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사태 교훈 반영 … 내년 1월부터 새 긴급여신 체계 시행은행 자산 70% 차지한 대출채권 활용해 유사시 자금 공급사전수취·모의훈련 도입 … 위기 시 ‘지연 없는’ 유동성 지원투매 방지·시장 불안 완화 기대, 중앙은행 역할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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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이 금융기관의 대출채권을 담보로 활용하는 긴급여신 지원체계를 새로 구축한다. 디지털 금융 확산으로 대규모 예금 인출 등 유동성 충격이 빠르게 전이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기존 시장성증권 중심의 유동성 공급 체계를 보완하는 안전판을 마련한 것이다. 새 제도는 내년 1월 2일부터 시행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최근 금융기관 보유 대출채권을 긴급여신의 적격 담보로 인정하는 규정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금통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은행 등 금융기관은 대출채권을 담보로 중앙은행의 긴급 유동성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자금조정대출 등 상시대출제도에서 국공채 등 시장성증권이 사실상 유일한 담보였다.

    이번 조치는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유동성 위기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처럼, SNS를 통한 불안 확산으로 단기간에 대규모 예금 인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한은은 유사시 금융기관 자산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대출채권을 담보로 활용해야 충분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제도의 핵심은 ‘사전 수취(pre-positioning)’다. 대출채권은 시장성증권과 달리 담보 활용을 위한 정보 수집과 적격성 심사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한은이 평상시부터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채권 정보를 받아 적격 여부와 담보인정가액 산정을 미리 진행한다. 위기 시 실무 지연으로 자금 공급이 늦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다.

    담보로 인정되는 대출채권은 우선 법인기업 대상 부동산담보대출과 신용대출로 제한된다. 차주의 신용등급은 BBB- 이상이거나 예상부도확률 1.0% 이내로 요건을 설정했고, 금융회사 및 특수관계자 대출, 후순위 대출은 제외된다. 한은은 제도 안착 상황을 보며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힐 방침이다.

    한은은 이 제도가 금융기관의 비상 자금조달 수단을 확충하는 동시에 금융시장 불안을 예방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시적 자금 부족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보유 채권을 급매각하지 않고도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이미 대출채권을 담보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제도 도입의 배경으로 꼽힌다.

    한은은 연말까지 금융기관과 IT 시스템 점검과 테스트를 마친 뒤 내년부터 제도를 본격 가동하고, 필요시 모의훈련을 통해 위기 대응 준비태세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