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은행 대출 연체율 0.58%, 전월比 0.07%p↑연체→부실→자본 부담 … 악순환 초입자영업자 대출 '역성장' … 연체 신호에 은행권 선제 대응"숫자보다 흐름 주목해야 … 부실 확대, 눈에 띄는 않게 시스템 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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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환율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국내 금융권에 또 다른 경고등이 켜졌다.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연체율과 부실채권(NPL) 지표가 동반 상승하며, 금융권 안팎에서는 ‘부실 악령’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환율 변동성보다 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위험이 금융권 내부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전체 연체율은 0.58%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말 대비 0.07%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절대 수준만 놓고 보면 아직 관리 가능한 범위라는 평가도 있지만, 시장에서는 연체율 상승의 ‘방향’과 ‘속도’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취약 부문에서의 악화가 두드러진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한 달 새 0.09%포인트 뛰었고, 같은 기간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도 0.07%포인트 올랐다. 고금리·고물가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상환 여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연체율 상승과 함께 부실채권 비율 역시 완만하지만 꾸준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자금 경색을 넘어 연체 자산 일부가 구조적 부실로 전이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연체가 부실로 전이되고, 부실이 다시 자본 부담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악순환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환율은 정책 대응과 시장 개입으로 완화될 여지가 있는 반면, 부실은 한 번 현실화되면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은행권은 이러한 신호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대출 운용을 빠르게 보수화하고 있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이달 중순 기준 325조1728억원으로 올해 들어 4490억원 감소했다. 

    자영업자 대출 감소는 내수 부진의 직격탄을 맞은 결과로 해석된다. 매출 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고금리 부담까지 겹치며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율이 빠르게 높아졌고, 이에 따라 은행권은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두며 대출 심사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신규 대출 취급을 줄이고, 리스크가 큰 차주에 대해서는 사실상 문턱을 높인 결과다.

    다만 이는 또 다른 딜레마를 낳는다. 은행의 방어적 운용은 금융 시스템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자금 조달이 막힌 취약 차주에게는 경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연체와 부실이 더 빠르게 늘어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경영 위축이 소비·고용 부진으로 이어지고, 다시 금융권 건전성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번지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숫자 자체보다 흐름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라며 “환율 급등은 단기간에 시장을 흔들지만, 부실 확대는 눈에 잘 띄지 않게 금융 시스템 전반을 잠식한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교수는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의 현금 흐름이 악화되고 있고, 누적된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까지 겹치며 연체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며 “특히 한국 경제는 내수 중심 산업 비중이 높아 환율 등 대외적 위험보다 대내적 위험이 더 크게 체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권은 일괄적인 대출 축소보다는 현금 흐름이 양호한 차주에게 금리 인하 등 상환 유인을 제공하고, 회수가 어려운 부실은 조기에 정리하는 한편 대출 심사를 보다 정교하게 고도화하는 등 균형 잡힌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