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남긴 경영권 분쟁 … 주가 150만원 넘기기도국익 수호 vs 경영 정상화, 명분 싸움서 여론전으로MBK 비판 여론도 변수로 … 내년 주총 3라운드 임박
  • ▲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가운데)이 2024년 9월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가운데)이 2024년 9월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내 비철·제련 산업의 맏형인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1년을 넘기며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선언으로 본격화한 갈등은 수조원대 자금 소모와 20여 건의 소송, 기업가치 훼손 등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전략 광물 공급망을 책임지는 국내 유일의 제련기업이 흔들리면서 국가 경제와 안보 리스크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3라운드’가 예고된 가운데, 본지는 총 6편을 통해 75년 동업의 균열부터 향후 관전 포인트까지 분쟁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 75년간 2세까지 이어져온 두 가문 공동경영의 시대가 이제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3세로 승계된 지분 구조에서는 공동경영이 가능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2024년 9월 12일, 장형진 영풍 고문은 MBK파트너스와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하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장씨 일가는 고려아연 지분 일부를 MBK에 넘기고, MBK는 영풍 보유 지분의 절반+1주에 대한 콜옵션을 확보해 사실상 최대주주 지위에 올라섰다.

    이날은 장씨(영풍)·최씨(고려아연) 두 가문이 75년간 이어온 공동경영 체제에 공식적인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두 가문 간 내부 갈등에 MBK가 합류하면서 경영권 분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 영풍–MBK 연합, 공개매수 돌입… 고려아연도 자사주 매입 정면 대응

    MBK는 최대주주로 올라선 다음 날인 13일 특수목적법인(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를 통해 최대 2조원 규모의 공개매수에 나서며 고려아연 지배력 확보에 착수했다.

    영풍–MBK 연합은 기존 경영진이 추진한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한화·현대차와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공개매수가 본격화되자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측도 자사주 공개매수로 맞대응했다. 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탈도 공동매수자로 참여시켰다.

    분쟁은 곧바로 쩐의 전쟁으로 비화했다. 영풍-MBK 연합은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66만원에서 75만원, 83만원까지 올렸고, 고려아연은 이에 맞서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89만원까지 끌어올렸다.

    영풍–MBK 연합은 약 2조 5000억원, 고려아연 측은 3조 7000억원의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양측이 지분매입 경쟁에 쓴 자금만 5조원을 넘어섰다. 한때 고려아연 주가가 150만원 이상을 넘겼다. 금융당국이 "시장 질서를 해치는 불공정거래 발생 시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할 만큼 시장의 긴장감도 고조됐다.

    그러나 치열한 쩐의 전쟁을 벌였음에도 양측은 모두 과반 지분 확보에 실패했다. 공개매수 종료 후 지분 구도는 영풍-MBK 연합이 고려아연 지분 5.34%를 추가로 확보하며 전체 지분율을 38.47%까지 끌어올렸다. 최윤범 회장 측은 오너일가 보유분(15.65%)에 우호 지분과 베인캐피탈이 매입한 자사주까지 더해 약 36% 수준의 지분을 확보했다.
  • ▲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2024년 10월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이 2024년 10월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MBK ‘홈플러스 사태’ 여론 역풍 … 새 변수 출현에 혼란 거듭

    "경영 능력이 없는 영풍과 기업사냥꾼 MBK로부터 고려아연을 지키겠다."

    고려아연 측은 자사주 공개매수 종결을 하루 앞두고 서울 소재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영풍·MBK 연합의 인수합병 시도에 대해 이 같이 입장을 밝혔다.

    당시 양측의 여론전은 극단으로 치달았는데, 공교롭게 홈플러스 기업회생 사태가 터지면서 대주주 MBK를 향한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정치권, 시민단체, 소액주주까지 가세하며 "적대적 M&A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MBK가 향후 고려아연을 해외에 매각하거나, 회사가 추진해온 수소·2차전지 등 신사업을 중단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진 것이다. 이에 대해 영풍-MBK 연합은 "정상적인 최대주주의 경영 활동일 뿐"이라고 반박하며 여론전에 맞섰다.

    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양측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최근에도 양측은 각자 보도자료를 통해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영풍–MBK 측은 "적대적 M&A 프레임은 독단적 전횡을 유지하려는 경영 대리인의 자기합리화일 뿐"이라며 "고려아연의 지배구조가 바로 설 때까지 최대주주로서 흔들림 없이 행동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고려아연은 "영풍·MBK의 거짓과 왜곡, 탐욕으로부터 그리고 국가기간산업과 전략광물 공급망을 흔들려는 해외자본으로부터 회사를 지켜낼 것"이라고 맞섰다.

    시간이 흐르며 영풍–MBK 측의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명분은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다. MBK가 주장하던 투명경영 이미지는 금이갔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MBK에 '직무정지'를 포함한 초유의 중징계를 통보한 상태다.

    영풍은 폐수 유출과 환경 규제 위반으로 기업 신뢰도가 낮아졌다. 반면 고려아연은 미국 전략광물 공급망 참여, 록히드마틴과의 MOU 체결 등 사업 확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