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타고 커진 시장, 한국산보다 ‘한국풍’이 주도일본 대기업 로컬라이징 전략에 매출 80% 잠식aT "가성비 경쟁 한계 … 본고장 맛 중심 틈새시장 공략해야"
  • ▲ 일본에서 판매 중인 한국풍 유사제품ⓒ김보라 기자
    ▲ 일본에서 판매 중인 한국풍 유사제품ⓒ김보라 기자
    일본 식품 시장에서 이른바 ‘일본산 K푸드’가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분명히 확대되고 있지만, 실제 시장 성장은 일본 내에서 제조되거나 제3국에서 생산된 ‘한국풍 유사제품’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한국산 제품과 외형·콘셉트는 유사하지만 원산지는 다른 제품들이 대거 유통되며 시장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1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한 '일본 식품시장 내 한국풍 유사제품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올해 7월까지 일본 내 한국풍 유사제품 수는 약 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2018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91개월간의 POS 데이터를 활용해 일본 이온그룹 내 점포를 분석한 결과다. 조사 대상은 일본 전역의 슈퍼마켓 3800곳, 드럭스토어 450곳, 편의점 30곳이다.

    이 기간 ‘한국식품 관련 전체 시장 규모’는 2018년 160억엔에서 2024년 615억엔으로 약 4배 가까이 성장했는데, 이 가운데 한국풍 유사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했다. 매출 규모 역시 같은 기간 115억엔에서 400억엔을 넘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aT는 한류 콘텐츠 확산으로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일본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과 한국풍 유사제품이 혼재돼 유통되는 실태를 데이터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성이 제기돼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 

    상품명이나 패키지를 한국 제품처럼 연출했지만 실제로는 한국산이 아닌 제품들이 소비자에게 혼란을 주고, 장기적으로 한국 식품의 시장 점유율 확대에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분석 결과,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국 드라마·영화 등 콘텐츠가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며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커졌고, 2023년 이후 한국 여행이 재개되자 오히려 일본 내에서 한국풍 유사제품 출시가 더 늘어나는 흐름이 나타났다. 

    한국풍 유사제품 성장 배경으로는 일본 대기업들의 전략적 대응이 꼽힌다. 

    일본 식품 대기업들은 한류 열풍으로 높아진 소비자 관심을 빠르게 포착해, 일본인의 입맛과 식생활에 맞춘 로컬라이징 제품을 개발하고 자국의 강력한 유통망을 활용해 전국 단위로 확산시켰다. 

    이들 제품은 많은 일본 소비자에게 ‘한국 음식의 첫 경험’이 되며 시장 저변을 넓혔다.

    주요 성장 카테고리는 김치, 면류, 냉동식품이다. 

    도카이츠케모노는 일본인 입맛에 맞춘 김치를 앞세워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닛픈은 한국 맛을 콘셉트로 한 1인용 냉동식품과 원플레이트 제품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반면 한국 식품업체들은 가격 경쟁에서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aT는 “최대 과제는 일본 대기업이 전개하는 한국풍 유사제품과의 가격 경쟁”이라며 “엔저 현상과 물류비 급등으로 수입 한국산 제품의 가성비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일본 시장은 ‘간편하고 저렴한 한국풍 제품’이 대중 시장을 차지하고, ‘본고장의 맛을 지향하는 한국산 제품’이 틈새시장을 형성하는 양극화 구조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aT는 한국 식품업체를 위한 대응 전략으로 ▲가격·가치 전략의 정교화 ▲‘본고장의 맛’에 대한 재정의와 집중 ▲편의성 강화 ▲채널 특성에 맞춘 제품 포트폴리오 구축 등을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일본 시장에서 단순한 한류 효과에 기대기보다, 한국산만이 줄 수 있는 차별적 가치를 얼마나 명확하게 전달하느냐가 향후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