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결제했는데 오늘 품절 … 동네의원 소모품 확보 전쟁에 진료 차질 현실화서울시醫 "정부, 최소한의 위기관리 체계도 부재 … 국민 건강 책임 방기하나"유가 급등에 흔들리는 보건 안보, '전시 수준' 수급 안정 대책 마련 강력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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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다음 주부터 쓸 의료소모품 물량이 없어서 유통업체 대여섯 곳에 전화를 돌렸는데 돌아오는 건 '재고 없음'이라는 기계적인 답변뿐이다. 이미 결제까지 끝난 주문도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판국이니 환자를 돌려보내야 할 상황이 올까 봐 밤잠을 설친다."

    6일 서울 도봉구에서 내과 의원을 운영하는 A 원장은 의료소모품 창고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넉넉히 쌓여 있어야 할 주사기와 나비바늘, 수액 세트 상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중동 지역의 정세 불안으로 촉발된 유가 급등이 국내 의료 현장의 기초 인프라인 '의료소모품' 공급망을 정면으로 타격하고 있다.

    중동발 원유 가격이 널뛰기 시작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병·의원급 의료기관은 '소모품 확보 전쟁'에 내몰렸다. 의료용 주사기나 수액 줄 등은 대부분 원유에서 추출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지는데, 원가 상승과 공급망 차질이 맞물리며 유통 시장이 급격히 경색된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의료진들은 이미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유통업체는 'ID당 구매 수량 제한'을 걸어 물량을 조절하거나 평소보다 2~3배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사실상 배짱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한 소아과 간호사는 "당장 예방접종이나 인슐린 투약이 필요한 환자들이 줄을 잇는데, 주사기 한 대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며 "기존 거래처조차 물량을 줄이고 있어 원장이 직접 발품을 팔아 물량을 매집하는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 ▲ 품절된 의료소모품 현황. ⓒ서울시의사회
    ▲ 품절된 의료소모품 현황. ⓒ서울시의사회
    ◆ 서울시의사회 "정부의 위기관리 부재, 국민 생명 위협"

    의료현장의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서울특별시의사회는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의사회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유통 차질이 아닌,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 안전 문제'이자 국가적 안보 사안으로 규정했다.

    특히 서울시의사회는 불과 한 달 남짓한 원유 공급 불안에 의료 체계 전체가 흔들리는 현 상황을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이해 부족이자 국민 건강에 대한 책임 방기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국가 필수의료 자원에 대한 긴급 수급 안정 대책을 즉각 시행하는 것은 물론 사재기나 투기적 가격 인상에 대한 강력한 행정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의료소모품 수급 대책을 전시에 준하는 국가 안보 수준으로 격상해 재정비하라"고 요구했다. 

    무엇보다 일선 의료기관이 필수 진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의료소모품을 우선 배분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는 예견된 인재(人災)"라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마스크 대란을 겪으며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을 학습했음에도 저단가 소모품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기초 물자의 수급을 민간 유통 시장의 자율에만 맡겨둔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의료 개혁과 필수의료 강화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환자를 찌를 주사기 한 대가 없어 진료가 중단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