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삽 들고 현장 누비던 작업반장서 '현대 신화' 이룩사회적 책임강조...나눔으로 국민복리 실천도
  • ▲ ⓒ 정주영 고 현대그룹 창업주는 창조적 파괴를 강조했다.
    ▲ ⓒ 정주영 고 현대그룹 창업주는 창조적 파괴를 강조했다.

오는 25일은 현대그룹을 세운 고 정주영 회장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계기로 현대그룹은 물론이고, 재계 전반에 걸쳐 정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재조명되고 있다.

아산은 한국경제의 부정적(negative)인 기운을 긍정적(positive)인 기운으로 바꾼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수많은 얘기 중에 "하기나 해봤어?"는 지금의 한국경제를 있게 한 명언이다. 

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안된다'는 인식이 만연했지만 아산은 '한번 해보자'는 도전정신으로 우리나라 산업화의 초석을 다졌다.

◆ 직접 삽 들고 현장 누비던 작업반장
   현장경영 통해 '현대 신화' 이룩

강원도 통천군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정주영은 16살 때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공사판 막노동, 쌀가게 점원 등을 전전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1938년 23세의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쌀가게는 일제의 배급제 시행으로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자동차 수리공장, 운수회사 등을 차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아산이 도전정신만 가지고 지금의 글로벌 기업을 일궈 놓은 것은 아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일에 과감히 부딪혀 현실로 만든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기존의 사업구조에 항상 의문을 품고 새로운 방식을 내놓았다. 고정관념 속에서 탈피, 혁신의 경영을 추구한 것이다.

그의 불굴의 도전정신과 혁신, 창의성은 어느 시대에서나 통하는 필수 덕목으로 꼽힌다.  

아산은 20여 년 전인 1990년대부터 이미 한국의 경제둔화를 우려하며 산업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고 '현장'임을 강조했다.

재벌 오너라고 뒷전에 있지 않고 틈만 나면 공사 현장과 생산시설을 찾아 현장 노동자들과 호흡하며 문제점을 파악해 바로 잡았다.

현장 경영을 통해 '현대 신화'를 이룩한 것이다.

"기업이란 냉정한 현실이고 행동함으로써 이루고 키워 나가는 것이다. 그저 앉아서 똑똑한 머리만 굴려서 기업을 키울 수는 없다. 똑똑한 머리만이 아니라 몸소 행동해야 한다."(아산 정주영 자서전에서)

아산은 현장경영의 대표적 기업인으로 손꼽힌다. 그만큼 직접 몸으로 부딪혀 일궈낸 경험으로 현대그룹을 세웠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중화학 공업 발전에 앞장서고 올림픽 유치에 전력을 다했던 그는 북한과의 인적교류를 위해 금강산 관광을 시도했고 경제협력을 위해서 개성공단을 현실화시켰다. 

◆ 소 1001마리 몰고 북한 땅 넘다
   대북사업, 남북 경제협력의 사실상 유일한 창구

  •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소떼 10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가기 전 모습. 아산정주영닷컴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소떼 10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가기 전 모습. 아산정주영닷컴
  •  
    1998년 6월 16일 황소 500마리를 실은 흰색 트럭 50대가 줄줄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넘어갔다. 이어 아산은 분단 이후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세계의 이목을 끌어모은 일대 퍼포먼스였다. 프랑스 문예비평가 기 소르망은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로 표현했다. 그가 2차례에 걸쳐 1001 마리의 소 떼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으로 걸어간 모습은 민족사에 영원히 남을 장면일 것이다. 

    아산은 17세 때 지금은 북한 땅이 된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 고향집에서 소를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상경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소떼 방북을 이끌며 "그때의 소 한 마리가 1000마리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 산천을 찾아간다"고 감격해했다. 

    같은 해 10월 27일 2차 방북 시에는 소 501마리를 끌고 갔다. 

    모두 1000마리가 아니라 1001마리의 소를 데리고 간 건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한다'는 뜻으로 대북 사업이 잘 진행됐으면 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가 말년에 물꼬를 튼 대북사업은 현재에도 남북 경제협력의 사실상 유일한 창구로 남아 있다.

    ◆아산사회복지사업 재단 설립.. 사회적 책임 강조 
       나눔으로 국민복리(國民福利)를 실천

    아산의 또 다른 경영철학은 '베풂'이라는 키워드에 있다.

    그는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서도 후대 기업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자서전에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통해 "기업은 규모가 작을 때는 개인의 것이지만 규모가 커지면 종업원 공동의 것이요, 나아가 국가·사회의 것"이라고 밝히고 "내 경우, 옛날 쌀가게를 했을 무렵까지는 그것이 나 개인의 재산이었지만, 그 후에는 국가·사회로부터 기업을 수탁해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라며 경영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같은 신념은 지금까지도 기업인의 사회공헌의 표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아산사회복지사업재단'설립으로 현실화됐다.

    그는 "국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고자 30년간 모든 정성을 다해 키워온 현대건설 주식의 절반을 과감히 내놓으며 1977년 7월 사회복지재단인 아산재단을 설립했다.

    아산의 거액 기부는 당시 부의 추구를 우선시하던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70년대 후반 당시 장학이나 사회복지를 위한 재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산재단과 같이 사회복지사업을 표방한, 대규모 재단의 설립은 초유의 일이었다.

    그는 아산재단을 통해 전국 곳곳의 낙후된 지역에 병원을 지어 무료 의료혜택을 베풀었고,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대학의 학술연구를 지원해 산·학·연 협동체제를 구축하는 등 국민복리(國民福利)를 실천했다.

    큰 족적 남긴 정 명예회장의 생애
      탄생 100주년 기념 다채로운 행사 곳곳에서 열려 

    한편 수많은 어록과 기록을 남긴 아산(峨山) 정주영 명예회장의 탄생 100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학술대회부터 음악회까지 다채로운 기념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의 삶 전체를 볼 수 있는 '아산 정주영 탄신 100주년 기념 사진전'은 24일까지 이틀간 그랜드 하얏트 호텔 리젠시룸에서 열린다. 

    사진전에서는 1915년 강원도 통천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이 산업화와 국제화로 나아가는 주요 고비마다 큰 족적을 남긴 정 명예회장의 생애와 인간적 면모를 담은 90여 점의 사진이 6개의 전시존으로 구분해 전시한다. 

    울산에서도 정 회장의 기념 특별기획전이 열린다.

    울산박물관(관장 신광섭)은 오는 25일부터 2016년 2월 14일까지 82일간 기획전시실 1, 2실에서 '정주영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 불굴의 의지와 도전'을 전시한다.

    특별전시는 울산박물관, 울산대학교 대학기록관이 공동 주최하고, 울산상공회의소,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울산대학교가 후원한다.

    개막식은 25일 오전 11시 울산박물관 1층 로비에서 김기현 시장, 이채익 국회의원, 전영도 울산상공회의소 회장, 윤갑한 현대자동차 사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하는 가운데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故 정주영 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으로 바꾼 그의 일대기와 울산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원동력을 마련한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 정신 및 울산에 대한 사회적 공헌 등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1전시실'에서 '아산 정주영의 출생과 한국 경제의 발전'이라는 주제로 아산 정주영의 출생과 성장, 도전과 성공 그리고 올림픽 유치활동, 소떼몰이 방북, 아산사회복지 재단 설립 등의 활동상을 살필 수 있다.

    '2전시실'에서는 '세기의 경영인 정주영, 울산 그리고 인간 정주영'이라는 주제로 정주영과 울산의 인연의 시작, 현대자동차 설립, 포니의 탄생 비화 등 현대와 울산의 자동차 발전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또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유조선 건조를 동시에 이룩한 과정을 보여주고, 울산대학교 설립 등 울산에서의 사회공헌과 현장의 노동을 중시한 인간 정주영을 조명하는 것으로 전시는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