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퇴출률 0.4%, 정상화됐다면 GDP 0.4% 더 컸을 것”금융위기·팬데믹 지나도 ‘정화 메커니즘’ 작동 안 해 “산업 생태계 중심 지원 전환 필요 … 신산업 규제완화가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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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수차례의 위기를 거치며도 ‘좀비기업’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성장 잠재력이 갉아먹히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위기 때마다 유동성 지원으로 기업 부실을 떠받치는 관행이 반복되면서, 구조조정의 정화 효과가 사라지고 경제의 역동성이 장기적으로 훼손됐다는 분석이다.한은은 12일 발표한 '경제위기 이후 우리 성장은 왜 구조적으로 낮아졌나' 보고서를 통해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는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며 성장 추세가 구조적으로 둔화됐다”며 “이는 주로 민간 소비·투자 위축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계기업 퇴출이 지연돼 기업 역동성이 회복되지 못한 것이 핵심 원인”이라고 밝혔다.보고서는 한계기업의 ‘퇴출 고위험도’를 산출해 실제 퇴출 비율과 비교했다. 그 결과 금융위기 이후(2014~2019년) 퇴출 고위험 기업 비중은 약 4%였으나, 실제 시장에서 사라진 기업은 2%에 불과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2022~2024년)에도 퇴출 고위험 기업이 3.8%였지만 실제 퇴출은 고작 0.4%에 그쳤다. 위기 이후에도 부실 기업이 시장에 잔류하면서 자원이 생산성 낮은 부문에 묶였다는 뜻이다.한은은 이 같은 ‘퇴출 지연’이 경제 성장의 상시적 저해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분석 결과, 고위험 기업이 정상기업으로 제때 대체됐다면 같은 기간 국내 투자는 2.8~3.3%, 국내총생산(GDP)은 0.4~0.5% 더 성장했을 것으로 추산됐다. 즉, 퇴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곧 경제 활력 저하로 직결됐다는 의미다.한은은 이러한 현상을 “정화 효과(clean-up effect)가 작동하지 않는 구조”로 규정했다. 위기 국면에서 정부와 금융권의 유동성 지원이 집중되면서 부실기업이 인위적으로 생존하고, 결과적으로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이 늦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위기 이후에도 과거의 낮은 생산성을 가진 기업이 시장에 잔존하면서 투자 위축과 생산성 둔화가 이어졌다”며 “이 같은 이력 현상은 성장 추세를 장기적으로 끌어내린다”고 지적했다.보고서는 향후 정책의 초점을 ‘유동성 지원’보다 ‘시장 재편’에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은은 “기업의 진입·퇴출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 지원의 방향을 재설계해야 한다”며 “단기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나 혁신 초기 기업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되, 산업 생태계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또한 “현재 주력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에 더해 신성장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병행해야 한다”며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수요를 창출할 혁신 투자로 경제의 미래 동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