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꿈…그리고 한(恨)
숱한 좌절 끝에 불도저 같은 집념으로 성공
  • '철'은 전 산업분야에 있어 '쌀'과 같은 존재다. 사람이 쌀 없이 살아갈 수 없듯 자동차, 선박, 건설, 반도체 등도 철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

    그만큼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등을 이끌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제철'에 대한 열망도 컸다. 포스코, 일본업체 등을 통해 철강을 들여와, 각 기업들을 글로벌 명문(名門)으로 성장시켰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전방산업군들은 철강업체들을 '갑'으로 불러왔다. 현재야 워낙 공급과잉 시장이다보니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평가지만, 과거 수요가 넘쳤던 시절에는 철강사들이 부르는게 값인데다 비싸다고 투덜대면 공급도 원할히 되지 않았다.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 중공업 등의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질 좋은 철강재를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이에 '현대가 한번 최고 품질의 철강재를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매번 정부와 경쟁사들의 견제로 시련을 맛봐야 했다. 결국 제철사업은 정 명예회장의 유지로 남았다. 하지만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 명예회장의 말처럼, 결국은 아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가(家)의 기나긴 숙원을 현실로 일궈냈다. 더군다나 민간자본 최초로 고로 일관제철소를 갖춘 현대제철은, 포스코의 뒤를 바짝 쫓으며 '철강 NO.1'자리를 위협하고 잇다.

    ◇커져가는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계속되는 고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제철사업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무렵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하던 시기라, 매년 철강에 대한 수요도 커져만 갔다.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수입산 철강재보다 싼 가격으로 국내 기업들에게 물량을 제공했지만,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1978년 박정희 정부는 제2제철소 건설 계획을 발표한다. 정 명예회장은 천재일우의 기회라 생각하고, 현대중공업 자본금 2억 달러를 통해 현대제철소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사장도 "제2제철소 건설은 포항제철이 맡아야한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제2제철소 설립은 사실상 포철과 현대 이파전(二巴戰)으로 흘러갔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경쟁체제 도입, 시장경제 촉진 등을 이유로 제2제철소는 현대가 건설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포철은 세계 철강업계를 주도하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의 제철소 증대를 반대한다며, 포철 하나만 키우더라도 세계 철강업계의 압력을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란 논리를 세웠다. 결국 최종 승리는 포항제철로 돌아갔고, 제2제철소는 광양에 설립됐다.

    이후로도 정 명예회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히 정부와 경쟁사들의 견제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부전자전 아니던가. 정 명예회장의 '불도저 DNA'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게로 옮겨갔다.

    정 회장은 지난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오르며 취임사에서 "2000년대 국내 철강 공급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우리의 일관제철소 건설은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회장은 자동차, 모비스. 중공업 등 현대계열사들의 경쟁력은 그 무엇보다도 철에 달려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엔진은 철의 질에 따라 경쟁력이 좌우된다는게 정 회장의 신념이라고 알려졌다.

    정 회장은 회장 취임과 동시에 일관제철소 건설 사업에 열의를 올린다. '종합제철사업 프로젝트'팀을 발족하며, 경남 하동에 제철소를 짓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실제로 정 회장은 직접 헬기를 타고 현지를 둘러보고, 경상남도와 투자조인협정까지 맺기도 했다. 사실상 일관제철소의 꿈이 가시화되는 듯 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급과잉'을 이유로 현대의 제철소 거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정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문을 두드렸으나,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며 결국 훗날을 기약하게 됐다.

    ◇한보철강을 품 안에…일관제철소 설립이 눈 앞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정 회장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충남 당진에 위치한 한보철강을 인수할 기회가 온 것이다. 한보철강은 지난 1997년 부도가 난뒤, 여러차례 국내외 기업들이 입찰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무산됐었다. 정 회장은 INI스틸(현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를 중심으로 입찰에 뛰어들었고, 포스코와 동국제강 컨소시엄과 맞닥뜨렸다.

    1978년 제2제철소, 1996년 하동 갈마 제철소 추진 등 두 번에 걸쳐 고배를 맞은 현대 입장으로서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하이스코가 열연코일을 포스코로부터 공급받는 상황인 만큼 상황이 녹록지는 않았다. 포스코가 코일 공급을 중단하는 등의 강수를 내세울 수 있어,  최대한 포스코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가해 입찰에 접근했다.



  • 입찰과 관련해 짜릿한 일화도 하나 있다. 김원갑 당시 현대하이스코 사장(현 부회장)이 입찰 마감 하루 전날 입찰 가격을 갖고 양재동 정 회장 사무실을 방문했다.  김 사장은 입찰가를 8000억원 대로 기입하고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정 회장은 이 가격으론 안 된다며 9100억원 대로 직접 고쳐 썼다. 재미있는 사실은 뚜껑을 열어보니 포스코도 9100억원을 입찰가로 제시한 점이다. 그러나 할인율, 근로자 고용 등 입찰가격 외 조건에서 현대가 포스코에 앞서며 한보철강은 결국 현대차그룹의 품 안에 들어오게 됐다.

     회장의 '일관제철소 드림'이 본격적으로 실현되는 순간이다. 인수 후 기자들과 당진공장을 방문한 정 회장은 고로사업 진출에 대한 의지를 재천명했다.

    현대제철은 한보철강 인수 후 2년 만인 2005년 9월, B열연공장의 상업생산으로 완전 정상화를 달성하고, 본격적으로 일관제철소 착공에 돌입하게 된다.

    ◇1고로, 2고로, 3고로 까지…명실상부 '車 전문 일관제철소'

    현대제철은 2006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7년 간 민간기업 최초로 일관제철소 건설에 나서게 된다.

    정 회장은 일관제철소 건설의 꿈을 위해 1,2고로 건설에만 6조2300억원을 투자했고, 3고로 건설에 3조6545억을 들이는 등 총 9조8845억원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었다.  

    그동안 전기로에서 생산되는 철근, H형강 등을 건설용 강재만 생산해오던 현대제철이었으나, 철강제품의 꽃으로 불리는 자동차 강판, 조선용 후판까지 생산해내는 글로벌 종합제철소로 거듭난 것이다. 연간 조강생산능력도 전기로 1200만t, 고로 1200만t 등 2400만t을 확보하며 전 세계 철강업체 순위 10위권을 넘보고 있다. 지난 2006년만 하더라도 31위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단 7년만의 비약적 성장이다.


  • 정 회장도 지난해 9월 기념사를 통해 "현대제철은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 7년 동안 총 9조9000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차질 없이 추진해 약 2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며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현대제철은 세계최고의 철강회사를 향한 끝없는 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이며, 지속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국가와 지역경제 발전에 공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이어 엔진과 변속기에 투입되는 철분말, 특수강 공장까지 착공을 지시하며 현대제철을 전 세계 어느 기업도 따라올 수 없는 '자동차 전문 일관제철소'로 키워가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