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보건·중독·라이프스타일 융합 연구로 '우수학위논문' 선정"시각장애인의 생활습관과 정신건강을 반드시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인생 상담하듯 450명 인터뷰하며 생활습관과 만성질환 연관성 규명2004년 보건학석사로 시작, 올해 환갑 선물로 6번째 학위 안기며 자축"배움을 즐기며 기회 올 때마다 잡았더니 새로운 길이 열렸다"
  • ▲ 삼육대 학위수여식에서 윤선미 박사(오른쪽)가 제해종 총장과 우수학위논문상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삼육대
    ▲ 삼육대 학위수여식에서 윤선미 박사(오른쪽)가 제해종 총장과 우수학위논문상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삼육대
    "1000개의 계단을 한 번에 뛰어오를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사람들은 계단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어렵다고만 하죠.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올라가다 보면 끝은 반드시 옵니다."

    올해 환갑을 맞은 중증 시각장애인 윤선미 박사가 지난 14일 삼육대학교 요한관 홍명기홀에서 열린 학위 수여식에서 생애 두 번째 박사학위이자, 여섯 번째 학위를 취득해서 화제다.

    윤 박사는 중독과학과에서 '시각장애인의 인구사회학적 요인, 중독행위, 정신건강 및 라이프스타일과 만성질환 간의 연관성'(지도교수 이금선)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추가했다. 이 논문은 '우수학위논문'으로도 선정돼 학문적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국내에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보건·중독·라이프스타일 융합 연구는 전례가 드물다. 그는 전국의 50세 이상 중증 시각장애인 450명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설문을 진행했다. 성별·나이·경제활동·교육수준, 음주·흡연 행태, 스트레스·우울 정도, 식습관 등을 조사하고, 고혈압·간질환·뇌혈관질환·당뇨병·신장질환 등 만성질환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윤 박사는 "시각장애인 중 고혈압이나 당뇨 없으신 분을 거의 못 봤다. 뇌졸중과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례를 숱하게 보면서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활습관과 정신건강을 함께 들여다봐야만 한다. 이번 연구가 향후 보건교육과 제도 설계의 기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구 과정은 인생 상담과도 같았다. 한 사람당 15분이면 끝날 설문은 대부분 1시간을 넘겼다. 장애 원인을 묻는 순간, 응답자들은 자신 삶의 역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한 80세 응답자와는 1시간 45분간 대화를 이어갔다. 하루 11명을 인터뷰한 날은 멀미가 날 정도였다고 한다.
  • ▲ 윤선미 박사.ⓒ삼육대
    ▲ 윤선미 박사.ⓒ삼육대
    윤 박사는 선천 백내장으로 태어났다. 망막박리와 녹내장 등으로 시력이 점차 나빠져 지금은 색과 형태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다. 시각장애인 보조기기를 사용하지 못해 논문 작업의 90% 이상을 학습도우미와 활동지원사의 도움에 의존했다. 도우미가 바뀔 때마다 문서양식과 내용을 다시 설명해야 했다. 사비로 인력을 충원하는 부담도 컸다. 윤 박사는 "뭐 하러 이걸 시작했나 싶은 순간이 많았다. 그래도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낸다'는 마음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마태복음 19장 26절)'는 성경 구절을 붙잡고 버텼다"고 부연했다.

    윤 박사는 1987년 삼육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04년 대학원에서 보건학석사(M.P.H.), 2010년 신학석사(M.Div.), 2015년 목회학박사(D.Min.)를 취득했다. 2020년엔 삼육보건대 사이버지식교육원에서 사회복지학사를 땄고, 이번에 보건학박사(Ph.D.)를 추가해 총 6개의 학위를 갖게 됐다. 5개 학위가 삼육대에서 나왔다. 윤 박사는 "삼육대는 저를 만든 곳입니다. 신앙을 키워주고 '진리·사랑·봉사'의 정신을 심어줬다. 여러 장학 제도와 장애학생 지원 정책이 있었기에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윤 박사는 학위를 '인생이라는 집을 짓는 도구'에 비유했다. 그는 "도구가 많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한쪽이 힘들면 다른 분야로 숨을 고르며 배움을 즐겼다. 기회가 올 때마다 잡았고, 덕분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했다.

    자신의 환갑 선물로 6번째 학위를 셀프 선물한 윤 박사는 '120세 시대'를 맞아 봉사할 분야와 할 일이 많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지난 4월 말에는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화이트케인 장애인 자립생활센터' 제2대 센터장으로 취임했다. 전공을 살려 건강·보건 분야에 특화된 동료상담, 권익옹호, 자립생활지원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건강해야 자립도, 권익 찾기도 가능하다. 논문을 쓰며 인터뷰했던 450명 중 벌써 몇 분은 세상을 떠났다. 그분들의 시력을 회복시켜 드릴 수는 없지만, 마음의 빛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게 제가 평생 해야 할 일이자, 가장 큰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윤 박사는 천연치료·통증관리·수치료 전문가이기도 하다. 1994년부터 미국, 유럽, 아시아 등 40여 개국과 국내 대학에서 강의를 이어왔다. 앞으로도 활동을 지속하며 새로운 봉사의 길을 넓힐 계획이다.

    윤 박사의 배움의 길은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그는 7번째 학위 도전과 관련해 손사래를 쳤다. 그는 "학위는 이제 족합니다. 대신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초등학교 때 눈이 나빠져 포기했었다. 물론 취미를 위해서지만, 그게 학위가 된다면 …… 거절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 ▲ ⓒ삼육대
    ▲ ⓒ삼육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