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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4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외환위기를 맞은 지 10년이 되는 지금 우리 경제는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여전히 상당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미래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선진국 진입도 늦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경제학회 등 국내 40여 개 경제 관련 학회가 참가한 공동학술대회에 제출된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된 우울한 전망이다.
박영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우리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고 잠재성장률도 하향세여서 외환위기 이전의 고(高)성장 재현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잠재성장률이 2001∼2004년 4.8%에서 2005∼2014년엔 잘못하다가는 4.0%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인위적 균형발전에 집착해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면서 투자 회복이 지연된 탓이 크다. 1년 이상 끌고도 수도권 공장 증설 허가를 받지 못한 하이닉스반도체가 단적인 사례다. 그나마 설비투자를 이끌어 온 600대 기업의 투자증가율이 전년의 17%에서 올해는 5%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경제성장을 지체시켜 누구나 똑같이 못 사는 게 균형발전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더구나 저성장의 고통은 저소득층에 집중된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자를 외면하고 과잉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 부동산 규제에만 매달려 왔다”고 지적했는데 새겨들을 대목이다.
정부는 성장을 통한 경제의 파이 키우기보다는 증세(增稅)를 통한 재분배 정책에 매달렸다. 그러나 증세에 따른 생산요소 유출로 경제가 성장 탄력을 잃어 가고 있다. 절대적 빈부격차 해소를 고집하다가 성장도 분배도 다 놓친 꼴이다. 지금은 빈곤층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양극화는 오히려 굳어지는 추세라고 이코노미스트들은 지적했다.
‘기업 하기 좋은 여건’ 만들기는 구호에 그쳤다. 기업 규제는 2003년 3월 7794개에서 최근 8083개로 289개 늘어났다.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 유재원 건국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시장을 억압하는 조치를 지속하거나 강화해 서비스산업 등에서 공급 애로가 발생했다”며 형평성 중시 정책의 부작용을 비판했다. 이런 정책의 결과 부동산, 교육, 금융, 관광 등 부문에서 해외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비스수지 적자가 작년 187억6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상품을 수출해 벌어들인 흑자 292억1000만 달러의 대부분을 잠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시장을 억압하는 조치로 한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국내에서 공급받지 못하고 해외로 나가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박영철 교수는 “대선이 있는 올해, 틀림없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특효약’ 같은 정책들을 막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노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정책방향을 반시장적으로 틀거나 복지지출 확대, 군복무기간 단축 같은 정책을 남발하는 경제관료를 경계한 말이다.
현 정부의 남은 1년이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김태준 교수는 민간부문의 자율성 확대로 경쟁과 시장 인센티브 장치의 작동을 유도하면 지속성장도 가능하다고 봤다. 지금이라도 국민합의를 통해 경제운용의 틀을 잘 잡는다면 새로운 성장전략을 찾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