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서비스 시절 "부품업체는 경쟁력 원천"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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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새해벽두. 현대차그룹 첫 경영전략회의는 자못 심각했다. 이현순 현대차 부회장과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옆으로 자리한 사장단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경쟁사인 토요타의 가속페달 결함으로 대량리콜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MK(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영문 애칭)가 소집한 비상회의 격이었다.

    "부품업체와의 기술협력을 더욱 강화해라. 현대‧기아차에서는 (토요타 사태가) 절대 발생해서는 않된다."

    이 자리에서 MK의 주문은 단호했다. 그는 “도요타 사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며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토요타의 무리한 가격 인하 정책과 이에 따른 협력업체 관리 부실, 품질 저하 등은 현대차그룹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라는 지적이 일자 평소 품질경영을 강조하던 MK는 '반사이익'에 취할 겨를도 없이 스스로 다잡기에 나선 것이다.

    당시 정몽구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김용환 부회장은 즉시 부품 품질 재점검을 위해 협력업체에 특별 점검팀을 파견해 강도 높은 실사를 벌이며 부품협력사와 만전을 기하게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토요타 사태가 급속히 늘어나는 생산능력에 비해 부품사 품질관리가 따라주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정 회장은 판단했다"면서 "이때부터 부품사와 기술을 공유하고 품질관리에 대한 상호 협조 시스템이 더욱 강화됐다"는 전언이다.

     



  • ◆ 처음부터 협력사와 함께간다

    "부품업체들의 경쟁력이 곧 완성차의 경쟁력이다"

    MK는 70년대 현대차서비스에 몸담고 있던 시절부터 부품업체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해왔다. 갤로퍼 제작에 집중하면서 품질 확보에 온 신경을 쏟고 있던 그에게 부품 경쟁력 키우기는 우선 과제일 수 밖에 없었다.

    이같은 염원은 2001년 '자동부품산업진흥재단' 설립으로 본궤도에 오른다. 재단은 2000년 정순원 기획총괄담당 사장이 당시 김치웅 현대차 상무(구매총괄본부장, 전 현대차 부사장)를 간사로 태스크포스팀을 꾸리고 설립을 총괄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재단설립에 구매담당이 아닌 기획담당 정 사장이 주도했던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협력업체가 파트너로서보다 '을'이란 오해를 해소하기위한 MK의 의중이 담겨있었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탄력을 받은 현대·기아차 부품 협력업체들은 2000년과 비교해 10년 동안 평균 매출액, 시가총액, 해외수출 등의 전 부문에서 고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2001년 733억원에 불과했던 현대·기아차 협력사의 평균 매출액은 지난해 1747억원으로 9년 만에 2.4배로 늘었다. 현대·기아차의 성장률을 넘어선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우리나라 산업 전체 성장률이 80%, 현대ㆍ기아차의 성장률이 78% 수준임을 감안하면 협력사의 매출 성장률은 괄목할 만한 성과"라며 "부품 협력사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다른 해외 업체로의 수출도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6년에는 위기도 있었다. 환율하락과 유가급등에 비자금 사건으로 MK가 구속 기소되면서 현대차는 물론 부품업체들까지 발목을 잡은 것.

    당시 환율은 930원대까지 급락하면서 현대·기아차 해외공장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의 수출 채산성이 크게 악화된 데다, MK의 경영공백은 지역경제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현대차 협력사인 부산의 한 부품업체 관계자는 "현대차의 경영이 정상화되지 않았으면 부산 600여 협력업체는 대부분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심각했다"면서 "아반떼 후속모델인 신차 아반떼HD를 생산하는 제3공장의 경우 현대차 전체 생산량의 25∼30%를 차지하는데 조업시간이 축소되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고 회고했다.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한 MK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무엇보다 부품업체 위기는중장기적으로 완성차 업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해 4월 현대·기아차는 4700여 중소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60일 어음으로 지급하던 내수부품 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지원하기로 한다. 9조 5000억원 규모였다.

    협력업체의 품질 강화를 위한 품질육성기금 500억원도 이때 조성됐다. 근본적인 경영체질과 협력사 경쟁시스템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위기가 기회로 작용한 것이다. 

    상생 흐름속에 당시 구속된 MK에 대한 협력사의 선처 물결도 화제였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현대·기아차협력회(현 재단의 초기명칭)와 함께 200만 여명이 서명한 MK 선처 요구 탄원서는 1t 트럭 3대 분량이었다.

    ◆ 부품과 완성차 품질은 수레의 양바퀴

    2004년 8월. 현대차 울산공장에 노무현 대통령이 전격 방문했다. 이 자리에는 MK가 협력업체 대표들까지 초대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부사장수급 임원들은 뒷자리로 물리고 헤드테이블에 이영섭 현대·기아차협력회장, 문채수 명화공업 사장, 신선식 동희산업 사장 등과 함께 자리한 것. 협력사에 대해 최대한 예우를 표시했다.

    MK가 현대차그룹 사령탑으로 취임한 이후 바뀐 것중에 하나가 이처럼 완성차업체와 협력사간 관계가 수평적인 파트너십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게스트 엔지니어(guest engineer)'라는 프로그램은 그래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부품협력사 직원들이 현대차 기술연구소로 직접 출근해 공동 개발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것.

    얼마전 동희산업, 성우하이텍 등 협력사 연구원들은 현대차가 주관하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남양연구소로 출근하기도 했다. 협력사 초청 직원을 부르는 호칭이 게스트 엔지니어. 이들 협력사 게스트들은 기아차가 진행 중인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국 전략형 모델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희산업 같은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대형 협력사 비중도 2배 이상 늘고 있는 추세다. 68개의 협력사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01년 290개 협력사 중 46개사로 16%에 불과했던 대기업은 지난해 114개사로 늘어 대기업의 비중이 39%까지 증가했다. 해외수출금액도 4.5배 증가했다. 현대·기아차 협력사의 해외수출 금액은 2002년 3조8000억원에서 10년간 17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현대차 연구원들도 마찬가지다. 협력업체로 출근해 상담과 개발에 머리를 맞댄다. 제네시스, 쏘나타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 3차 협력사 관계자는 "2차 협력사가 아니라 최근에는 현대차 직원이 직접 회사를 찾아 품질과 관련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로템, 현대위아, 현대건설, 현대엠코, 현대파워텍, 현대다이모스 등 총 10개사가 협력사 현장방문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총 80회의 현장방문이 진행됐다.
     
    2011년부터 남양연구소에서 시작한 ‘R&D 모터쇼’도 협력사에게는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부품 협력사에 최신 자동차 기술 트렌드를 직접 체험하고 신차 개발을 위한 벤치마킹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수입 경쟁차를 직접 분해하고 기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까지 마련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서비스와 현대정공 시절 부품업체의 중요성과 완성차 업체와의 동반자적 관계에 눈을 떴다. 협력업체에 군림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당시에 체험한 생각이었다. 부품과 완성차 품질은 수레의 양 바퀴처럼 굴러가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앞으로도 실천으로 현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현대·기아차협력사 이영섭 대표의 얘기는 MK의 15년 리더십을 가장 잘 압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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