 최선단 제품의 성능과 경쟁력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차세대 HBM의 데뷔무대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메모리 공급사들도 엔비디아 차기작에 들어가는 HBM에 공을 들일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현재 대세로 자리잡은 5세대 HBM인 'HBM3E'의 최대 단수인 12단 제품을 처음 적용한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다. 이미 메모리 3사는 12단을 넘어 16단 제품까지 양산 준비를 마쳤을 뿐만 아니라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6세대 HBM인 'HBM4'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에 돌입한지 오래다.

    하지만 엔비디아 신제품을 통해 HBM3E 12단 제품이 처음 대규모로 활용되면서 HBM 시장 대세가 12단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된다. 12단 제품은 기존 8단 대비 50% 더 높은 용량을 제공하고 동일한 패키지 두께에서 36GB 용량을 구현해 기존보다 훨씬 더 고성능 AI 모델을 가동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데다 전력 소비량도 20%나 줄여 AI 수요를 더 가속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HBM 제조사 수익 측면으로도 12단 제품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업계 추산으론 HBM3E 12단 제품이 8단 대비 약 30~50%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량이 늘어나고 성능이 향상된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제조 방식이 더 복잡해진다는 점에서 12단 가격은 기존 제품들 보다 높은 수준에서 정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 ▲ SK하이닉스 HBM3E 16단 구조 모형 ⓒ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 HBM3E 16단 구조 모형 ⓒSK하이닉스
    엔비디아 B300에 이미 12단 제품 공급을 확정지은 SK하이닉스는 조기 출시 상황을 가장 반길 수 있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는 최근까지도 B300에 HBM3E 12단을 단독 공급하는 곳으로 이름을 올렸고 일찌감치 양산에 돌입해 공급을 개시한 덕분에 엔비디아가 예정보다 일찍 제품을 출시해도 가장 안정적으로 HBM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꼽힌다.

    마이크론은 불과 지난달 엔비디아에 공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보단 뒤졌지만 8단에 이어 12단 제품도 공급을 확정지었고 발열이나 품질 측면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어 엔비디아와의 관계를 이어갈 가능성은 큰 편이다.

    문제는 아직 퀄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삼성전자다. HBM에서 경쟁사 대비 뒤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삼성 입장에선 이번에 HBM3E 12단으로 엔비디아 공급망에 입성하는 것은 상당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 동시에 HBM 사업 명운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예상보다 엔비디아 신제품 출시 일정이 앞당겨지면서 삼성이 퀄테스트를 마치고 양산을 개시하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더 부족해지면서 삼성에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라는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