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파이프라인, 1%대 불과 … 후속 개발 사실상 '실종'종근당 '지텍', 3년 이상 급여 대기 … 허가 이후 불확실성"허가는 신약급, 약가는 제네릭급" … 리스크-보상 괴리 고착정책 확대에도 체감 낮아 … 약가인하 속 "개발보다 개량" 전환
  • ▲ 동아에스티 연구원. ⓒ동아에스티
    ▲ 동아에스티 연구원. ⓒ동아에스티
    한때 국산 신약의 '효자품목'으로 기대를 모았던 천연물 신약이 개발 현장에서 밀려나는 흐름이다. 시장에 안착한 기존 품목은 그나마 버티고 있으나, 그 뒤를 잇는 신규 파이프라인은 사실상 끊긴 상태다.

    허가는 신약 수준으로 이뤄지지만, 급여와 약가에서는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 구조가 이어지면서다. 천연물 신약은 이제 '성공 사례'보다 '후속 개발 부재'로 설명되는 분야가 됐다.

    24일 국가신약개발재단의 '국내 신약개발 파이프라인 조사 결과 분석'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은 모두 2162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천연물 신약은 27건에 그쳤다. 전체의 1.24% 수준이다. 바이오 신약 1149건(53.1%), 합성 신약 932건(43.1%)과 비교하면 사실상 주변 영역으로 밀려난 모습이다.

    특히나 국내 신약개발의 89.2%가 산업계 주도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천연물 신약 축소는 기술적 한계라기보다 기업의 사업성 판단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현장에서도 전략 변화는 분명하다. 동아에스티는 2002년 개발한 애엽추출물 기반 천연물 신약 '스티렌'을 기반으로 복용 편의성을 개선한 개량신약 개발에 나섰다. 신규 천연물 신약 개발보다는 검증된 기존 품목의 생명주기를 연장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부각되는 대목이다.

    반면 신규 진입은 구조적 제약에 가로막혀 있다. 종근당의 천연물 의약품 '지텍'의 경우 2022년 7월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이후 약가 및 급여 등재 절차가 지연되면서 3년 이상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지텍 사례는 허가 이후에도 급여 등재와 약가 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수익화가 지연되는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종근당은 임상 3상에서 기존 치료제 대비 우수성을 입증했지만, 허가 이후 곧바로 수익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여기에 대조약으로 활용된 애엽추출물 제제의 급여 재평가와 약가 조정 변수까지 겹치면서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허가를 받더라도 출시와 급여, 약가가 제때 연결되지 않는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회수시점을 가늠하기 어렵다.

    A제약 관계자는 "지텍 사례를 보면 허가 이후에도 수익화가 보장되지 않는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기업이 신규 개발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 기존 품목을 기반으로 한 개량 전략이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말했다.
  • ▲ 기관·약물유형별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 260410 ⓒ국가신약개발재단
    ▲ 기관·약물유형별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 260410 ⓒ국가신약개발재단
    이 같은 흐름은 제도 구조와 맞물려 있다. 천연물 신약은 허가 과정에서 독성·약리·임상 등 신약과 동일한 수준의 자료를 요구받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심사 기준을 강화하면서 안전성과 유효성 입증에 있어 사실상 신약과 같은 검증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허가 이후다. 건강보험 등재 과정에서는 기존 생약 사용례 등을 이유로 자료제출의약품으로 분류되면서 약가 산정은 제네릭 수준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임상에서 비열등성이나 우월성을 입증하더라도 이를 약가에 반영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신약 수준의 비용과 시간을 투입하고도 제네릭 수준의 보상에 머무르는 '리스크-보상 괴리'에 직면하게 된다. 업계에서 "심사 허들은 신약급인데, 보상은 제네릭 수준"이라는 지적이 반복되는 이유다.

    기존 품목을 둘러싼 환경도 녹록지 않다. 스티렌을 포함한 애엽추출물 제제는 급여적정성 재평가 대상에 오르면서 한때 급여 퇴출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결과적으로는 약가인하를 전제로 급여가 유지됐지만, 시장 구조는 가격 경쟁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특허 만료 이후 제네릭이 퍼진 상황에서 약가인하까지 겹쳐 기존 품목의 수익성이 추가로 압박받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신규 개발에 나설 유인이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B약품 관계자는 "지금은 기존 품목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은 환경"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천연물 신약 개발에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부에서도 천연물 신약의 연구개발을 장려하고 있지만, 현장 체감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제5차 천연물 신약 연구개발 촉진계획(2025~2029)'을 통해 연구개발 지원 확대, 표준화 자원 지원체계 구축, 글로벌 진출 인프라 확충 등 산업 기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약가 우대 등 사업성과 직결되는 핵심 제도는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연구개발 지원 확대와 실제 시장 진입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이상 기업 입장에서 천연물 신약은 '허가 이후가 더 불확실한 분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A제약 관계자는 "정책 방향은 제시됐지만, 기업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약가와 급여 구조가 그대로라면 투자 판단은 달라지기 어렵다"며 "연구개발 지원과 사업성 확보 사이의 간극이 여전한 만큼 신규 진입 기대는 높지 않다"고 말했다.

    B약품 관계자는 "현재 구조의 문제는 연구개발을 지원받는 것보다 허가 이후 수익화 경로가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책은 확대되고 있지만, 기업이 체감하는 사업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한편 SK케미칼의 '조인스'와 안국약품의 '시네츄라' 등 일부 천연물 의약품은 여전히 시장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조인스의 경우 누적 매출 7000억원을 넘어섰고, 시네츄라도 안국약품의 대표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과거 개발된 1세대 성공 사례라는 점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살아남은 제품이지만, 그 뒤를 잇는 개발 흐름은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