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무역법 301조 조사 착수…과잉생산 겨냥 통상 압박 본격화반도체·자동차는 충격 제한적…석화·철강은 '삼중고' 직격탄납사 가격 급등·고율 관세 부담 겹쳐…구조개편 재설계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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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평택항. ⓒ뉴시스
미국이 대법원 판결로 무력화된 상호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에 관련된 조사에 착수하면서 한국 산업계 전반에 걸친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과 철강 산업은 새로운 관세 체제에서 가장 타격을 입을 분야로 거론되고 있다.석화 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으로 1차 위기를 맞은데 이어 중동발 리스크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원가 상승 압력에 놓였다. 여기에 통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삼중고에 직면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석화 산업 구조 개편의 판을 새로 짜야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16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연방 관보를 통해 무역법 제301조에 따라 한국을 포함해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인도, 동남아 주요국가 등 총 16개 교역상대국을 대상으로 조사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관보를 보면, USTR은 제조업 부문에서의 구조적 과잉생산 및 생산과 관련된 무역상대국의 행위·정책·관행이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이며, 미국 산업에 부담을 주거나 제한을 가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무역법은 관세율 상한이 없어 조사 결과에 따라 특정 무역상대국에 광범위한 제제를 가할 수 있게 된다.USTR은 무역법 301조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해당 국가들에 대해 협의를 요청했다. 해당 조사에 대한 각 국가의 서면 의견은 이달 17일부터 다음달 15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USTR은 이번 조사와 관련해 5월 5일부터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앞서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통해 총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를 이행하기로 약속하고,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췄는데, 상호관세 무효 판결 이후 현재는 무역법 122조에 따라 유효기간이 최장 150일인 글로벌 관세 10%를 적용받고 있다. 글로벌 관세는 오는 7월 24일 만료되며, 이후 미국은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이번 301조에 대한 조사가 미국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했던 상호관세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인 만큼, 한국 산업에 미칠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다만 USTR이 한국을 겨냥해 "크거나 지속적인 무역 흑자를 통해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 및 생산의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미국은 과잉생산 우려 산업으로 자동차, 화학, 반도체, 철강, 조선 등을 지목했고, 한국에 대해선 전자장비,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기계, 철강, 선박 등이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들 산업에 대해선 향후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자동차와 반도체의 경우 이번 조사로 미칠 충격이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자동차는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15%의 품목 관세율을 적용받고 있으며, 반도체와 의약품도 향후 다른 국가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적용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특히 반도체가 이끄는 정보통신산업(ICT)의 경우 2월 수출이 336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월(165억4000만달러) 대비 103.3% 증가했다. 무역수지는 205억7000만달러로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ICT 수출은 국가 전체 수출액(674억5000만달러)의 49.8%를 차지하며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이 251억7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60.8% 증가하며 전체 수출을 견인했다.선박은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의 한 축인 한미 조선협력프로젝트(마스가) 추진으로 오히려 우대를 받고 있는 분야다.문제는 석화와 철강 산업이다. 석화 업계는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로 경쟁력을 잃어 구조개편이 추진 중인 상황에서 중동 전쟁까지 터지면서 유가 급등으로 납사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 시설인 여천NCC가 최근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불가항력이란 원료 부족 등으로 공급 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울 때 면책을 위해 발동하는 조치다.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주요 석화 업체들도 잇따라 불가항력 가능성을 통보했다.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의 핵심 원료인 납사는 국내 물량 절반이 수입산이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원유를 정제해 생산하고 있다. 유류 관련 정보업체 '스파르타 커모디티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수입산의 60% 가량은 현재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또 국내 도입 원유의 약 70%는 중동산이어서 유가 상승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되는 구조다.실제 S&P 글로벌 에너지에 따르면 지난달 이래 납사 가격이 50% 급등해 톤(t)당 87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조치로 대부분의 선박 통행이 차단되면서 납사 확보가 더욱 어려워졌다.업계에서는 납사 비축 물량은 다음달쯤 동이 날 것으로 보고 있어 중동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추가 불가항력 선언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정부가 추진하는 석화 구조개편 작업도 큰 틀에서 다시 짜야할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통상부는 지난달 25일 대산 석화 단지에서 향후 3년간 110만t 규모의 생산 감축을 골자로 한 1호 구조개편안을 승인했다.산업부에 따르면, 국내 연간 납사 생산능력은 여수·울산·대산에 위치한 나프타분해시설(NCC) 10곳을 합쳐 총 1470만t 수준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석화 업계 사업재편 자율 협약식을 계기로 전체 생산 물량의 25%에 해당하는 최대 370만t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한 업계 관계자는 "중동 사태와 미국발 통상 불확실성으로 인해 여수·울산 단지의 구조개편에도 상당한 압력이 가해질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감축 목표를 더 상향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철강 업계 역시 이미 미국의 50% 고율 관세를 적용받고 있어 상당한 부담이 가해진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발 공급 과잉까지 겹치며 산업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추가 통상 압박이 가해질 경우 철강 업계에 부담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실제 충남도에 따르면 철강 산업이 주력인 당진의 전체 제조업 생산액 31조2000억원 가운데 철강 산업 비중은 60%(약 18조7000억원)를 차지하는데, 지난해 상반기 당진 주요 철강사가 66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당진의 법인지방소득세는 2022년 317억원에서 2024년 28억원으로 90% 넘게 급감했다.앞서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전남 여수(석화), 충남 서산(석유화학), 경북 포항(철강), 전남 광양(철강) 등을 1호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최근 석화 산단이 소재한 울산과 철강이 지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당진이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되면 금융·고용, 경영 컨설팅 등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정부는 "기존 한미 관세합의에 따른 이익균형 유지와 주요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 확보라는 원칙 하에 미측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며 "정부, 업계, 전문가 등으로 민관 합동 대응체제를 구축해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