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열제 부족의 원인은 약가 … 성분명 처방은 엉뚱한 해법국민 편의 말하려면 '선택분업·약 배송 금지'부터 설명해야약가정책이 만든 수급난 … 구조적 문제와 다른 해결책
  • ▲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 ⓒ서울시의사회
    ▲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 ⓒ서울시의사회
    정부와 정치권이 약의 상품명 대신 성분명만 기재해 약국에서 동일 성분이면 조제할 수 있도록 하는 '성분명 처방'을 약품 수급난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 대해 의료계 반발이 거세다. 아이들의 해열제가 부족해진 이유는 "제약회사가 만들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이며 이는 약가정책의 왜곡 때문이지 성분명 처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26일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의협 범의료계 국민건강보호 대책특별위원회 홍보위원장)은 뉴데일리를 통해 "이미 대체조제가 자유롭게 가능한 상황에서 성분명 처방을 새로운 해법으로 포장하는 것은 정책 목표와 원인을 일부러 흐리는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성분명 처방이 국민에게 편리하다는 주장에 대해 "정말 국민 편의를 말한다면 일반약 접근성 확대, 약 배송 허용, 선택분업 같은 실질적 조치부터 논의해야 맞다"고 언급했다. 

    그는 약사단체가 약 배송을 강하게 반대하면서도 국민 편의를 명분으로 성분명 처방을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어 "병원에서 약을 바로 받을지, 약국에서 조제받을지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분업이야말로 국민·건보 모두에게 이득"이라며 현행 분업 구조만 고집하는 태도 또한 "국민을 위한 선택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 성분명 처방이 부르는 혼란 … 의료안전망 흔들린다

    황 회장은 의사가 성분명 처방에 반대하는 핵심 이유로 '환자 안전'을 꼽았다. 

    그는 "식약처 동등성 기준은 80~120%인데 최대 40% 차이가 나는 약을 같은 약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며 "물만 바뀌어도 몸의 반응은 달라지는데 환자에게 약효 편차가 큰 제네릭을 임의로 바꾸는 것이 국민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약을 바꿔 생기는 부작용·치료 실패의 모든 책임은 결국 처방 의사에게 돌아오는데 약 선택권은 약사에게 주자는 구조는 위험하다"고 했다.

    황 회장은 성분명 처방이 실제 의료현장에서 어떤 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지도 우려했다. 

    그는 "성분명으로만 처방이 이뤄지면 환자가 복용하던 약과 다른 제조사, 다른 제형, 다른 첨가제가 섞인 약을 약국마다 매번 다른 제품으로 받게 될 수 있다. 약효뿐 아니라 제제 차이에 따른 부작용, 알레르기 반응, 환자의 순응도 저하까지 모두 의료현장에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고령층·만성질환자처럼 장기복용 환자 비중이 높은 한국 현실을 감안하면 "조제 단계에서 발생하는 변수가 늘어날수록 의료안전망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성분명 처방이 오히려 약국 간 경쟁을 촉발시키며 시장 구조를 왜곡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성분만 같으면 무엇이든 대체가 가능해지면 결국 약국은 가장 저렴한 제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품질 관리·안정적 생산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제약사와 의료기관 모두를 압박해 결과적으로 약제 수급 불안정이 반복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의사가 환자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특정 제형·제조사의 제품이 약국에서 임의 변경되는 상황이 제도권에서 인정되는 것 자체가 국민 건강권의 후퇴"라고 했다.

    황 회장은 성분명 처방을 밀어붙이는 논리 뒤에 '의사가 특정 약을 경제적 이유로 처방한다'는 낡은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의사는 리베이트를 받으면 면허까지 취소되는 나라에서 산다. 경제적 이득 때문에 특정 약을 고집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정작 약을 변경해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의사에게 남기면서 결정권만 약사에게 넘기자는 구조는 제도 설계의 기본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그는 "성분명 처방은 약 선택의 책임과 권한을 분리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위험을 전가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또한 "성분명 처방이 약 공급 안정성 강화와는 반대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공급부족 문제를 성분명 처방으로 해결했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수급 문제는 약가, 생산여력, 공공비축, 공급계약 구조 등 '정책 시스템'을 고쳐야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성분명 처방은 이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마치 '알리바이성 해법'처럼 활용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황 회장은 "성분명 처방을 도입하면 편해지는 쪽은 정작 국민이 아니다"라며 "약을 바꿔 생긴 문제로 다시 병원을 찾는 건 환자이고 책임을 지는 건 의사이며, 약효 편차와 제제 차이로 환자 안전을 위협받는 것도 환자"라고 짚었다.

    그는 "이 제도는 국민에게 선택권을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을 떠안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국민의 안전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성분명 처방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고 반대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