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기기 3사 모두 작년 북미 매출 1조원 돌파현지 전력기기 가격 3년새 2배 이상 상승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송·배전 인프라 투자 급증
  • ▲ 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효성중공업 765kV 초고압변압기 ⓒ효성중공업
    ▲ 미국 송전망에 설치된 효성중공업 765kV 초고압변압기 ⓒ효성중공업
    인공지능(AI)이 촉발한 전력 수요 급증이 글로벌 전력기기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초고압 변압기와 송·배전 설비 발주가 폭증하면서 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 등 ‘K전력기기 3사’는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3사 모두 지난해 북미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수주잔고는 27조원에 육박한다. 현지 전력기기 가격도 최근 3년 사이 두 배 이상 오르며 공급자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

    다만 호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북미 증설 투자, 국내 에너지고속도로(HVDC) 수주전, 글로벌 시장 주도권 경쟁 등 과제도 만만치 않다. <뉴데일리>는 ‘진격의 K전력기기’ 시리즈를 통해 AI발 북미 특수의 실체와 생산능력 확대 전략, 그리고 대형 인프라 사업을 둘러싼 3사의 경쟁 구도를 차례로 짚어본다.


    북미가 한국 전력기기 기업들의 ‘주력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매출의 중심축이 북미로 이동하고, 수익을 끌어올리는 초고압 변압기 비중도 빠르게 확대되는 흐름이다. 과거 중동 플랜트 발주나 일회성 대형 프로젝트에 기대던 성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AI 데이터센터 증설, 노후 전력망 교체, 재생에너지 계통 확충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전력기기 산업은 구조적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 등 이른바 ‘K전력기기 3사’는 지난해 모두 북미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HD현대일렉트릭의 북미 매출은 1조6149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4259억원, 2023년 7281억원, 2024년 1조62억원에 이어 3년 만에 약 4배 성장했다. 효성중공업도 지난해 북미 매출이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LS일렉트릭 역시 북미 매출이 1조원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합산하면 3사의 북미 매출은 최소 3조6000억~4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현재 진행 중인 증설 물량이 반영될 경우 올해 합산 매출이 5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 LS일렉트릭의 부산 사업장 2생산동 모습 ⓒLS일렉트릭
    ▲ LS일렉트릭의 부산 사업장 2생산동 모습 ⓒLS일렉트릭
    ◆ 데이터센터가 바꾼 전력 투자 지형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산업용 전력 수요와 다르다. 고성능 GPU 서버가 밀집 배치되면서 단위 면적당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고, 이에 맞춰 변압기와 배전 설비 용량도 상향된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중형 도시 전력 수요에 맞먹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에너지부는 2030년까지 약 100GW 규모의 신규 전력 공급 확보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약 50GW가 데이터센터 수요로 추정된다. 발전 설비 확충과 동시에 이를 연결할 송전망·변전 설비 투자가 필수적이다. 초고압 변압기, GIS, 배전반 등 핵심 장비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배경이다.

    노후 설비 교체 수요도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 내 배전 변압기의 상당수가 30년 이상 된 설비로 교체 시점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수요가 아니더라도 이미 교체가 필요한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증설이 겹치며 발주가 가속화되고 있다.

    수요 확대에 비해 공급은 제한적이다. 초고압 변압기는 생산설비 구축에 수년이 소요되고, 고숙련 인력 확보도 쉽지 않다. 이로 인해 미국 전력기기 가격은 최근 3년 사이 두 배 이상 상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품목은 납기가 2~3년까지 늘어나 공급 부족이 지속되고 있다.

    공급자 우위 시장은 곧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해 영업이익 9953억원, 영업이익률 24.4%를 기록했다. 효성중공업은 매출 5조9685억원, 영업이익 7470억원을 달성했고, 중공업 부문 4분기 영업이익률은 20.2%로 전년 동기 대비 약 9%포인트 상승했다. LS일렉트릭은 매출 4조5518억원, 영업이익 3897억원을 기록했다.

    과거 전력기기 산업은 원가 부담과 가격 경쟁에 따른 마진 압박이 반복되던 업종이었으나 현재는 수주잔고가 2~3년치를 웃도는 상황에서 제조사가 가격 협상력을 확실하게 쥐고 가는 흐름이다. 

    효성중공업의 경우, 멤피스 공장이 미국 내에서 765kV 변압기를 생산하는 유일한 시설이라는 점이 향후 중장기 수주 경쟁에서 차별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효성중공업은 지난 10일 미 송전망 운영사와 약 7870억원 규모의 765㎸ 초고압변압기·리액터 등 전력기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 ◆ 수주잔고 27조 … 실적 가시성 확보

    지난해말 기준, 전력기기3사의 수주잔고는 약 27조원 수준이다. 효성중공업 중공업 부문 수주잔고는 2023년 5조8000억원에서 2024년 9조2000억원, 2025년 11조9000억원으로 확대됐다. LS일렉트릭은 약 5조원, HD현대일렉트릭은 약 10조원 수준의 수주잔고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통상 수주잔고는 2~3년치 매출을 커버하는 규모다. 단기 변동성에 흔들리기보다 중장기 실적이 확보된 구조로 전환됐다는 의미다.

    AI, 전기차, 신재생 확대, 노후 전력망 교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번 사이클은 단기 경기 반등과는 다르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전력기기 산업은 경기 민감 업종에서 필수 인프라 업종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도 미국 수출 물량 증가로 전력기기 3사의 수익성은 더욱 개선될 것"이라며 "향후 관세 환입 효과까지 더해질 경우 이익 개선 폭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미 전력 인프라 투자는 단기 발주 확대가 아니라 구조적 재편 과정에 가깝다"며 "AI 데이터센터 증설과 노후 전력망 교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최소 2030년 전후까지는 견조한 수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