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쪼개 대통령실 산하 기획예산처 구상 재정의 정무적 이용·표퓰리즘 정책 심화 우려 이재명표 확장 재정사업 브레이크 없어지는 셈 "제왕적 대통령제 강화되고 재정건전성 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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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기획재정부 개혁을 잔뜩 벼르고 있다. 이 후보는 기재부를 두고 '정부 부처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며 기재부 분리 구상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기재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산해 예산 편성 기능을 대통령실로 이관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이를 두고 이 후보가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예산권까지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본소득, 지역화폐 등 적극적 재정 정책을 주장해 왔던 이 후보는 그간 기재부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재정 투입에 제동을 걸면서 수차례 마찰을 빚어 왔다. 이 후보가 '눈엣가시'로 여겨온 기재부 권한을 분산시켜 힘을 빼겠다는 의도로 분석되는 이유다.11일 관계부처와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의 정부조직개편 대상의 일순위로 기재부가 꼽힌다. 예산 편성과 재정 정책에 대한 권한을 가진 현재의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쪼개겠다는 게 민주당의 구상이다.특히 기재부의 예산 기능을 기획예산처로 분리하고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실 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기재부에서 예산 편성권이 분리되면 기재부의 위상이 크게 약화하는 반면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실 산하에 설치하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이 후보가 기재부 힘 빼기에 나서려는 데는 기재부의 건전재정 기조가 확장재정 필요성을 강조해온 이 후보의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재부의 힘이 강할수록 이재명표 정책인 기본소득, 지역화폐 등 확장적 재정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이 후보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최고 대선 경선 득표율인 89.7%로 당 내 대통령 후보로 확정돼 당권을 사실상 완전히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욱이 민주당은 원내 180석으로 국회 의석수가 과반이 넘는 거대 정당이다.이에 만일 민주당이 정권을 잡게돼 대통령실 산하에 기획예산처를 두는 것이 현실화할 경우, 대통령실이 당권과 입법권에 이어 예산권까지 장악해 무소불위 권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포퓰리즘 정책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최근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재명의 기재부 해체 발상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달라는 격"이라며 "당권을 장악한 채 '아버지'로 칭송받고, 거대 의석수를 등에 업고 입법권까지 틀어진 뒤 이제는 나라 곳간 열쇠까지 움켜쥐려 한다"고 비판했다.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급기야 이 후보는 국가 예산까지 직접 주무르는 공약을 추진 중"이라며 "국민 혈세를 포퓰리즘의 도구로 삼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으로,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기재부를 해체해 마음껏 돈을 뿌리겠다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
- ▲ 기획재정부 중앙동 청사. ⓒ연합뉴스
이같은 정치권의 비판과 우려 속에서도 민주당 내부에서는 기재부 개편과 관련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논의에 들어갔다. 지난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경제부처 개편 토론회'를 열고 기재부 쪼개기 방안을 논의하며 기재부를 성토했다.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기재부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경제부처 간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구조로 개편하는 것은 필요한 과제"라고 말했고,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기재부의 기능과 역할을 최대치로 끌어올리 수 있는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기재부 개편을 별렀다.민주당은 기재부 개편 주장을 뒷받침하는 법안도 잇따라 발의했다. 오기형 의원은 기획예산처를 국무총리 산하에 신설해 기재부 예산기능을 분리하고 기재부 명칭을 재정경제부로 변경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허성무 의원은 현행 기재부를 기획예산부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예산기능을 대통령실로 이관하는 안에 대해 재정의 정무적 이용 우려가 불거진다. 재정건전성을 우선하는 기재부 대신 대통령이 예산 편성권을 행사하게 되면 장기적 비전 아래 추진되는 사업보다 표를 의식한 표퓰리즘 사업에 예산이 쏠릴 수 있어서다.신 수석대변인도 앞선 논평에서 "전문가들은 정부 내 합리적 조정과 협의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 예산 편성 권한을 대통령이 가지게 된다면 견제 기능을 상실해 포퓰리즘 예산에만 치중할 수 있고 각 부처는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는 식으로 예산을 정치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고 꼬집었다.기재부 2차관 출신이자 국회 기재위원장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도 "600조 원이 넘는 국가 예산권이 대통령실로 이관되면 국가 재정이 단기적 정치 목적에 따라 남용될 위험이 크다"며 "대통령에게 곳간 열쇠를 쥐여주고 정부, 국회, 국민 그 누구도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전문가들도 사실상 대통령이 예산 편성을 주도하게 되면 재정건전성에 소홀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이 베네수엘라처럼 된다는 '대네수엘라' 얘기가 단순한 우려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통령이 예산권을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형태가 되면 견제와 균형을 담보하기 어려워지고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이 후보가 당선돼 대통령실이 예산권을 쥐게되고 민주당도 다수당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면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가 더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민주당의 기재부 개편구상이 현실화해 예산편성권을 떼내게 되면 기재부의 기존 정책 수립과 조정 기능은 크게 약화될 것이란 전망이다.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재부에서 예산편성 기능을 분리하게 되면 기재부가 행정부를 총괄할 힘이 빠지게 되고, 기재부 장관인 경제부총리도 역할이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강 교수도 "기재부에서 예산권을 떼내면 사실상 기재부는 큰 그림만 그리는 셈이 되서 약화될 수 있다"며 "앞으로 중장기적인 정책 방향을 설정해도 각 부처들이 이를 따라오게 할 유인이 사라지게 돼 기획 능력의 실행성이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