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수용 강제해도 수술실·ICU 안 열리면 제자리마취·외과·중환자 인력 공백, 응급의료 병목의 실체소아·중증 응급은 이미 임계점 … 구조 개편 없인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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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강제로 환자를 받는다면 '뺑뺑이' 위기는 끝날까.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119 구급차 안에서 사람이 죽어간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한 데 이어 김민석 국무총리까지 119구급대원 현장을 찾아 직접 의견을 들으며 국가적 의제로 재부상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는 응급실 대책의 공통분모는 '수용 확대'다.그러나 수술실과 중환자실, 즉 배후진료가 열리지 않으면 환자는 결국 다시 떠돌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뺑뺑이는 응급실 진입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를 떠받치는 구조가 붕괴된 결과라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전(前)병원 단계부터 꼬인다응급환자가 발생하면 119는 병원 수용 여부를 전화로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뺑뺑이가 발생하면 흔히 '몇 곳을 전전했다'며 숫자가 낙인처럼 남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문제 삼아야 할 부분은 전화를 몇 통 돌렸느냐가 아니라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다.모 권역응급센터장은 "지역에서 여러 병원에 전화를 돌려도 실제로 최종 치료 인프라를 갖춘 곳은 두세 곳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며 "그 병원들이 동시에 수용이 불가능하면, 나머지 전화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보는 공유되지만 배정 권한과 책임이 분산된 구조가 전원 단계에서부터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는 지적이다.의료계는 권역별 전원 컨트롤타워에 배정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지 않는 한, 전화 확인을 반복하는 전원 지연은 구조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고 본다. 119가 병원을 하나하나 '찍는' 방식이 아니라, 컨트롤타워가 이송 병원을 확정 배정하고 병원은 그 결정에 따라 수용 책임을 지는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작 응급실 문제가 아니라 배후진료가 안 되는 것"국립중앙의료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응급실 '수용 곤란' 고지는 11만5000건을 넘어섰고, 올해도 9월 기준 이미 9만 건을 상회했다. 최근 들어 거절 사유 1위는 '인력 부족'이다. 그러나 현장의 설명은 다르다.지방 국립대병원서 근무 중인 한 교수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없어서 수용을 못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부분은 응급실 이후를 맡아줄 배후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을 인력 부족으로 표현한 것이다. 입원·전원 지연으로 병상 회전이 멈추면 응급실은 열려 있어도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의료계는 '무조건 받아라'는 접근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병목을 응급실 안으로 밀어 넣는 처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응급실 체류시간이 늘고 그 피해는 중증 환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결국 응급실 뺑뺑이를 일으키는 결정적 절차는 응급실 이후다. 뇌출혈·중증 외상·응급수술 환자에게 응급처치는 시간을 버는 단계에 불과하다.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수술실·중환자실·시술실이 실제로 가동되느냐다.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최근 성명에서 "응급실 뺑뺑이는 응급실 문 앞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 진료 연속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응급수술 가능 여부와 중환자실 입실 가능성은 결국 숙련된 마취의료 인력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수술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외과 집도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수술 간호 인력, 수술 후 중환자실까지 동시에 작동해야 하는 배후진료 인프라의 총합이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환자 치료는 멈춘다. "수술실이 있다"는 말을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왜곡이 발생한다.소아 응급의료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24시간 소아 진료가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은 전체의 10%에도 못 미친다. 실제 소아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통계보다 훨씬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장은 "소아 응급실 뺑뺑이는 오래전부터 예견된 결과"라며 "지금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소아 난민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소아청소년병원 현장에서는 "소아·중증 응급에서 강제 수용은 가장 위험한 접근"이라며 "대통령 주재 공개 토론과 구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그럼에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는 응급실 수용 거부를 금지하고 119가 이송 병원을 직권으로 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대한응급의학회는 "수용 여력이 없는 응급의료기관 문 앞에 구급차가 줄지어 대기하는 새로운 병목이 생길 수 있다"며 "재이송 부담이 현장에 전가되면, 정작 다른 응급환자 대응이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뺑뺑이 줄이려면 … 해법은 '강제' 아닌 '구조'현장의 전문가들은 응급실 뺑뺑이를 줄이기 위한 해법으로 '강제 수용'이 아닌 구조 전환을 공통으로 제시한다. 응급실 문을 더 열어놓는 방식이 아니라 응급실 이후 단계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핵심은 배후진료 인프라에 대한 '대기 비용' 보전이다. 응급수술과 중환자 치료는 환자가 없어도 인력과 시설을 상시 대기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재 수가는 '치료가 발생했을 때'만 보상이 이뤄진다.이로 인해 야간·휴일 수술실과 중환자실 가동이 축소되고 응급실 수용 여력도 함께 줄어든다. 의료계는 응급수술·중환자 치료를 수행할 수 있는 병원에 대해 성과가 아닌 대기 자체를 보상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마취·외과·중환자 인력 유지에 대한 직접적 유인책이다. 응급의료의 병목은 응급의학과가 아니라, 그 이후를 떠받치는 필수 진료과에서 발생한다.특히 마취통증의학과는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여는 스위치 역할을 하지만 현재 제도에서는 과중한 야간·응급 부담에 비해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 인력 유출이 이어질 경우 응급실 수용 확대 정책은 현실에서 작동하기 어렵다.소아·중증 응급의 별도 설계다. 소아 응급의료는 성인 체계에 ‘덧붙이는 방식’으로는 감당이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판단이다. 소아 최종치료가 가능한 병원 자체가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강제 수용은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의료계는 권역 단위 소아 응급·중증 치료 체계를 별도로 설계하고, 현재 시범사업에 머물러 있는 지역협력 모델을 조기 본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여기에 더해 사법 리스크 완화도 빠지지 않는다. 의료계는 선의의 응급·필수의료 행위까지 형사 책임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에서는, 수용 확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특권 요구가 아니라, 응급실과 배후진료를 실제로 작동시키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는 주장이다.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응급·필수의료에서 선의의 의료행위까지 형사 책임 위험에 노출되면 의사들은 보수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결국 환자 보호에 실패하는 구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