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여부·병기 가리지 않은 237명 분석…한국인 특화 데이터 첫 구축KRAS 증폭·TMB·HRD로 예후·항암 반응 예측 가능성 제시서구 중심 연구 한계 넘어 정밀의료 실현 토대 마련
  • ▲ (왼쪽부터)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황진혁, 정광록, 이종찬 교수, 임상유전체의학과·정밀의료센터 김진호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 (왼쪽부터)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황진혁, 정광록, 이종찬 교수, 임상유전체의학과·정밀의료센터 김진호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췌장암 유전체 데이터가 서구권에 편중돼 온 가운데 국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첫 대규모 유전체 분석 연구가 공개됐다. 한국인 췌장암 환자의 예후와 항암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가 제시되면서 맞춤형 치료 전략의 실질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소화기내과 황진혁 교수팀이 한국인 췌장암 환자 237명을 대상으로 한 유전체 분석 연구를 통해 국내 첫 대규모 데이터를 확보하고 치료 반응과 생존을 예측할 수 있는 핵심 지표를 검증했다고 23일 밝혔다. 공동 제1저자는 소화기내과 정광록·이종찬 교수, 임상유전체의학과·정밀의료센터 김진호 교수다.

    암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축적되며 발생하고 같은 암종이라도 환자마다 변이 양상이 달라 동일한 치료에도 반응이 크게 달라진다. 이 때문에 최근 암 치료 분야에서는 종양의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환자별로 최적의 치료를 선택하는 정밀의료가 핵심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췌장암은 국내 10대 암 가운데 생존율이 가장 낮은 암으로 꼽히며 유전자 변이가 다양해 치료 반응의 개인차가 큰 대표적 암종이다. 그러나 기존 췌장암 유전체 연구는 대부분 서구권 환자 위주로 이뤄졌고 수술로 절제된 조직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실제 임상 현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췌장암 환자의 절반 이상은 진단 시점에 이미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병기의 환자를 연구에 포함했다. 내시경 초음파를 활용한 세침흡인검사로 조직을 확보한 뒤, 전장엑솜시퀀싱(WES)과 전장전사체분석(WTS)을 병행해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와 유전자 발현 양상을 동시에 분석했다. 여기에 병기, 전이 양상, 치료 여부, 생존기간 등 광범위한 임상 정보를 결합해 유전체 특성과 임상 경과의 연관성을 면밀히 살폈다.

    간 전이가 동반된 췌장암 환자군에서는 TP53 변이 증가, 염색체 불안정성 상승, 돌연변이 KRAS의 과도한 복사 등 특징적인 유전체 패턴이 확인됐다. 특히 돌연변이 KRAS가 비정상적으로 증폭된 환자의 경우 간 전이 비율이 84.6%에 달했고 평균 생존기간은 6.8개월로 예후가 매우 불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서구권 췌장암 연구에서 보고된 결과와도 일치한다.

    연구팀은 항암치료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종양변이부담(TMB)과 상동재조합결핍(HRD)의 임상적 유용성도 함께 검증했다. 폴피리녹스(FOLFIRINOX) 항암요법을 받은 환자군을 분석한 결과, TMB가 높은 환자는 낮은 환자보다 생존기간이 평균 5.6개월 더 길었다(18.4개월 vs 12.8개월). 돌연변이가 많을수록 암세포 표면의 이상 신호가 증가해 면역세포가 암을 인식·공격하기 쉬워진다는 설명이다.

    HRD 역시 치료 반응 예측에 중요한 지표로 확인됐다. HRD를 유발하는 유전자 변이를 보유한 환자군은 백금 계열 항암제 치료 반응률이 75.0%, 생존기간은 32.7개월로 HRD 음성 환자군(34.3%, 12.4개월)을 크게 상회했다. 또 기존 유전자 검사에서는 HRD 변이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유전체 흉터 분석에서 HRD 양성으로 분류된 환자도 전체의 20.5%에 달했다. 

    이들 역시 백금 항암제에 높은 치료 반응률(66.7%)을 보여 두 분석법을 병행할 경우 치료 혜택 대상 환자를 보다 폭넓게 선별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진혁 교수는 "유전체는 인종별 차이가 큰데도 외국 데이터를 그대로 적용하면 치료 효과를 잘못 평가할 위험이 있다"며 "이번 연구는 췌장암을 비롯한 다양한 암종에서 한국인 환자에게 최적화된 정밀의료를 구현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이공분야기초연구사업과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암 분야 국제 학술지 'Cancer Letters(IF 10.1)'에 게재됐다. 또한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선정한 '한국을 빛낸 사람들(한빛사)'에도 등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