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화 논의 급물살 … 운용 주도권 민간 → 노사로 이동은행·보험 "수익모델 붕괴 우려" … OCIO 약한 은행 비상
-
- ▲ ⓒ금감원,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제도 도입 20년이 지났지만 연금화율은 여전히 제자리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퇴직연금의 연금 수령 비율은 계좌 수 기준 13%(7만4000좌), 금액 기준으로도 57%에 그친다. 가입자 87%가 여전히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는 셈이다. 이름만 ‘연금’이지 실상은 ‘퇴직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정부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본격 추진 중이다. 퇴직연금 운용 방식을 계약형에서 기금형으로 전환하고, 공공성과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은행과 보험사를 중심으로 한 기존 금융권은 “수익모델이 붕괴될 수 있다”며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기금형 도입은 시간문제 … 정부·국회·정당 모두 한목소리”기금형 퇴직연금은 기존처럼 기업이 금융사와 직접 계약하는 ‘계약형’이 아니라 사용자와 근로자가 공동으로 구성한 기금운영위원회가 자산 운용 방향을 결정하고, 전문 운용기관(OCIO)에 자산을 위탁하는 구조다. 국민연금처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정부는 올해부터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점차 중소기업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전문가 자문단을 꾸려 제도 설계를 진행 중이다.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제는 기금형 도입 여부보다 시기와 방식이 쟁점”이라며 “업계도 제도 변화는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은행권 “시장 주도권 잃을라” … 증권사 대비 대응력도 낮아기금형 전환이 현실화되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곳은 은행권이라는 전망이 많다. 기존 계약형 제도는 금융사가 상품 설계와 고객 유치, 운용 수수료 확보 등 모든 단계에 개입하며 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기금형에서는 사용자·근로자 위원회가 운용사를 공모로 선정하고, 수수료 역시 경쟁입찰로 정해진다. 수익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셈이다.특히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역량이 부족한 은행권은 기금형 전환 이후 경쟁력이 급격히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반면 증권사들은 이미 연기금, 공적기금 운용 경험이 많고, 최근에는 연기금투자풀 입찰을 앞두고 OCIO 조직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예컨대 NH투자증권은 기관커버리지본부를 OCIO 전문조직으로 개편했고, KB증권도 OCIO 솔루션 조직을 통합해 기능을 강화했다. 반면 은행은 자산운용에 직접 나서기 어려운 구조여서 주로 수탁과 자문 업무에 머물고 있다.◇디폴트옵션 개편·중도인출 제한 등 제도 전면 손질 예고정부는 기금형 도입과 함께 퇴직연금 제도 전반의 개편도 예고했다. 우선 연금 수급을 유도하기 위해 일시금 수령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중도인출 요건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또한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도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1분기말 기준 디폴트옵션을 선택한 가입자 중 87%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투자해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평가다.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타깃데이트펀드(TDF)나 장기 분산투자형 펀드를 중심으로 디폴트옵션 구성 상품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일각에서는 퇴직연금 기금을 ‘퇴직연금관리공단’ 같은 공적 기관이 관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신중론이 만만치 않다. 공적 기금으로 전환될 경우 손실 보전이나 정부의 재정 개입에 대한 기대가 형성될 수 있고, 국민연금처럼 또 다른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허석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퇴직연금이 머지않아 국민연금보다 큰 기금이 될 수 있다”며 “단일 공적기구 중심보다는 민간 경쟁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유연한 기금형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