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 중심 공급망 재편 … 도도매 구조 변화 촉발배송·재고·반품 통합관리 … 책임유통 강화 움직임의약품 유통업계 반발 … 공급 통제-수급 불안 논란 확산공급망 경쟁 시대 부상 … 제약사 유통 주도권 전쟁 본격화
  • ▲ 의약품 배송 차량. ⓒ뉴데일리경제 DB
    ▲ 의약품 배송 차량. ⓒ뉴데일리경제 DB
    대웅제약의 '블록형 거점도매'를 둘러싼 갈등이 의약품 유통 주도권 충돌로 번지고 있다. 회사는 배송·재고·반품을 직접 관리하는 책임유통 강화라고 설명하지만, 유통업계는 특정 거점 중심의 공급 통제와 도도매 축소에 따른 수급 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약가가 묶이고 제네릭(복제약)이 넘쳐나면서 시선을 공급망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영업경쟁만으로는 수익성 방어가 어려워지자 물류·재고·거래 데이터를 직접 컨트롤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누고 △인천약품 △백제약품 △복산나이스 △유진약품 △아이팜코리아 등 5개 업체를 거점도매로 선정했다. 기존 40여개 도매업체 중심 공급구조를 소수 거점체계로 재편한 것이다.

    대웅제약이 손을 댄 것은 단순 거래처 숫자가 아니다. 국내 의약품 유통의 핵심축인 '도도매' 구조다. 도도매는 특정 지역에서 품절이 발생하면 다른 도매 재고를 끌어와 메우는 국내 의약품 유통의 완충장치였다. 상품명 처방이 일반적인 국내 구조에서는 특정 제품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가 약국 운영과 환자 조제에 직접 영향을 준다.

    대웅제약은 이 구조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권역별 거점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배송·재고·반품 흐름을 직접 들여다보고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는 이를 책임유통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구조에서는 배송시간 예측이 어렵고, 냉장 의약품의 문고리 배송이나 반품 지연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는 주장이다. 약국이 의약품 위치와 도착시각을 확인하기 어려워 불편이 작지 않았고, 재고 쏠림이 생기더라도 제약사가 즉시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자체 배송관리시스템(TMS)과 AI 기반 재고관리시스템(DCM)을 도입했다. 배송위치와 도착예정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AI로 권역별 재고를 분석해 특정 지역 물량 쏠림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냉장 의약품 관리도 강화했다. 온·습도 유지 차량과 중앙관제 시스템을 결합해 콜드체인을 관리하고, 반품 역시 거점 유통사가 직접 회수해 처리기간을 단축하는 체계로 바꿨다.

    결국 핵심은 데이터다. 과거에는 제품력과 영업력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물류 흐름과 재고 이동, 거래 데이터를 누가 쥐고 있느냐가 경쟁력이 되기 시작했다.

    A제약 관계자는 "대웅제약은 단순 유통 효율화뿐만 아니라 데이터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도 거점도매 구조를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약가인하와 마진 축소가 반복되는 환경에서는 공급망 효율화와 데이터 기반 재고관리가 중장기적으로 불가피한 흐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반발이 거센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이번 정책을 "제약사의 공급망 장악 시도"로 규정하고 있다. 거점도매가 정착되면 중소도매 상당수는 사실상 '하청 물류망'으로 밀려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기존 도도매가 맡아온 수급 완충 기능 역시 약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입찰 공정성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유통업계는 제안서 제출기간이 약 2주에 불과했고, 권역별 거래율 기준 역시 일부 업체에 유리했다고 주장한다. 제주권역의 수도권 배분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선정구조의 투명성 문제도 제기됐다.

    약국가 역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준모) 설문조사에서는 응답 약국의 80% 이상이 수급 불안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일부 약국은 공급 지연과 품절 가능성을 우려하며 대체조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약사회와 지역 약사회 역시 공급 다양성 저하와 약국 선택권 축소가 결국 환자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의약품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도도매 구조는 단순한 유통 관행이 아니라 특정 지역 품절이나 공급 공백을 메우는 완충 기능 역할을 해왔다"며 "거점 중심 구조가 확대되면 공급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반대로 특정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시장 전체가 동시에 흔들릴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웅제약은 공개 경쟁입찰과 정기 평가를 통해 누구에게나 참여기회를 열어뒀고, 거점도매와 일반도매간 거래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독점구조가 아니라 엄격한 물류 기준을 충족한 책임형 파트너십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갈등은 한 제약사와 유통업계의 단순 충돌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업계에서는 거점도매뿐만 아니라 온라인몰, B2B 플랫폼, 생활형 유통채널 확대까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공급망은 좁혀지고 거래는 디지털화하며 소비자 접점은 넓히는 흐름이다.

    B약품 관계자는 "과거에는 제약사가 약을 만들고, 도매는 유통하고, 약국은 판매하면서 역할이 비교적 분리돼 있었지만, 최근에는 제약사들이 물류와 거래 데이터까지 직접 관리하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며 "결국 핵심은 누가 공급망 주도권을 쥐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영업경쟁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웅제약의 거점도매 논란 역시 단순 유통 갈등이 아니라 국내 제약산업이 '유통 플랫폼 시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는 평가다.

    C제약 관계자는 "예전에는 영업망이 경쟁력이었지만, 약가인하와 제네릭 경쟁이 반복되면서 지금은 공급망과 데이터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며 "결국 제약사들이 직접 관리하려는 것은 약이 아니라 유통 흐름 자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