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증시 상장에 기업가치 12조원 이상 평가성장·안정 동시 만족하는 잠재시장 선점 효과"1등 골든타임" … 주력사업 보완할 新성장거점
  • ▲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2월 인도 뉴델리에 위치한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에서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LG
    ▲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 2월 인도 뉴델리에 위치한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에서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LG
    LG전자가 인도 법인 기업공개(IPO)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재계에서는 LG그룹의 이번 결단을 단순히 자금을 조달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연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석유화학, 가전 등 주력사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인도 시장은 유일한 성장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1일 LG전자에 따르면 회사는 인도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상장 최종 승인을 받아 오는 14일 인도 증시에 입성한다. 인도 법인 지분 15%에 대한 공모가 밴드(범위)는 최소 1조7384억원에서 최대 1조8350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주당 공모가는 최소 1만7000원(1080루피)에서 최대 1만8000원(1140루피) 수준이다. 

    회사 측은 “공시상 처분금액은 보수적으로 밴드 최하단 가격 기준으로 기재했으며, 실제 처분금액은 더 높은 수준에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공모가 최상단으로 결정되는 경우 LG전자 인도법인은 최대 12조원 이상 기업가치를 평가받게 된다. 이는 인도 증시에 상장된 비교기업(피어그룹)의 시가총액 규모와 비교하더라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금융비용 부담 없이 대규모 현금을 확보해 재무건전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IPO는 신주발행이 아닌 구주매출 방식으로 진행된다. 신규 주식을 발행하지 않고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최대 1조8000억원의 자금이 일시에 본사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왜 인도인가’는 투자자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지점이다. LG전자는 중동·아프리카 등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시장을 차세대 성장 무대로 삼겠다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특히 인도는 14억 인구 대국이자 글로벌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성장률을 기록 중인 핵심 국가다. 에어컨과 세탁기 보급률은 각각 10%, 20% 수준에 불과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내년 30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돼 주목받는 잠재 시장이다. 

    구광모 회장도 올해 첫 해외 출장지로 인도를 택했다. 그는 LG전자 노이다 생산공장, 인도 소프트웨어연구소 등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와 수도 뉴델리를 찾아 연구개발(R&D)·생산·유통에 이르는 밸류체인 경쟁력을 점검했다. 당시 구 회장은 “인도 시장에서 어떤 차별화를 통해 경쟁 기업들을 앞설 것인지 앞으로의 몇 년이 아주 중요하다”면서 “우리가 어느 정도 앞서 있는 지금이 지속가능한 1등을 위한 골든타임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LG전자는 1997년 인도법인을 세운 이후 철저한 현지 맞춤형 전략으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TV 등 주요 가전에서 1위를 지켜왔다. 작년 타임(Time)이 발표한 ‘2024 인도 최고의 브랜드’에서 냉장고·세탁기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매출 2조2829억원, 순이익 2097억원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연간 매출 역시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인도 시장은 이미 LG의 확실한 ‘성장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기반 위에서 추진되는 IPO는 단순한 자금 조달 차원을 넘어선다. 현지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생산능력과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동시에 인도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제조·물류 인프라 개선, 인도 정부의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까지 맞물리며, LG는 미·중 갈등 속 ‘탈중국’의 대안 거점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LG의 행보는 그룹 전체 위기와도 직결된다. LG전자의 가전 부문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정체돼 있고, 배터리를 담당하는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시장 둔화와 투자 부담으로 고전하고 있다.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LG화학 역시 수요 위축과 가격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세 축이 모두 흔들리는 상황에서 인도는 사실상 유일하게 성장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그룹 전체의 생존을 좌우할 핵심 무대인 셈이다. 

    이번 IPO가 단순한 금융 거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적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확보한 자금이 다시 생산과 연구개발에 투입되고, 이를 통해 매출과 이익이 늘어나면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 안정과 신사업 투자 여력이 동시에 확대된다. 결과적으로 주력사업 부진을 보완하고 미래 성장 동력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 체질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는 단순한 신흥시장이 아니라 LG가 가장 앞서 있는 무대이자, 글로벌 공급망 전략의 핵심 거점”이라며 “구광모 회장의 결단은 LG그룹이 주력사업 위기를 넘어 새로운 성장 궤도에 오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