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3대 요구안 의결 … 복귀 명분 쌓는 의료계국민청원 "특혜 없는 복귀, 사과부터" 목소리정은경 "수련협의체 검토" … 신뢰 회복은 여전히 과제봉합의 최종 시나리오는 조건이 아닌 의사와 환자가 손 맞잡는 것
  • ▲ ⓒ뉴데일리DB
    ▲ ⓒ뉴데일리DB
    의대생 복귀가 현실화됐고 전공의 복귀도 9월을 목표로 구체적인 논의가 오가고 있다. 정부는 의료현장 정상화를 강조하고 의료계는 뒤늦게 복귀의 명분을 찾는 모양새다. 겉으로는 정상화 수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특례'라는 덫이 걸려 속내는 복잡하고 어지럽다. 이번 사태가 남긴 상처가 아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상처의 중심에는 늘 환자가 있다.

    의정사태는 의료계와 정부의 힘겨루기였던 동시에 환자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진료가 끊긴 현장에서, 수술이 미뤄진 병상에서, 생명의 위협 앞에 놓인 수많은 얼굴이 논의에서 사라졌다. 그 사이 의료계는 명분을 쌓았고 현 정부는 봉합이라는 명예를 쥐려 하고 있다. 정작 희생자는 또다시 방치됐다.

    핑계는 길었다. 전 정부 탓, 전임 장관 탓, 행정 공백 탓. 그러나 사죄는 없었다. 의료계는 복귀를 '결단'이라 불렀고 정부는 이를 '수습'이라 포장했다. 누구 하나 먼저 머리 숙이지 않았다. 환자는 기다렸다.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더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의료계를 기다렸다. 왜냐. 의료란 결국 환자와 의사의 신뢰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뢰가 없다면 어떤 제도도 무의미하다.

    복귀보다 앞서야 할 건 사죄다.

    젊은 의사들은 윤석열 정부 핑계를 대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솔직히 이재명 정부에서도 기조는 동일하다. 숫자만 구체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역의료 살리기, 필수의료 강화, 의대정원 확대 등 의료개혁은 이미 국민과 공유된 의제다.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속도와 실행의 문제만 남은 것이다.  

    이 와중에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 임시대의원총회를 통해 3대 요구안을 의결했다. 필수의료 정책 재검토, 수련환경 개선,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다. 정부에 복귀의 명분을 갖췄다고 선언한 셈이다. 복귀의 구체적 조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정부는 이를 수용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다. 복귀의 명분은 생겼지만 환자를 향한 사죄가 없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의료계는 국민 앞에 고개 숙이지 않았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말했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다"고. 하지만 의료계는 요구안부터 내밀었고 정부는 복귀라는 형식적 해답만 찾고 있다.

    국민 눈높이는 다르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는 '의대생·전공의 복귀 특혜 반대'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가장 큰 피해는 국민이었다"고 단언했다. "책임을 방기하고도 아무런 책임 없이 돌아오는 일이 반복된다면 의료계 신뢰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며 "의료계와의 협의는 필요하지만 정책을 결정할 주체는 정부와 국회이며 국민"이라고 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대화를 통해 전공의 등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균형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수련협의체 구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조차 불발된 현 시점에서 복지부 리더십은 공백 상태에 가깝다. 복귀 이후 수련환경 개선이건 법적 부담 완화건 논의가 표류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이상의 변명이나 절충이 아니다. 환자 앞에 먼저 사죄하고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진정성 있는 모습이다. '환부작신(換腐作新)'이라는 말처럼 썩은 것을 도려내고 새롭게 바꿔야 한다. 전 정부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의료계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신뢰가 썩었는데도 그대로 덮고 넘어가려 한다면 결국 환부는 더 깊게 곪아간다.

    이번 사태를 끝낼 방법은 하나다. 복귀를 선언하며 반쪽짜리 봉합을 추진하기에 앞서 의대생과 전공의, 교수와 의료단체가 환자를 찾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다"고 약속하는 장면. 이 장면 없이는 의정 갈등의 완전한 종결은 없다. 명분이 아니라 사죄가 먼저다. 그 사죄 없이는 복귀도 협상도 어떤 정상화도 국민에게 신뢰받지 못한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의료계는 환자의 신뢰를 어디쯤 돌려놓았다고 생각하는가. 정부는 환자의 불안이 얼마나 해소됐다고 믿는가. 환자는 여전히 의료계를 의심하고 의료계는 여전히 정부를 탓하고 있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쌓인다. 그 행동이란 결국 환자 앞에 서서 머리 숙이고 손을 내미는 일이다.

    생명을 외면한 시간이 있었다. 핑계는 이제 필요 없다. 이번 사태의 마침표는 오직 하나, 사죄로 끝내야 한다. 복귀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 환자들의 눈물을 닦는 행위로 이어져야 한다. 신뢰는 다시 쌓는 것이지 요구안 몇 줄로 회복되는 게 아니다.

    의료계와 정부는 국민 앞에 환자 앞에 그 장면을 보여야 한다. 사죄 없는 복귀, 약속 없는 협상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