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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 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약 1년여 간 삼성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은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변화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초반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이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비교해 색깔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약 1년여 간 삼성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이 부회장의 행보는 '합리적인 냉철함'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삼성그룹이 추구하고자 하는 미래 방향성을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제품은 업계에서 '이재용폰'으로 불리는 갤럭시S6와 갤럭시S6 엣지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6 시리즈를 선보이며 '제로베이스(원점)', '완전히 새로운', '진정성 있는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며 강조했다. 원점으로 돌아가 완전히 새로운 갤럭시S 시리즈를 만들되 필요에 의한 진정성 있는 혁신을 추구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
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IM) 대표이사 사장은 3월 초 갤럭시S6 시리즈를 처음으로 공개한 갤럭시 언팩 2015 현장에서 "그동안 삼성은 '이거 삼성이 만든건데 정말 좋은거다. 이것도 써보고 이것도 한 번 써봐라'라는 식으로 고객들에게 많은 걸 가져다주는 게 좋은 건줄로만 알았다"면서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좋다고 그게 진짜 좋은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갤럭시S6 시리즈에는 과감하게 뺄 건 빼고 꼭 필요한 기능들만 넣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진정한 혁신'에 대해서도 '매일 자주 쓰는 기능을 더 편리하고 유익하게 만드는 것, 무조건 앞서 나가기보다는 지금 이순간 가장 필요한 기능을 만들어 내는 일. 이것이 진정한 혁신'이라고 정의내렸다.
갤럭시S6·엣지는 무선·급속 충전,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 세계 최초 양면 엣지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스마트폰의 '뇌'에 해당되는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스마트폰 최초로 14나노급 핀펫 '엑시노스 7420 옥타코어'를 적용해 사용자들이 일상생활에서 매일 쓰는 기능들을 더욱 편리하고 빠르게 쓸 수 있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간 갤럭시S 시리즈에서 2% 부족하다는 평을 받아왔던 디자인도 갤럭시S6 시리즈에서 혁신을 이뤄냈다는 평을 받고있다.
반면 갤럭시S5 출시 당시 '혁신' 기능으로 내세웠던 방수·방진 기능은 과감히 빼고 그간 최대 단점으로 지적받아온 블로트웨어(bloatware, 기기에 미리 설치된 웹 애플리케이션)도 대부분 삭제하고 메모장, 계산기, 음성메모 정도만 남겼다.
또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기반 메모 서비스인 원노트(OneNote)와 클라우드 저장 서비스 원드라이브(OneDrive), 인터넷 음성·영상 통화 서비스 스카이프(Skype)를 기본 탑재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삼성이 만든 것이 최고'임을 소비자에게 강요하기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해 고객이 진짜로 필요로하는 더 좋은 기능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다. -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갤럭시S6 시리즈에 담긴 혁신과 이 부회장이 추구하는 혁신은 맞닿아 있다. 삼성에 있어 빼야할 건 과감히 빼고 꼭 필요한 것은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그룹 내 과도한 의전 절차를 지적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그룹 계열사 사장단과 고위 임원들의 의전을 전면 금지한것으로 전해졌다. 과도한 의전이 사업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 사항이 아니라 '오래동안 이어져 온 허례허식'이라는 판단 하에 하루 빨리 이를 버릴 것을 주문한 것이다.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나 LG그룹 등 국내 대기업들의 의전은 초호화판이라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경영진들이 해외 출장을 나갈때면 해당 국가 주재원들이 식당이나 호텔은 물론 식사 메뉴와 와인까지 취향에 맞춰 고르는 것은 물론, 그룹 총수가 해외에 나갈때면 수십명의 의전 인력이 전면에 배치되곤 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해외 출장시 낡은 여행 가방 하나를 챙겨 홀로 출장길에 오르는가 하면, 출장길에서 만난 취재진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등 다소 파격적인 탈 권위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솔선수범하며 의전을 대폭 생략하면서 삼성그룹 전체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하는 등 그룹 내 글로벌 조직 문화가 자리잡아가는 모양새"라는 의견을 전했다. -
삼성그룹의 사업 구조 개편도 이재용 부회장이 추구하는 삼성의 방향성을 가늠케 해 준다.
삼성그룹은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등 석유화학과 방위산업 부문 4개 비주력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했다. 계열사 중 경쟁력과 시너지 효과가 떨어진다는 진단이 나온 회사는 과감하게 정리했다.
반면 그간 M&A(인수합병)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이후 지난해부터 미래 신성장 동력 찾기에 주안점을 두고 왕성한 인수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에는 비디오 관련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인 미국 '셀비'의 인적자산을 인수했으며 8월에는 개방형 사물인터넷 플랫폼 업체인 미국 '스마트싱스'와 미국 공조전문 유통사 '콰이어트사이드'사를 연달아 인수했다. 이후에도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업체인 캐나다의 '프린터온', 서버용 소프트웨어(SW) 전문업체인 미국의 '프록시멀 데이터', 브라질 통합문서 출력관리 서비스 업체 '심프레스'를 인수했다.
올해 들어서는 모바일 결제 솔루션 업체 '루프페이',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슈타이어(Magna Steyr) 배터리팩 사업부문, 美 LED 상업용 디스플레이(디지털사이니지) 업체 'YESCO Electronics'까지 연달아 인수하는 등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B2B 등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 동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술들을 착착 끌어모으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 이끌고 있는 계열사만 70여개에 달한다"면서 "모든 사업을 무조건 끌어안기보다는 주력 사업 위주로 그룹을 재편하는 편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갖추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
한편 이재용 부회장은 경기초등학교, 청운중학교,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1991년 12월 삼성전자 공채 32기로 입사했다. 입사 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입사 19년 만인 2010년 삼성전자 사장 자리에 올랐으며 사장 승진 2년만인 2012년 45세의 나이로 부회장 자리에 올라 현재 와병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삼성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