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도 빚으로 버티는 시장, ‘퇴출 비용’이 만든 역설1000조 대출 위 자영업 … 금리 한 번에 흔들리는 생존 구조막힌 대출·쌓이는 부채, 취약 차주 고금리로 밀린다정리되지 않는 부실 … 자영업 위기, 금융 리스크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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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치킨집. 저녁 장사가 끝난 밤 11시, 주인 김모씨(45)는 텅 빈 홀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하루 매출이 20만원도 안 되는 날이 많아요. 그런데 문 닫을 생각은 못 합니다. 철거비에 보증금 손해까지 생각하면 더 무서워요."고물가와 고금리 충격 속에서 자영업자들이 '버티기도, 접기도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영업을 이어가고, 결국 폐업할 때도 빚을 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폐업도 돈"…가게 접으려면 또 빚자영업 시장에서 가장 큰 장벽은 '진입'이 아니라 '퇴출'이다.8일 중소벤처기업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점포 철거와 원상복구, 집기 정리 등에 들어가는 평균 폐업 비용은 약 379만원이다. 업종에 따라 500만~1500만원까지 치솟는 사례도 적지 않다.문제는 이 비용을 감당하는 방식이다. 폐업 자금의 63%는 자기자금이지만, 지인 차입(38.3%)이나 금융권 대출(35.5%)까지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 또다시 빚을 지는 구조다.경기 고양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씨(38)는 "권리금도 못 받고 나가면 수천만원이 날아간다"며 "차라리 적자라도 버티는 게 손실이 덜한 선택"이라고 토로했다.임대차 구조도 발목을 잡는다. 계약 기간이 남으면 위약금이 발생하고, 권리금 회수도 쉽지 않다. 결국 폐업은 단순한 '영업 중단'이 아니라 또 다른 재무 리스크로 작용한다.◆ 1000조 빚 위의 생존 … 버티면 버틸수록 늪버티기를 가능하게 하는 마지막 수단은 대출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092조 9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다. 1인당 평균 대출 규모는 3억 4000만원 수준이다.금리 상승은 부담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운다.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연간 이자 부담이 1조 8000억원 증가하고, 0.5%포인트 상승 시 3조 5000억원 이상 늘어난다.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연체 리스크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은 12%를 웃돌고, 전체 자영업자 연체율도 2%에 근접하고 있다. 다중채무자 비중 역시 60%에 육박한다.결국 자영업자들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현금 흐름을 유지하는 '버티기 영업'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채는 더 쌓이고, 구조적 취약성은 더 깊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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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 막히고, 버티기도 한계 … 구조적 '퇴로 부재'최근에는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까지 겹치며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 사업자대출 용도 증빙이 강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비상 자금줄' 역할을 하던 마이너스통장조차 막히고 있는 것.주요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신용대출 증가율은 올해 들어 한 자릿수 수준으로 급격히 둔화됐고, 일부 은행은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기존 대비 20~30% 축소하거나 신규 개설 자체를 제한하고 있다.여기에 2금융권마저 문턱을 높이고 있다. 새마을금고와 신협이 이미 가계대출 취급을 대폭 줄인 데 이어, 지역 농협과 수협 등 상호금융권도 대출 총량 관리에 나서면서 사실상 추가 차입이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상호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은 최근 1%대 초반까지 떨어지며 급격히 둔화됐고, 일부 지역 단위 조합에서는 신규 대출을 중단하거나 한도를 크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자영업자들은 제1·2금융권 모두에서 밀려나면서 카드론, 캐피탈 등 연 15% 안팎의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닫는 순간 무너진다" … 출구 없는 경제전문가들은 지금의 자영업 구조를 진입은 쉽고 퇴출은 어려운 시장으로 진단한다. 문제는 이 같은 흐름이 점포의 과밀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금융권 전반의 잠재 부실로 이어진다는 점을 경고한다.한국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회생 가능성이 낮은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폐업 지원과 구조조정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대출을 보유한 사업장 약 362만 곳 가운데 이미 50만 7000곳(14.0%)이 폐업 상태다.대출 사업장 7곳 중 1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영업 중인 부실'과 '폐업 후 미상환 부채'가 동시에 늘어나는 구조다. 회생 가능성이 낮은 차주까지 장기간 시장에 남아 있을 경우 부실이 누적되면서 금융권 전반으로 리스크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한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은 자영업자가 실패해도 시장에서 정리되지 못하고 부채만 쌓이는 구조"라며 "이 부실이 금융권으로 넘어가는 순간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 리스크로 바뀌게 된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