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상승→제품 및 운임 등 모든 물가에 영향"편리하고 좋은 자원이지만...준비 없으면 큰 고초 겪어"


  • [석유]는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데에만 쓰일까요?

    아닙니다.
    천연소재를 제외한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은
    [석유]를 근간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석유가격이 올라가면
    물건의 가격도 올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빵값도 올라가듯 말입니다.

    모든 물건의 가격을 좌우지하는 [석유] 때문에
    실제로 우리는 두 번이나 큰 고생을 했습니다.

    1973년 - 제1차 오일쇼크


    중동에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랍 국가들이 힘을 합해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도 싫어했지만,
    이스라엘을 돕던 미국과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도 함께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이 국가들에게 석유를 한 방울도 팔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1배럴에 3달러이던 국제유가가
    1년도 안돼 약 4배인 11.65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중동 국가들은
    우리나라에도 석유를 팔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나라에게도 그랬을까요?

    단순히 미국과 친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이었죠.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억울하지만,
    석유를 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

    다행히 국내의 비축시설에 석유가 남아있긴 했지만,
    3개월을 버티기도 힘든 양이었습니다.

    갑자기 석유가 부족해지자,
    버스 요금을 비롯한 공공요금한 생활용품 등의 가격이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74년
    중동 국가들이 다시 석유를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1차 오일 쇼크는 잠잠해졌습니다.

    중동은 석유를 팔지 않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석유 외에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석유를 팔지 않으면 자신들도 가난해지기 때문이었죠.

    결국 원유 가격은 다시 10달러대로 떨어졌고,
    이에 우리나라도 한 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5년 후
    중동에서 또 다시 사건이 터지고 말았거든요.

    1979년 - 제2차 오일쇼크


    2차 오일쇼크 때는 [이란]이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아랍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왕정 국가였던 이란의 왕들은
    미국과 친하게 지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호메이니라는 사람이
    결국 왕을 내쫓았습니다.

    그리고는 미국에 절대로 석유를 수출하지 않고,
    석유 생산도 줄일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당시 이란은 세계 석유의 15%를 생산하는 큰 산유국이었습니다.

    이란이 석유를 수출하지 않으면
    세계의 석유 가격은 올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프리카 산유국인 리비아의 집권자 카다피도
    호메이니 못지않게 미국을 싫어한 나머지
    설상가상으로 석유 생산을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배럴당 12달러였던 원유 가격은
    순식간에 3배 이상인 42달러까지 급등했습니다.

    당시 원유 1배럴에 42달러는 충격적인 가격이었습니다.

    지금은 100달러가 넘기도 하는데
    뭐가 충격적이냐구요?

    무슨말이냐 하면,
    1965년 우리나라에 처음 [라면]이 나왔을 때
    한 봉지 가격이 1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라면 한 봉지 가격이 보통 1,000원정도니까
    약 50년 전의 10원은 지금의 1,000원과 비슷하겠죠?


    석유 가격이 무섭게 올라가자
    세계 경제는 또 한 번 위기를 맞았습니다.


    모든 물건의 가격은 29% 오르고,
    경제 성장률은 최초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2차 오일 쇼크였습니다.

    당시 아버지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휘발유 통을 들고 주유소로 달려갔답니다.

    자고 일어나면 석유값이 무섭게 뛰었기 때문에
    아침마다 사람들은 주유소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석유를 사야만 했습니다.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그 중에서 80%를 중동에서 들여오는 우리나라로써는
    중동의 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2차 오일쇼크도 곧 잠잠해졌습니다.

    산유국들이 다시 석유 생산을 늘리면서
    석유 가격도 다시 2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두번의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석유가 편리하고 좋은 자원이긴 하지만,
    준비해 놓지 않으면 큰 고초를 겪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계 각 나라들은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석유가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비축해 두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