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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킹’ ‘헤라클래스’ ‘뮬란’ 등은 은막 위에 펼쳐졌다 뿐 모두 다 뮤지컬이었다. 애니메이션이라 조금 그렇다고? 오른손에 우산을 들고 왼손엔 가방을 든 줄리 앤드류스의 이미지도 생생한 ‘메리 포핀스’ 등의 뮤지컬 영화, 그리고 세계 최고의 테마파크라는 ‘디즈니 월드’에서 한 시간마다 벌어지는 뮤지컬 쇼도 모두 메이드 인 디즈니였다. 브로드웨이 무대만 아니었을 뿐 그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뮤지컬을 만들어왔던 것이다. 그것도 완성도 높고 대중성 있는 뮤지컬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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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준비된 뮤지컬의 명가(?)인 디즈니가 브로드웨이에 정식으로 뛰어들며 선택한 작품이 바로 ‘미녀와 야수’다. 엔터테인먼트계의 거대 공룡 디즈니는 ‘안전제일’의 전략을 택한 것이다. 1991년 겨울에 개봉되어 빅히트를 기록하며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됐으며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여기에 골든글로브 최우수 뮤지컬상, 음악상, 주제가상 수상 그리고 동화가 원본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보다 성인 관객을 더 많이 영화관 앞으로 불러 모으며 약 1억20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벌어들인 작품이기에 이미 음악의 경쟁력이나 작품의 흥행성과 작품성에서 검증을 받은 것이었다.
물론 뮤지컬과 애니메이션은 유사하지만 다른 세계이다. 하여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를 뮤지컬로 바꾸면서 웨버의 파트너로 유명한 팀 라이스를 끌어들여 ‘No matter what?’ ‘Me’ 등 총 5곡의 신곡을 무대 버전에 추가했고 의상과 세트에만 전체 제작비 150억 원의 절반인 75억원을 투자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했다. 은막 위의 판타지를 관객의 눈 앞 무대 위에 생생하게 실현하겠다는 의지였다.
1994년 4월 18일. 제작비 1190만 달러(한화 약 150억원를 들여 미국 프로드웨이 팔레스 극장에서 막이 올랐고 그때까지 ‘오페라의 유령’이 갖고 있던 1일 티켓 판매액 92만 달러를뛰어 넘어 129만여 달러라는 기록을 세우는 (훗날 디즈니의 ‘라이언 킹’에 의해 기록이 갱신된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브로드웨이 입성이었다.
“웨버 경이 우리의 도전에 심각해지시길!”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디즈니가 아니었다. 세계를 대상으로 펼치는 블록버스터 전략에는 도가 튼 디즈니가 아닌가. 이번에는 일본 뮤지컬 극단 시키(四季)를 앞세워 태평양 너머 동경에 상륙한 ‘미녀와 야수’는 1232석 규모의 ‘미녀와 야수 전용 뮤지컬 극장’(아카사카 극장)을 채우다 못해 오사카에도 비슷한 규모의 ‘미녀와 야수 전용 MBS 극장’을 별도로 세울 정도라니 두말할 필요가 없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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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승기를 울린 디즈니는 황제 (웨버)의 텃밭인 런던 웨스트엔드에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른다. 1997년. 런던 공연을 위해 1000만 파운드(당시 기준 약 145억-웨버의 ‘선셋 대로’보다 3배 이상 되는 제작비다)를 쏟아 부은 디즈니는 작품을 소화할 넓은 극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공연시기를 늦춰가며 극장을 고치며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선전포고. 도미니언 극장에서 열린 ‘미녀와 야수’ 제작발표회에서 “메킨토시 경과 로이드 웨버 경이 우리의 도전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게 되길 기대한다. 우리는 런던에 디즈니 뮤지컬 사무소도 ek로 열 것 이다”라고 공식 발표를 한 것이다.
웨버는 침묵했고 매킨토시는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났기에 웨스트엔드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경과? 디즈니는 ‘뮤지컬 제작사’이기 전에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마케팅’의 프로페셔널이었다(과거 개봉한 영화 ‘진주만’에서 시사회에 군함과 실제 전투기를 동원한 여빅적인(?) 회사다). 우리나라에서야 ‘미녀와 야수’라면 당연히 어린이용이지만 디즈니는 ‘가족용 뮤지컬’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비즈니스적으로 ‘가족용’이라는 단어를 해석하면 ‘그건 누구든 돈을 지불할 사람이라면 누구나’라는 뜻과 ‘해피엔드와 권선징악을 확실히 보장한다’는 의미다. 사실 ‘동화’ 혹은 ‘만화영화’를 원작으로 한 ‘미녀와 야수’를 런던에서 공연하면서 영국 뮤지컬의 대부인 ‘웨버’와 ‘메킨토시’를 타깃으로 삼아 선전포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디즈니는 ‘미녀와 야수’ 런던 공연 앞에 선 줄이 끊기지도 않은 1998년에는 ‘1998년은 뮤지컬의 역사를 다시 쓴 해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던 줄리 테이머 연출의 ‘라이언 킹’으로 런던 웨스트엔드에 융단 폭격을 쏟아 부어 대세를 결정지었고 그 뒤엔 영국 왕실로부터 경(卿) 작위를 받은 영국인 엘튼 존과 팀 라이스가 콤비를 이룬 ‘아이다’로 런던 뮤지컬계를 경악하게 했다. 80년대와 90년대까지 브로드웨이를 점령했던 영국 뮤지컬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웨스트엔드에 13개의 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극장주이기도 한 웨버는 ‘더 타임즈(The times)’와의 인터뷰에서 “80년대 이후 세계 뮤지컬을 이끌어온 런던 웨스트엔드가 위기를 맞았다”고 실토하고야 말았다. 그 위기의 핵심에 디즈니가 있음은 불문가지. 할리우드 시스템을 무기 삼아 애니메이션을 먼저 내놓고 후에 뮤지컬을 제작하는 기획력 그리고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붓는 미국 뮤지컬의 종합 마케팅과 맞서 오로지 뮤지컬 하나에만 매달리는 런던산 뮤지컬의 위기감을 반영한 말이다.
죽어 마땅한 악당은 없다
그렇다면 뮤지컬 ‘미녀와 야수’는 과연 기획력만 있는 상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은 진실. 절반은 거짓’이다. 먼저 작품을 보도록 하자. 막이 오르면 앨런 맨캔의 다이내믹하고 장중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울려 퍼지며 무대 위엔 초라한 노파와 당당한 왕자가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에서 그랬듯 왕자가 왜 야수가 됐는지를 프롤로그에서 내레이션으로 보여주는데, ‘제발 도와달라’는 오파의 간청에 오만한 왕자는 외면을 한다. 그리고 순간 노파의 누더기가 벗겨지면서 천사로 돌변하며 무대 위로 날아오른다. 찬탄이 끝나기도 전에 관객은 비명을 지르게 된다. 순식간에 미끈한 왕자님이 무시무시한 야수로 돌변하는 것이다. 도대체 영화도 아닌데 저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눈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 객석에서는 ‘악’ 소리가 간간이 터져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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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동화에서 꽤 많은 분량을 설명해야 했던 ‘왜 왕자가 야수가 되었는가’를 충격적인 프롤로그로 순식간에 정리해버리고 뮤지컬은 ‘야수’와 ‘미녀’(여주인공의 이름 ‘벨’은 프랑스어로 아름답다는 뜻)로 즉시 넘어간다.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서의 아침. 자의식이 강한 여성 벨이 지나가면 ‘책을 좋아하고 독특한 취향을 가진 아가씨 벨’에 대한 이야기를 마을 사람들이 노래로 표현한다('Belle'). 배경은 중세이지만, 벨은 상당히 현대적인 여성으로 묘사되는 것인데 역시 캐릭터에 강한 디즈니다운 각색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벨을 자신의 아내로 삼고 싶어하는 근육질의 청년 (마초맨에 가까운) 가스통의 치근거림도 끼어드는데 서로 주고받는 노래며, 62인조 오케스트라의 음악 한 곡으로 주요 캐릭터의 상황설정 및 배경정보 등을 한번에 보여주는 스피디한 전개 역시 매력적이다.
벨은 아버지 모리에게 자신이 그렇게 이상한 여자냐고 고민을 털어놓자 아버지는 ‘우리는 완벽한 가족이지(No Matter What)’라고 답하며 자신의 발명품을 품평회에 내기위해 길을 떠난다. 애니메이션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 곡은 아버지가 길을 잃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 가스통은 그 자신을 벨에게 선물하며 청혼을 하지만('Me') 거절당한다. 한편 아버지는 길을 잃고 야수의 영지에 잘못 들어와 갇히게 되고 벨은 아버지를 대신해 야수의 아버지 대신 죄수로 자처한다.
뮤지컬 ‘선셋 블러바드’의 세트에 버금갈 만큼 거대하고 화려한 야수의 궁궐 하지만 이 당돌한 아가씨 벨은 무서워하기는커녕 호기심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본다(‘Home’). 한편 아버지 모리스는 마을로 돌아와 벨을 구조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속좁은 마초맨 가스통은 RJffjdrjfl는 친구들과 술만 마신다('Gaston'). 그래놓고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벨과 결혼하겠노라 다짐한다.
한편 그 시간 야수의 성. 호기심에 차 둘러보는 벨을 야수는 요술 거울을 통해 지켜본다. 그랑 보슈(주전자 아주머니)가 나와 그날 밤 성주인 야수의 저녁만찬 초대를 전하지만 벨은 ‘아버지와 작별인사도 못했잖아요!’라며 투덜댄다. 그 모습을 보며 야수는 절망감을 느낀다(How Long Must This Go On?). rm 순간 야수 앞에 놓인 수정 속의 유리장미가 반짝 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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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삭막하던 성 안에 등장해 야수와 벨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다정한 주전자 그랑보슈. 로맨틱한 촛불 집사 루미에 그리고 엄격한 시계집사 콕스워드 등 성 안 식구들의 분장 또한 주목할 만하다. 사실 주전자, 시계, 촛대 등이 등장하면 성인 관객들의 경우(애니메이션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아이고 이거 아동극이군’이라고 생각할 것 같지만, 정작 무대에 등장한 이들을 보면 어색하기는커녕 ‘판타지의 리얼리티’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 훗날 ‘표현주의 뮤지컬의 대표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라이언 킹’의 동물 분장 및 무대기술로 발전하는 이러한 시각적 완결성은 디즈니 뮤지컬의 또 하나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아무튼 이들의 도움으로 야수와 벨은 가족을 초대한 저녁만찬. 그리고 책으로 가득한 야수의 도서관을 통해 점점 더 가까워진다. 혹자는 ‘책을 좋아하는 현명한 여인’을 부각시키는 것은 ‘중세성의 탈피’를 의미한다고 분석하기도 하는데 일리가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뮤지컬에서도 도서관에서 야수와 벨이 ‘아서왕’을 읽는 장면에서 우정에서 사랑으로 벨의 마음이 바뀌는 시퀀스로 제시된다. 하인들은 둘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훔쳐보며 ‘야수가 다시 왕자로 도아가고, 자신들도 사람이 될 수 있을 것’(‘Human Again’)이라며 흥분한다. 그러나 벨의 아버지가 아프자 야수는 벨을 집으로 보내놓고 가슴아파하고 마초맨 가스통은 연적(戀敵) 야수를 혼내려주려 준비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클라이맥스.
뮤지컬 ‘미녀와 야수’는 캐릭터들간의 갈등이 존재할지언정 ‘무대포식의 선악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동극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무대포식’으로 악하지는 않는 것이다. 마치 혁명을 선동하는 듯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야수의 성을 습격한 가스통조차도.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살려준 야수를 찌르게 된다. 이 장면은 가스통이 흥분한 상태에서 실수로 찌른 뒤 후회하는 것으로 처리된다. 그 누구도 ‘죽어 마땅한 악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이런 시각은 뮤지컬이 상황과 성격의 갈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로 피아의 구별이 무의미해진 이 시대의 관객에게 ‘작품’으로 소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런 발전은 디즈니가 1년 뒤 ‘라이언 킹’을 ‘햄릿’에 대한 오마주 뮤지컬로 승화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진짜 ‘판타지’는 관객의 시대정신과 정확하게 동조(同調)되어야만 완성되는 법. 조금 과장하면 디즈니의 진짜 무서운 기획력은 상품을 소비할 시대의 정신을 따라갈 줄 안다는데 있다.
추신. 그런데 정말 여성들은 ‘야수’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