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안팎으로 빨강 파랑 래커칠 흔적 여전 … 학교 추산 피해액 54억원형사고소 취소했지만 재물손괴 등 혐의로 경찰 수사는 진행 중피해 복구 위한 정상화위원회 가동해 구성원 간 의견 조율해야운동장에 방치된 과 잠바 쓰레기도 논란 … 학생들 "세탁 요구"에 몰염치 지적도
  • ▲ 지난해 11월 24일 동덕여대 백주년 기념관 앞이 남녀공학 전환 반대 래커칠로 가득 차 있다.ⓒ연합뉴스
    ▲ 지난해 11월 24일 동덕여대 백주년 기념관 앞이 남녀공학 전환 반대 래커칠로 가득 차 있다.ⓒ연합뉴스
    지난 25일 찾은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캠퍼스는 마치 거대한 캔버스 같았다. 다만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었다. 빨강 파랑 검정 등의 래커로 쓴 조악한 글씨가 건물들 안팎으로 외벽, 바닥 가리지 않고 심지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까지 어지럽게 도배돼 있었다. 학교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낙서장 같은 느낌이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지난해 11월 학교 측이 남녀공학 전환을 준비하면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며 24일간 본관을 점거하고 교내 시설물에 래커칠을 하는 등 시위를 이어갔다. 사태는 지난달 15일 김명애 총장이 담화문을 통해 점거 농성을 벌인 총학생회장 등 21명에 대한 형사고소를 모두 취소하면서 갈등이 봉합되는 양상이다. 당시 김 총장은 "반목과 불신, 학교 이미지 실추 등 견디기 어려운 내·외부 상황을 체감하면서 기존에 취한 법적 조치를 취하하기로 했다"며 "처벌보다는 대화와 포용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입장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 ▲ 래커칠 된 약학관 입구.ⓒ뉴데일리DB
    ▲ 래커칠 된 약학관 입구.ⓒ뉴데일리DB
    하지만 학내 풍경은 아직 달라진 게 없다. 계단 내벽에는 래커 글씨를 지우려고 붙여놓은 흰색 종이들이 너풀대고 있었다. 방학을 맞아 오가는 학생마저 적은데 비까지 내리다 보니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학교 측이 추산한 피해 금액은 최대 54억 원에 이른다. 학교 측은 아직 시설물 복구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하지 않은 상태다. 조만간 이른바 정상화위원회를 구성해 피해 복구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론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한 관계자는 "피해 복구 예산에 결국 학교 등록금 등이 쓰일 수밖에 없는데 점거 농성에 참여하지 않았던 학생들이 반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논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학내 구성원이 진솔하게 소통하며 원만한 해결책을 찾기를 바란다.
  • ▲ 운동장에 쓰레기처럼 방치된 과 잠바들.ⓒ뉴데일리DB
    ▲ 운동장에 쓰레기처럼 방치된 과 잠바들.ⓒ뉴데일리DB
    그런데 이날 학교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운동장 한편에 기다랗게 늘어서 쌓여있는 수백 벌의 과 잠바 무더기였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것 같은 이 옷들은 비에 젖고 오물이 묻으면서 쾨쾨한 냄새까지 났다.

    이 옷들의 주인은 시위에 참여했던 동덕여대 재학생은 물론이고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내 일처럼 달려와 함께 반대 목소리를 냈던 다른 여대 학생들도 적잖게 있다는 게 학교 측의 설명이다. 학교와 학생 측은 고소 취하와 함께 '동덕여대 발전을 위한 학교-학생 협약서'도 발표한 상태인 만큼 이 옷들은 지금쯤 각자 주인을 찾아갔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데도 수거해가지 않은 쓰레기처럼 방치돼 학교를 찾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유는 뭘까.

    학교 측의 설명은 충격적이다. 학교 측에서 옷들을 치워달라고 했더니 세탁해서 돌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점거 농성이나 래커칠은 젊은 혈기에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했다고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세탁 요구는 도를 넘는다. 래커칠은 뒤늦게 후회하며 지우려 해도 물리적으로 여의치 않은 측면이 있다. 옷은 아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옷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세탁을 요구했다니 염치가 너무 없다. 진정 동덕여대의 정상화를 응원하고 바란다면 상흔을 빨리 지울 수 있게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묻고 싶다. 저 옷들은 누가 치워야 하는 걸까?
  • ▲ 운동장에 버려진 과 잠바들.ⓒ뉴데일리DB
    ▲ 운동장에 버려진 과 잠바들.ⓒ뉴데일리DB
    한편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동덕여대 사태와 관련해 최근 재학생 등 22명을 업무방해, 퇴거불응, 재물손괴 등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은 점거 농성 사건과 관련해 고소·고발, 진정 등 총 75건을 접수해 38명을 입건했는데, 이 중 16명에 대해선 증거불충분 등으로 불송치했다.

    학교 측은 지난달 15일 형사고소를 취소했지만, 재물손괴와 업무방해 등 혐의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형사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아 경찰이 수사를 이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