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 '노보진코리아' 진출에 데이터 유출 우려 고조국내 기업만 옥죄는 질병청·국생원의 이원화된 중복 규제정작 해외 기업은 규제 사각지대 … 국내 기업은 부담 가중규제 일원화·네거티브 전환 시급 … 민관협의체 제안
  • ▲ 신동직 유전체기업협의회장이 17일 메디젠휴먼케어 본사에서 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 신동직 유전체기업협의회장이 17일 메디젠휴먼케어 본사에서 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뉴데일리
    유전체 데이터는 최근 부상한 오가노이드 연구와 임상, 나아가 신약개발로 이어지는 K바이오의 핵심 기반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해외 기업들은 규제 사각지대를 활용해 자유롭게 데이터를 확보하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까다로운 규제와 중복 심사에 발목이 잡혀 사업을 포기하거나 매출이 급감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와 규제기관이 손을 놓은 사이 한국인의 고유한 유전체 정보가 해외로 유출될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이러한 차별적 구조 속에서 국내 유전체 산업이 어떤 위기를 맞고 있는지, 또 K바이오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를 짚어본다. <데스크주>

    "해외 유전체 기업들로 인해 우리나라 유전체 데이터가 외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걱정이 많이 듭니다. 미국 기업이나 중국 기업은 한국기업들과 파트너링 해서 그들의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자해도 절대 안 합니다." 

    17일 신동직 유전체기업협의회장은 뉴데일리와 만나 이같은 걱정을 쏟아냈다. 

    중국 유전체분석기업 노보진의 자회사인 노보진코리아가 지난 6월 한국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유전체기업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한국인들의 유전체 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노보진은 글로벌 유전체 2위 기업인 BGI(베이징 유전체학 연구소)에서 부사장을 지낸 리뤼창이 지난 2011년 설립한 회사다. 지난 2023년 이 회사가 대만에서 얻은 유전체를 중국으로 보내 논란이 된 바 있다. 

    유전체는 생명체가 가진 모든 유전 정보의 총합으로 질병·건강 상태, 가족 관계, 생물학적 특성 등을 담고 있다. 개인 식별이 가능해 고도의 민감 정보로 꼽힌다. 

    신동직 회장은 "외국 유전체기업들의 본사는 중국, 미국, 일본 또는 스페인 등에 있는데 본사가 자회사인 한국법인에 유전체 데이터 분석하는 걸 보자고하면 자회사가 거절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면서 "클라우드로 업로드돼서 유출된 데이터는 우리나라가 관리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은 현재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도 이러한 데이터 전쟁의 연장선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 생물보안법의 경우 올해 통과될 것이란 전망이 있는데 핵심 내용은 결국 중국의 7개 기업을 견제하는 것"이라며 "여기에 유전체분석 회사인 BGI, MGI(BGI그룹 자회사) 등이 포함됐다"고 강조했다.  

    그가 데이터 전쟁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우리나라와 미국, 중국의 유전체정보 감독,규제기관이 달라서다. 그는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에서 유전체데이터를 관리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FDA(식품의약국) 등 주로 보건관련 규제기관에서 데이터를 관리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면서 "중국은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국방부'에서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 회장은 중국의 유전체 데이터 관리에 대해 염려했다. 국방부에서 관리할 경우 유전체데이터 정보들이 무기화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신 회장은 "중국이 어떤 특정한 질병에 대해 취약성을 나타내는 유전체 배열이나 멀티오믹스 배열을 찾아내면 생물학적 무기로도 이용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깊숙한 연구가 필요하지만 중국 한족과는 다른 고유한 한국인 유전체데이터 또는 일본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전체 데이터 등을 확보하면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으로 "만약 어떤 국가가 유전체로 병을 만들고 또 이런 데이터로 백신을 만들면 돈주고 사와야하는 '병주고 약주는'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일 큰 문제는 이러한 위험성 속에서도 손을 놓고 있는 한국 정부다. 신 회장에 따르면 중국은 2018년 유전자보호법을 만들어 중국의 유전체 정보 등 생물학적 데이터들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장치를 만들어뒀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전체 데이터가 해외로 빠져가나는걸 막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신동직 회장은 "우리나라 대형병원에서는 간암, 폐암, 유방암 등 표적항암제를 쓰기 전에 환자의 유전자형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검사를 하는데 이를 국내의 유전체 기업에 잘 맡기지 않고 해외에 맡기는 경우가 빈번하다"면서 "이렇게 넘어간 검체가 해외에서 검사한 이후에 어떻게 사용될 지는 모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 신동직 유전체기업협의회장이 17일 메디젠휴먼케어 본사에서 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 신동직 유전체기업협의회장이 17일 메디젠휴먼케어 본사에서 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과도한 규제에 국내 유전체 산업 위축 … 해외 기업만 반사이익

    국내 유전체 기업들이 과도한 규제로 성장의 발목이 잡히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 기업들은 규제 사각지대에서 자유롭게 영업하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까다로운 인증과 관리 절차에 묶여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동직 유전체기업협의회장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유전체 분석 기술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시장 규모는 500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며 "27조 원대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개발도상국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랜드뷰리서치와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기업인 마크로젠은 글로벌 유전체 분석 기업 순위에서 분석 능력 기준 6위에 올랐다. 1위는 일루미나(미국), 2위는 BGI(중국), 3위는 서모피셔(미국) 등이다. 

    신동직 회장은 특히 규제 중복과 모호한 규제 기준을 문제로 꼽았다. 질병 관련 검사는 질병관리청(이하 질병청), 웰니스 목적의 소비자 직접 의뢰(DTC) 검사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하 국생원)이 각각 관할하면서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질병청에서는 과학적 근거에 따라 이미 유전자 검사 승인을 받았지만 국생원에 판매처·판매방법·마케팅 방식까지 일일이 사전승인을 받아야한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매년 이런 실사와 인증을 반복해야 하고, 현장에 전문성 없는 인사가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 산업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제도는 열려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 시장은 오히려 과도한 규제로 위축됐다"고 비판했다.

    반면 해외 기업들은 한국 법인을 세워 국내에 진출하면서도 규제를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신 대표는 "외국 기업이 온라인을 통해 유전자 검사를 하고 있는 것도 사이트 URL를 바꿔가면서 계속 하고 있는데 정부가 실질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면서 "국내 기업만 엄격한 IRB(기관생명윤리위원회) 규정을 적용받는 것은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들은 기술 개발보다 가격 경쟁과 생존 싸움에 몰릴 수밖에 없다"며 "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위기"라고 경고했다. 과거 29개의 유전체 기업들 가운데 상장폐지, 주식 거래정지, 폐업 등으로 인해 유전자분석 사업을 하면서 매출이 발생하는 기업은 이제 14개로 축소됐다.

    신동직 회장은 "규제를 일원화하고 네거티브 방식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 회장은 ▲관리기준의 통일화 ▲민관 협의체 운영 ▲합리적 규제 전환 등을 정부에 요청했다. 

    그는 "질병청, 국생원, 복지부 등으로 나눠진 관리 권한과 기준을 일원화해 기업이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속에서 연구와 서비스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면서 "민관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유전체분석 기업들이 매년 80만~100만건 이상의 검체와 분석 데이터를 확보하지만 연구 목적 외에는 폐기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검체를 국가 바이오뱅크로 이관해 정부가 안전하게 보관하되 대신 민간기업에 데이터 생산,분석,알고리즘 개발 등 분석 데이터 활용에 우선권을 부여해 정부(공신력), 기업(산업화), 국민(건강혜택)이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는 윈윈 구조를 제안했다.

    신동직 회장은 "K바이오의 위상을 만든 신약 개발도 중요하지만 바이오 산업 속 기초 과학인 유전체 산업이 있다. 이 산업도 중요하다는 걸 모두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