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등 스테이블 코인, 전자화폐 수준 규정 … 강력 규제 체계 도입도한은 vs 금융위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두고 주도권 싸움민주당 디지털자산기본법 발의 … 금융위에 인가 권한 부여한은 “우리가 권한 가져야 … 중앙은행에 실질적 법적 권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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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대신 코인’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법정화폐와 1대1로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은 연 3~6%에 달하는 고금리와 간편한 사용성을 무기로 전통 금융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은 인가제와 100% 준비금 규제로 제도화에 속도를 내는 반면, 한국은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간 주도권 다툼 속에 제도 정비가 뒷전으로 밀려 있다. 계좌 대신 디지털 지갑, 예금 대신 코인을 선택하는 시대. 국부 유출과 금융 주권 훼손을 막기 위한 한국형 제도화 전략이 시급하다. 스테이블 코인의 위협과 기회, 글로벌 규제 흐름,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편집자주]최근 통화 가치에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관련 규제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용자가 확대되고 자금 유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다.이미 EU(유럽연합), 미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국은 이미 법정화폐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을 전자화폐 수준으로 규정하고, 발행 인가제와 100% 담보 확보 의무 등 강력한 규제 체계를 잇달아 도입했다.반면 한국은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주도권 선점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며 법제화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선진국 발 빠른 대응 … “100% 담보·외부 감사 필수”미국과 EU 등 금융 선진국들은 이미 스테이블 코인 제도 정비에 발빠르게 나섰다. EU는 가장 먼저 지난해 시행된 암호자산시장법(MiCA)은 스테이블 코인을 ‘전자화폐토큰(EMT)’으로 정의하고 △인가받은 기관만 발행 가능 △준비금 100% 확보 △외부 회계감사 및 백서 등록 의무 등을 강제하고 있다. 역내 거래소 상장도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만 가능하다.미국도 무허가 은행업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을 별도로 인가하고 준비자산 운용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들 발의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국제 결제 수단으로 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미국 상원에서는 ‘지니어스 액트’, 하원에서는 ‘스테이블 액트’ 등 법안들이 논의 중으로,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권 편입을 위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해당 법안이 향후 몇달 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본은 지난 2023년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은행·전자결제업자만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담보 자산은 반드시 신탁회사에 100% 예치하도록 했다. 홍콩은 월별 공시 의무와 함께 담보 요건을 강화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도 ‘결제서비스법(PSA)’에 따라 인가제와 AML(자금세탁방지) 체계를 확대 적용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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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금융위 vs 한은 ‘샅바싸움’금융 선진국들은 이미 스테이블 코인 규제 체계가 마련하거나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한국은 발행뿐 아니라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허용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스테이블 코인 인가 주체를 놓고 벌이는 ‘주도권 다툼’이 법제화 논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금융위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초안에 발행 인가권을 금융위가 갖는 형태로 설계했다. 김소영 전 금융위 부위원장을 주재로 연 가상자산위원회를 통해 후속 입법을 주도했다.지난 16일 퇴임한 김소영 전 금융위 부위원장은 “가상자산위원회를 만들면서 가상자산 정책들도 많이 진전됐다”며 “향후 2단계 법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2단계 입법 논의에 착수한 상태다.민주당이 최근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스테이블 코인 발행시 최소 50억원 이상의 준비금 요건과 금융위인가를 요구하면서 주도권을 금융위가 가지도록 초안에서 명시했다.다만 한은은 "중앙은행이 스테이블코인 인가 단계부터 실질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고경철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 등 중앙은행의 정책 수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발행자 진입 규제와 관련해 인가 단계에서 중앙은행에 실질적인 법적 권한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업계에서는 스테이블 코인 주도권을 놓고 당국 간 미묘한 기싸움이 이어지면서 국내에서는 해외 스테이블 코인이 무제한 유입되는 반면,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은 법적 근거조차 마련되지 않아 사실상 ‘방치 상태’라고 평가했다.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스테이블 코인은 지난 10여년간 가상자산 시장에서 널리 사용되며 신뢰를 쌓았다”며 스탠다드차타드나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스테이블 코인 사업에 관심이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이어 "국내에서도 스테이블 코인 수요는 가상자산 거래 용도 등으로 계속 있었다”며 “최근 글로벌 트렌드에 힘입어 가상자산 거래 용도가 아닌 용도의 스테이블 코인 사용도 주목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금융권 관계자는 “규제 권한을 두고 금융당국과 중앙은행 간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최근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급성장하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규제 체계 정비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만큼 관련 입법 및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김효봉 태평양 변호사는 "미국은 디지털자산 관련 제도 정비를 올해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고 EU도 이미 MiCA을 시행 중"이라며 "한국도 글로벌 추세에 맞춰 2단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