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크게 회자되는 일화가 하나 있다. 2010년 8월, MK(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가 미국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을 방문했을 때다. 6세대 쏘나타가 북미시장 공략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라 긴장감이 팽배했던 상황이다. MK가 현장에서 공장장에게 쏘나타의 보닛을 열어 보라고 했지만 안쪽의 개폐고리를 못 찾아서 끝내 열지 못했다. 공장장은 바로 경질됐다. 바로 다음달 차량결함으로 리콜사태를 겪던 기아차 정성은 부회장도 전격 해임된다. 정 전 부회장은 오랫동안 현장에서 근무해온 생산기술 전문가로, 기아차의 품질을 총괄해 왔다.
2개월 연속으로 고위 임원을 퇴진시킨 것을 두고 경쟁사인 토요타는 당시 상상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인사스타일에 논란이 있었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을 닮은 투박한 경영스타일 때문이란 얘기도 들렸다.
하지만 "MK를 잘 모르는 이들은 당연히 평생의 라이벌인 아버지의 역(逆)후광효과만 보고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했다. 현장을 모르고서는 품질과 마주할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이 지금의 현대차 경영의 기저(基底)이다"라고 측근들은 입을 모은다.
'현대자동차서비스' 시절부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MK의 중요한 결정들은 모두 '현장'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현장을 모르는 임원들에게는 비정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스타일도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현대차 임원들은 지금처럼 강력한 품질 드라이브가 통한 것은 ‘현장’을 중시한 MK의 전략 때문으로 평가하고 있다.
◆ 현대차서비스 본사 앞 슈퍼마켓에서 '소주'스킨십
MK는 말단 자재관리(현대차 서울사무소) 사원으로 현대차와 첫 인연을 맺었다. 자동차 부품지식을 기반으로 현대정공(현대모비스의 전신)을 직접 키워 냈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기업을 만들고, 키워 가면서 터득한 현장경험이 품질 제일주의를 일궈낸 것이다.
특히 1974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맡긴 '현대자동차서비스'는 훗날 그의 여정에서 명운을 가르는 전환점이 된다.
MK는 24년간 '현대자동차서비스'를 경영하면서, 현대차의 취약점이 무엇인지, 고객의 불만이 무엇이고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를 현장에서 몸으로 파악했다. 당시 애프터서비스(AS)업계는 그야말로 복마전(伏魔殿)이었다. 부품 빼돌리기, 친인척 무료수리 등 현장사정을 익히 알고 있던 MK는 상벌을 확실히 구분하며 균형을 잡아나갔다. 정비차량을 타고 직접 순회정비에 나서는 것으로도 유명했다.정비 일과가 끝나면 직원들과 서울 대방동 본사 앞 슈퍼마켓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점심은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구내식당에서 같이 어울렸다. 현장경영은 경영실적으로 연결됐다. 사업 첫해 31억원 매출에 2억6000만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검증받게 된 것이다.
-
현대정공 출신인 유인균 전 INI스틸 회장이 한 측근을 통해 전하는 당시 분위기다.
"정몽구 회장의 말단 경험은 2세 경영인으로서 큰 자산이었다. 직접 자재를 다뤄 보면서 품질의 중요성과 현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 같다. 현장 밑바닥에서 뛰어본 경험과 그에 따른 혜안은 친구들(유 전 회장은 경복고 동기)로부터도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사실이다."
갤로퍼로 우뚝 선 현대정공이라는 중소기업을 손수 운영하며 경영의 요체에 대해서도 파악했을 것이다. 당시 현대그룹에 들어온 신입사원들은 현대정공에는 잘 안 가려고 했다. 현대정공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현대에서 비주류(非主流)에 속했다. 그래서 MK는 지금도 당시에 고생한 현대정공 동료들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한다.
김동진(현대정공 출신, 현대차그룹 부회장 역임), 박세용(현대자동차, 인천제철 회장 역임), 유인균(경복고 동기, 현대정공 출신으로 INI스틸 회장 역임), 정순원(경복고 후배, 현대차, 기아차 사장 역임), 이계안(경복고 후배, 현대차 사장 역임), 김종희(현대산업개발 출신)씨 등이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인사들이다.
갤로퍼 신화 뒤에도 현장에 대한 열정이 자리하고 있다. 1991년 초 갤로퍼 개발시절 현장에서 본 MK와 관련된 일화 한 토막. 당시 울산 5공장은 정공 소유 갤로퍼 생산라인었다. 갤로퍼 테스트 차량을 보기 위해 울산을 둘러보다 서울행 비행시간이 임박해왔다. 전용차량을 출발 시켜려는 순간, MK는 "갤로퍼로 가겠다"고 깜짝 행동에 나선다. 공장에서 울산공항까지 갤로퍼를 직접 시승했다. 갤로퍼는 첫 해 1만6000대가 팔렸다. 코란도의 쌍용차 아성을 무너뜨리며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예상치 못한 '갤로퍼 성공'에서 다져진 MK의 내공은 1998년 현대차 경영권을 접수한 뒤 현실화 했다. 1주일에 3~4번 울산을 오가며 총력을 기울인 현장경영이 리더십의 바탕으로 성숙해 졌다는 게 현대차 내부의 평가다.
◆ "오피러스 이렇게는 못팔아"…현장 임원들 진땀
2003년 8월, MK는 바쁜 일정에도 남양연구소 현장 방문을 잊지 않았다. 오피러스 수출을 앞두고 주행성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오피러스를 직접 몰고 주행시험장을 몇 바퀴나 돈 MK는 소음이 거슬렸다. 기술진에게 원인 규명 및 개선을 지시했다.
당시 임원진은 "결함 아닌 결함을 잡자면 약속된 선적 날짜에 맞출 수 없다"고 보고했다. 돌아온 건 "이렇게는 못 팔아"라는 MK의 호통이었다. 결국 미세소음 제거 프로젝트팀이 꾸려졌고, 수출일정은 40여일이나 지연됐다. -
MK는 신차종 개발을 할 때마다 항상 그랬듯이 문제점을 직접 점검하고 품질 개선방안을 현장에서 일일이 지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시 일정이 바뀌는 게 흔해졌다.
남양연구소 같은 기술 현장이나 공장, 계열사 방문이든 그의 현장 방문에는 형식적인 게 없다. 꼼꼼하게 현장을 둘러보는 데 불쑥 튀어나오는 지적이 예사롭지 않아 현장에는 긴장감이 팽배하다고.
MK의 현장경영에 대한 열정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2010년 완공한 현대제철에도 잘 드러난다. 현대제철 관계자 "건설공사가 한창일 때 정몽구 회장은 사무실에서 당진(제철소 현장)이 어른거려서 다른 업무를 못 보겠다며 경영층에 털어 놓을 정도였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 건설 현장을 찾았다"고 회고했다. 덕분에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건설현장은 항시 '긴장속 좌불안석'이었다.
기획실에서 준비한 현장방문 일정이 있었지만, 그 계획은 대부분 무시됐다는 게 현대차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내게 보여주려고 준비한 현장을 왜 가나. 디테일을 알려면 준비되지 않은 곳으로 가야 문제점도 파악하고 현장상황도 알게 되는 거지."
훗날 현대제철이 초고장력 강판은 신형 제네시스와 신형 쏘나타에 51% 이상 채택되면서 시장에 품질력을 과시한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것처럼 정몽구 회장의 현장방문은 모든 임직원들을 독려하는 힘이다. 물론 많은 지적들도 따르지만 현장 책임자들은 없는 힘도 내야한다. 현장경영을 통해 빠르게 문제의 핵심을 개선하다보니 혁신에도 가속이 붙었다. 현장의 힘이 이른바 '현대속도'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현대차 임원이 전한 이런 분위기는 그룹 경영층뿐만 아니라 직원들 사이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MK리더십이 가지는 힘이 바로 이 지점이다. 핵심정보의 기본을 이루는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게 MK 경영철학의 ‘기저(基底)’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