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 건립LNG 냉열 재활용해 AI DC 발열 잡아그룹 역량 총결집 … ‘SK형 AI 밸류체인’ 가동
  • ▲ SK에코플랜트가 시공 중인 SK AI DC 울산 현장에서 기초공사가 진행중인 모습.ⓒSK
    ▲ SK에코플랜트가 시공 중인 SK AI DC 울산 현장에서 기초공사가 진행중인 모습.ⓒSK
    지난달 29일 오전 찾은 울산 미포산업단지 내 한 공사현장. 축구장 11개 크기, 2만 평이 넘는 광활한 부지 가득 묵직한 타격음이 번지고 진동이 느껴졌다. 엔진이 힘차게 돌아가자 노랑·주황색 굴착기가 흙더미를 퍼 올렸고, 고깔 모양의 라바콘이 둘러진 구역 안쪽에서는 형광 조끼를 입은 작업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잠시 후 쇳덩이를 때리는 ‘쾅’하는 굉음이 귓가를 때렸다. 기초 말뚝을 지반 깊숙이 박아 건물의 토대를 다지는 작업에서 비롯된 소리다. 이 말뚝들은 완공 후 수천 대의 서버 무게를 견디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보이지 않는 뼈대가 된다. 붉은 철재와 흙더미 사이에서 ‘AI 시대의 심장’이 천천히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 ▲ 추후 완공될 ‘SK AI 데이터센터 울산’조감도.ⓒSK
    ▲ 추후 완공될 ‘SK AI 데이터센터 울산’조감도.ⓒSK
    ◆ 울산에서 뛰는 ‘AI의 심장’ 보니

    이곳은 SK그룹이 조성 중인 국내 비수도권 최대 규모의 AI 전용 데이터센터 ‘SK AI 데이터센터 울산’의 부지다. SK그룹은 글로벌 1위 기업인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고 그래픽처리장치(GPU) 6만 장이 들어가는 100메가와트(㎿)급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를 울산에 구축하고 있다. 총 7조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는 8월 말 착공해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상 5층 규모로 지어질 예정인 건물은 기초 콘크리트 타설 준비가 한창이었다. 1층에서 5층까지는 서버와 IT장비가 집약된 고밀도 랙(Rack)으로 채워지고, 옥상에는 데이터센터의 열을 식힐 냉각기(칠러)와 냉매용 급관이 설치된다. 12월부터는 대형 크레인이 투입돼 본격적인 골조 공사를 시작하며, 2027년 말부터 단계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다. 시공은 그룹사인 SK에코플랜트가 맡았다.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연산을 지원하는 AI 특화 구조와 하이브리드 냉각 설비를 적용해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높은 성능과 효율을 구현한다는 게 SK의 설명이다. 

    AI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AI 모델의 훈련과 추론, 자연어 처리, 이미지·영상 인식 등 막대한 연산이 필요한 작업에 최적화돼 있다. 이 과정에서 GPU 등 고성능 AI 가속기가 대거 투입돼 전력 소모가 급격히 증가한다. 현재 상용화된 AI 데이터센터의 랙당 전력 소비량은 20~40킬로와트(㎾) 이상인데, 향후에는 100㎾을 넘어설 전망이다. 전력 소모가 큰 만큼 냉각 설비 규모도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4~10배 많은, 랙당 40~100㎾의 냉각 용량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만난 이동규 SK에코플랜트 현장소장은 “고발열, 고전력 장비로 구성되는 AI 데이터센터가 최고 성능을 안정적으로 내는데 시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특화된 기계·전기·배관(MEP) 설루션이 기반”이라 설명했다. 이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 전력공급은 물론 열원 및 공조장비 무중단을 실현하고, 유사시 전력 및 냉수공급 루트까지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정밀 장비의 경우 온도 편차 0.1도가 성능을 좌우할 수 있어 냉각 방식에도 공을 들였다. 기존 데이터센터가 주로 사용하는 공기 냉각 방식으로는 랙당 40㎾ 이상 전력 소모를 감당하기 어렵다. SK는 공기와 액체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냉각 시스템’을 적용해 전력 밀도와 냉각 능력을 각각 최대 10배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 ▲ 현재 상업 운전 중인 코리아에너지터미널 액화천연가스(LNG)탱크.ⓒ이가영 기자
    ▲ 현재 상업 운전 중인 코리아에너지터미널 액화천연가스(LNG)탱크.ⓒ이가영 기자
  • ▲ 29일 울산 남구에 위치한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 내 해수식기화기 시설에서 바닷물이 액화천연가스(LNG)가 흐르는 관을 따라 쏟아지는 모습.ⓒ이가영 기자
    ▲ 29일 울산 남구에 위치한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 내 해수식기화기 시설에서 바닷물이 액화천연가스(LNG)가 흐르는 관을 따라 쏟아지는 모습.ⓒ이가영 기자
    ◆ LNG 냉열로 식히는 ‘AI DC 열기’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부지를 둘러본 뒤에는 인근 바닷가의 SK가스 코리아에너지터미널(KET)을 찾았다. 2020년 6월 착공해 지난해 11월 준공된 KET는 울산 최초의 LNG 터미널이자 국내 최초 오일·LNG 복합 터미널로, 한국석유공사(52.4%)와 SK가스(47.6%)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이 터미널에는 LNG를 저장할 수 있는 탱크 3기와 오일 탱크 12기, 하역·저장·기화·송출 관련 설비가 구축돼 있었다. 미국과 중동 등에서 선박으로 들어온 LNG는 ‘하역→저장→기화→송출’ 단계를 거쳐 고객사로 공급된다.

    육안으로 본 LNG탱크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올려다보려면 고개를 한참 뒤로 젖혀야 해 목이 아플 정도였다. 지름 90.6m, 높이 54.7m로 장충체육관보다 크며, 탱크 한 기의 저장 용량은 21만5000㎘에 달한다.

    KET는 LNG가 액체에서 기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영하 162도의 냉열을 회수해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냉각 설비에 공급할 예정이다. 고성능 GPU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어하는 데 효과적일 뿐 아니라, 기존에 버려지던 에너지를 재활용해 효율과 친환경성을 동시에 높인다.

    이날 KET 내 해수식 기화기에서는 LNG가 기화되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빽빽한 물줄기가 쉼 없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울산 앞바다에서 끌어온 바닷물을 LNG가 지나가는 배관 위에 끼얹는 식이다. 그러면 바닷물은 관 속 영하 162도의 LNG를 데워 기체 형태의 천연가스(NG)로 바꾼다. 극도의 낮은 온도에서 액화됐기 때문에 바닷물로도 충분히 기화가 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냉열이 발생하는데, 기존에는 대부분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왔다. 

    회사 관계자는 “천연가스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고여 있는 물에 담그는 것이 아닌 계속 물을 흘려보내는 방식을 택했다”면서 “시간당 뿌려지는 바닷물의 양이 약 5000톤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개막일인 지난달 28일 경북 경주엑스포대공원에서 열린 '퓨처테크 포럼 AI'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이가영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개막일인 지난달 28일 경북 경주엑스포대공원에서 열린 '퓨처테크 포럼 AI'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이가영 기자
    ◆ 그룹 역량 하나로 묶은 ‘SK형 AI 밸류체인’

    현장에서 확인한 SK의 AI 데이터센터 밸류체인은 그룹 역량을 결집해 새로운 성장 해법을 제시하려는 SK의 미래 전략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꾸준히 그룹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설루션 패키지’의 중요성을 설파해왔다. 

    그는 지난 2023년 10월 ‘CEO 세미나’에서 “최고경영자(CEO)들은 맡은 회사에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그룹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설루션 패키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어 이듬해 초 ‘CES 2024’에서도 “각 계열사가 따로따로 (고객을) 만나는 것보다 한꺼번에 만나 패키지나 설루션을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AI 데이터센터는 그룹사 역량을 한데 모아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SK하이닉스는 데이터센터에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 기술을 적용한다.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SK에코플랜트는 데이터센터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센터를 구축 총괄·운영한다. SK가스와 SK멀티유틸리티 등 에너지 계열사는 인프라·전력·시스템 구축에 참여한다. 

    최 회장은 AI 데이터센터가 에너지, 정보통신, 반도체에 이은 그룹의 ‘제4의 퀀텀 점프’ 토대가 될 수 있다 보고 사업을 진두지휘해 왔다. 특히 SK그룹이 엔비디아와 GPU 기반 ‘AI 팩토리’를 구축을 추진하는 만큼, 울산 데이터센터는 AI 산업 클러스터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SK그룹은 엔비디아와의 협력해 디지털 트윈과 로봇, 거대언어모델(LLM) 등 학습 및 추론, 3차원(3D) 시뮬레이션 기능을 두루 갖춘 ‘산업용 AI 서비스 공급 사업자’로도 발돋움할 계획이다.

    SK 관계자는 “‘SK AI 데이터센터 울산’은 대한민국 디지털 경제의 근간을 세우고 미래를 구축하는 중요한 인프라가 될 것”이라면서 “SK는 대한민국이 AI 강국으로 향하는 여정을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