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노동생산성 대기업의 32%·한계기업 비중 18%까지 확대예산 더 안 써도 기준·방식 손질하면 총생산 0.4~0.7%포인트 높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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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
정부가 수십조원대 예산과 정책금융으로 중소기업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정작 생산성과 혁신 역량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진단이 나왔다. 매출 규모를 기준으로 한 보편지원과 ‘중소기업 지위 유지’ 유인을 키우는 이른바 피터팬증후군, 비효율적인 구조조정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한계기업만 늘고 성장잠재력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한국은행은 8일 발표한 ‘우리나라 중소기업 현황과 지원제도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중소기업은 기업 수의 99.9%, 고용의 80.4%를 차지하는 우리 경제의 핵심 축이지만 생산성과 역동성 측면에서는 구조적 취약성이 누적돼 있다”고 평가했다. 제조업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32% 수준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5%와 큰 격차를 보였고,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한계기업 비중도 2012년 12.6%에서 2024년 18.0%로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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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중소기업 지원 확대와 동시에 진행됐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최근 수년간 정부 예산과 정책금융 공급이 크게 늘어나면서 매출과 고용 확대에는 분명한 효과를 냈지만, 자본생산성과 수익성, 설비투자 확대와 같은 중장기 성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약했다고 지적했다. 정책금융 의존이 높아질수록 은행 등 민간 자금이 밀려나는 ‘크라우딩 아웃’ 현상, 산업 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이 잔존하면서 정상기업의 투자와 수익성을 깎아내리는 부정적 효과도 관측됐다고 설명했다.한은은 이런 결과가 단순히 지원 규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도 설계 자체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중소기업 정책의 문제점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각종 세제·보조금·금융 지원의 자격 요건이 매출과 자산 등 ‘규모’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았다. 매출액 일정 기준을 경계로 혜택과 규제가 갈리다 보니, 생산성과 혁신 역량이 좋은 기업을 골라내기보다 ‘기준 이하 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지원 성격이 강해졌다는 것이다.두 번째는 피터팬증후군이다. 매출 기준을 넘어서면 지원은 줄고 각종 의무와 규제가 늘어나는 구조 속에서 기업이 의도적으로 성장을 늦추거나 중견기업으로의 전환을 회피하는 유인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비율은 정체돼 있는 반면, 중견기업이 다시 중소기업 범주로 내려오는 사례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세 번째로는 부실기업의 적기 퇴출을 막는 구조조정 제도 미비가 지적됐다. 회생·정리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 보니 사실상 시장에서 방치되는 기업이 적지 않고 이 과정에서 정책금융이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계속 투입된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는 부처·기관별로 유사한 사업이 중복 추진되면서, 생산성이 높은 기업을 가려내는 선별 기능이 약화되고 정책 집행도 분산된다는 점이 문제로 꼽혔다.보고서는 “이 같은 틀 안에서는 생산성과 성장잠재력이 높은 중소기업을 선별해 집중 지원하고, 창업에서 성장, 퇴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정책 목표가 제대로 구현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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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으로 한은은 ‘돈을 더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누구에게 쓰는지’를 바꾸는 방향을 제시했다. 일반균형모형을 활용한 분석 결과, 예산을 추가로 늘리지 않더라도 지원 기준과 구조조정 방식을 조정하면 총생산을 0.4~0.7%포인트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구체적으로는 지원 자격 기준을 매출에서 업력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성장 초기이지만 생산성이 높은 기업에 자금이 재배분되면서 총생산이 0.45% 증가하는 효과가 추정됐고,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성장을 회피하는 피터팬증후군도 일부 완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매출 구간을 기준으로 일괄 지원하기보다, 시장 진입 시점과 혁신 역량 등을 기반으로 지원 대상을 다시 정의하자는 취지다.구조조정 제도 개선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도 내놨다. 보고서는 중소기업 구조조정 절차를 미국·일본 수준으로 효율화할 경우 총생산이 0.23% 증가하고, 한계기업 비중은 0.23%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일본의 제삼자 구조조정 기구처럼 민간과 공공이 함께 참여하는 플랫폼을 도입해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간을 보완하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장기간 끌고 가는 대신 잔존 가치를 신속하게 회수·재배분할 수 있다는 논리다.최기산 한은 거시경제연구팀 과장은 “정부 지원을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지원이 기업의 성장 인센티브를 왜곡하지 않도록 구조를 다시 설계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좀비기업을 줄이는 것은 필요하지만, 회생 여지가 있는 기업은 사업 재편과 정리를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