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9월부터 자산 2조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 적용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 포함 상장사 6곳, 도입 경험 전무글로벌 빅파마는 모두 비도입 … 국내만 '지배구조 실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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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도 바이오클러스터. ⓒ연합뉴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특히 자산 2조원을 코앞에 둔 일부 기업이 오너가 경영권 방어를 이유로 자산 확대를 늦추려는 '눈치 경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3일 법무부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회사의 100분의 1 이상 주주 청구가 있는 경우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개정 상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개정안은 공포일 기준 1년 후 시행되며 내년 9월 이후 열리는 주주총회부터 적용된다.집중투표제는 복수의 이사를 선임할 때 각 주주가 가진 지분 수에 이사 선임 수를 곱한 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예를 들어 100주를 보유한 주주가 3명의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면, 일반투표에서는 각 후보에게 33표씩만 행사할 수 있지만 집중투표제에서는 특정 후보 1명에게 100표를 몰아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연합할 경우 이사회 진입이 가능해져 소수주주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도로 평가된다.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자산총액 2조원을 넘는 기업은 셀트리온(20조3730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13조5790억원), 에스디바이오센서(3조1070억원), 유한양행(2조5226억원), 녹십자(2조4576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2조1277억원) 등 6곳이다.하지만 이들 중 집중투표제를 정관에 반영한 회사는 한 곳도 없다. 대부분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조항을 두고 있으며 사실상 시행 경험이 전무하다. 내년 9월 이후에는 이들 기업 모두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자산총액 2조원을 목전에 둔 HK이노엔(1조9421억원), 대웅제약(1조9096억원)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최근 실적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내년에는 자산총액 2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이 기준을 넘어서면 곧바로 집중투표제를 도입해야한다.문제는 경영권이다. 다수 제약사들은 오너일가 중심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소수주주 세력이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을 경계하는 기류가 강하다.업계 일각에서는 "일부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늦추거나 자산 확대를 의도적으로 조정해 2조원 진입 시점을 뒤로 미룰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신약개발은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기 때문에 경영진은 단기 성과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소액 주주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제도는 경영 안정성에 리스크를 줄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집중투표제 도입은 사실상 한국 시장만의 이슈다. 글로벌 주요 제약사 중 집중투표제를 운영하는 사례는 없다. 미국의 화이자, 머크(MSD), 존슨앤드존슨(J&J), 유럽 제약사인 노바티스, 로슈, GSK를 비롯해 일본의 다케다, 다이이찌산쿄 등 글로벌 빅파마들은 모두 다수결 또는 최다득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한다.법무부는 이번 상법 개정으로 "일반주주 측 이사 및 감사위원이 늘어나 주주 의사가 경영에 보다 효과적으로 반영될 것"이라고 기대했다.하지만 제약업계는 오너 중심 체제와 긴 개발 주기라는 특수성이 맞물려 제도의 연착륙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특히 내년 9월 이후 맞이할 주총 시즌은 자산 2조원 기준선을 넘는 기업들의 대응 전략에 따라 소액주주와 오너일가 간 미묘한 힘겨루기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전문가들은 특히 자산총액 2조원 언저리에 있는 오너 중심 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집중투표제는 외부 인사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에 오너일가에게는 쥐약이 될 수 있다"며 "일부 기업이 자산 확대를 의도적으로 조정하거나 회계상 꼼수를 통해 2조원 돌파를 피하려는 유인이 생길 수 있고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기업을 축소 지향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