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 엘리엇, 삼성분쟁이 주는 교훈' 토론회신경섭 교수, "'차등의결권-포이즌 필' 등 기본적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해야"
  •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현 기자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현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전형적인 '알박기' 행태를 보이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해외 투자가들의 투기를 지켜보면서도 규제에 손발이 묶여 경영권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이미 도입한 차등의결권, 포이즌 필(poison pill) 등 기본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의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신경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2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행동주의 펀드'의 실상과 재벌정책 - 엘리엇, 삼성분쟁이 주는 교훈'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주장했다.

    신 교수는 "엘리엇은 포퓰리즘(populism)과 재벌기업에 대한 국내 정서적 반감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면서 "일단 이사회에서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을 만큼의 소주주로 기업에 참여한 뒤, 이익 달성을 위한 방안을 내고 그 방안이 다수의 주주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며 감성에 부합하는 일부 내용만 부각시켜 다수의 표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엘리엇이 계속해서 삼성물산의 가치가 저평가 됐다고 주장하면서 삼성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삼성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발표하면서 삼성물산 주가는 15% 가량 올랐다. 삼성이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했다고 보기 어렵고 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지분가치를 높게 산정한 뒤 실현되지도 않은 이익가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며 주주 이익 침해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면서 "거기다 한국 내 반재벌 정서를 자신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엇이 삼성그룹의 3세 승계작업을 볼모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엘리엇은 지난해 말까지 삼성물산 주주명부에 등재도 돼 있지 않았으나 올 3월부터 삼성의 승계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그 과정에서 알박기를 하기 위해 주주로 참여하게 됐다"면서 "승계작업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중의 정서에 호소해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를 이용하는 것일뿐 만약 진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면 주주로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엘리엇의 과거 행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엘리엇 창업자인 폴 엘리엇 싱어는 과거 소규모 투자은행에서 부동산 관련 투자 변호사로 일하며 페루, 아르헨티나, 콩고 등의 디폴트 채권을 사서 5배~10배 가량의 고수익을 낸 전력이 있다"면서 "제 3세계뿐만 아니라 지난 2008년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위기에 처했을 때 부품계열사인 Delphi를 아주 싼 값에 매입해 GM과 미국 정부를 상대로 1조5000억원 가량의 차익을 거두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현 기자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현 기자

     

    신 교수는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Activist funds)의 개입은 대부분 주가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아닌, 단기투자만을 노리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번 엘리엇 분쟁을 두고 "한국 최대 그룹인 삼성과 국민연금을 포함한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의 미래가 걸려있다"면서 "이번 논란을 국익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투자가들은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 중 한국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작기 때문에 단기전으로 뛰어들어 고수익을 낸 뒤 한국에서 발을 빼면 그만이지만,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장섭 교수는 "국가경제가 잘 돼야 사익도 증대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면서 "단순히 엘리엇에 편승해 단기적으로 떼 돈을 버는 것이 바람직한지,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국내기관투자자들은 삼성물산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제일모직을 비롯한 다양한 삼성그룹 계열사와 KCC와 같은 연관 회사 등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물산의 주가만 보지 말고 전체 포트폴리오를 고려해 이번 합병이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넓고 길게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국내 기관투자자와 외국 기관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다른만큼 사익을 위해서는 국가 경제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이를 위해 포이즌 필, 차등의결권과 같은 기업의 기본적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M&A(기업인수·합병)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하는 경우에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이며 차등의결권은 1주1의결권이 아닌 주주간의 차등을 둬, 주식을 오래 갖고 있는 주주에게 의결권을 더 주는 방식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스의 경우 슐츠버거 재단의 지분율은 0.6%에 불과하지만 의결권 비율은 100% 에 달하는 등 미국과 프랑스 등은 복수의결권을 인정하고 있다. 황금주를 인정해 장기투자를 가능케 하기 위함이다.

    신 교수는 "구글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차등의결권은 단기 이익 좇는 월스트리트식 경영간섭에 제한받지 않고 장기적 기업전략의 수립 및 경영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싫다면 구글에 투자하지 말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면서 "주식을 몇 십 년간 보유해 온 주주들과 단기 투자를 위해 갑자기 들어온 주주들의 의결권을 동일하게 보장해주는 국내 1주1의결권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또 공정거래법, 경영승계, 상속세 등 현실적 기업관에 입각한 국내 재벌정책의 전반적 재검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안재욱 경희대 교수의 사회로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 정승일 사민저널 기획위원장,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과 교수,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토론자로 참여해 엘리엇과 같은 국내 기업 경영안정을 흔드는 투기자본과 최근 삼성-엘리엇 간 분쟁, 올바른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입법 필요 등에 대한 토론을 펼쳤다.


  •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안재욱 경희대 교수, 오정근 건국대 교수,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이종현 기자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안재욱 경희대 교수, 오정근 건국대 교수, 한상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이종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