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자 금리 부담 증가에 신규 분양시장 '빨간불'…중도금 대란 우려도중도금 납부일 지난 곳도 대출 은행 못구해…분양일정도 차질

지난해 10월 영남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A건설사는 최근 중도금 1회차 납부일이 지났는데도 중도금 대출 은행을 구하지 못한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해당 아파트의 기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은행이 중도금 대출도 해주기로 했으나 돌연 중도금의 절반만 대출을 해주겠다면서, 그마저도 중도금 잔여 50%에 대해서는 다른 은행의 대출 확약을 받아오라는 조건을 내건 탓이다.

최근 금융기관들이 집단대출을 꺼리는 가운데 거래 은행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게 된 이 업체는 지난달 1차 중도금 납부일까지도 대출을 해주겠다는 은행을 찾지 못했다. 이 회사는 결국 계약자들의 불만을 고려해 중도금 1회차를 유예해주기로 했다.

업체 관계자는 "100% 계약까지 끝났는데 중도금 대출을 해주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중도금 대출 알선을 해주지 못한 책임으로 계약자로부터 1차 중도금을 받지 못해 회사의 자금 부담도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부산에서 아파트 분양을 마친 B건설사 역시 미분양없이 100% 계약이 끝났는데도 PF 대출 은행이 중도금 대출을 거절해 4개월째 대체 은행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다.

이 회사는 중도금 일정이 다음달로 임박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여서 1차 중도금 알지가 도래하기 전까지 다른 은행을 찾지 못할 경우 중도금 일부를 유예해야 할 판이다.

대구에서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추진 중이던 C사는 지난해 10월 은행이 느닷없이 중도금 대출제안서를 철회하는 바람에 일반분양이 중단됐다.

사전 예고도 없이 중도금 대출을 해줄 수 없으니 다른 은행을 알아보라는 갑작스러운 통보에 석 달이 넘도록 대체 은행을 찾지 못해 일반분양 일정을 미루고 있다.

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본격화된 시중은행의 집단대출 옥죄기가 해가 바뀌어도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인위적인 중도금 대출 축소는 없다", "은행에 중도금 대출 중단을 지시한 적 없다"는 입장이지만 6대 시중은행들은 지난해 금감원의 집단대출 여신심사를 기점으로 4개월이 넘도록 중도금 대출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은행은 아예 중도금 대출을 거부하거나 일부 서울·신도시의 인기지역에 한해서만 대출을 해주면서 실제 분양 일정에도 차질을 빚는 등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실제 한국주택협회가 65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집단대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애로 사례를 접수한 15개 건설사에서 대출 거부 등의 어려움을 겪는 현장이 1월 말 현재 3만3천970가구, 대출 규모로는 5조2천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0월 규제 직후 조사된 1만3천가구, 2조1천억원에서 2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이다.

이 가운데 대출 보류 또는 거부된 경우가 1만5천400가구·2조4천억원, 시중은행 대신 지방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경우가 16만6천가구·2조8천억원에 달했다.

건설사와 계약자들의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시중은행의 대출을 거절당한 건설사들은 제2금융권·지방은행과 대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작년 2.5∼2.7% 안팎이던 중도금 대출 금리가 현재 3.5∼3.9%로 1%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중도금 대출 이자가 올라가면서 분양 계약을 체결한 서민들은 이자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금리가 갑자기 3% 후반까지 높아지자 계약자들이 이자 부담을 신경쓰면서 계약을 꺼리고 있다"며 "은행의 중도금 대출 기피로 (금리가 올라) 서민의 부담은 늘고, 은행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라고 말했다.

중도금 무이자로 분양한 업체들은 금리 인상 만큼의 손실을 회사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작년 가을 경기도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D사는 중도금 대출 약정 은행으로부터 대출 규모를 계획보다 축소하고, 금리도 3%대 초반으로 종전보다 0.5%포인트 인상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뒤늦게 추가 대출 은행 구하기에 나선 이 회사는 나머지 대출액에 대해 제2금융권과 대출 계약을 맺었으나 금리가 3%대 중반으로 책정되면서 별 수 없이 중도금 전액을 3%대 초반으로 계약자들에게 알선하되, 나머지 금리 차이에 대해서는 시행·시공사가 공동으로 부담하기로 했다.

주택업계는 이달 가계부채관리방안 시행으로 주택담보대출 심사가 강화돼 주택경기가 꺾이는 가운데 신규 분양 중도금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분양시장까지 침체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말 기준 미분양 아파트는 6만1천여가구로 급증하면서 청약 열기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지난해 10∼11월 분양에 들어간 업체들은 중도금 납부 시기가 도래했거나 임박한 상황이어서 최악의 경우 '중도금 대란'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참다못한 주택업체들은 4일 "집단대출 규제를 조속히 정상화해 달라"며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장 명의로 관련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와 청와대에 건의문을 제출했다.

양 협회는 건의문에서 "이달부터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존 주택시장의 수요 위축과 가격 하락 등의 조짐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기존주택 처분을 통한 신규 분양시장 진입이 어려운 상황인데 집단대출 규제까지 풀리지 않아 가뜩이나 애로를 겪는 신규 분양 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협회는 또 "올해 건설사의 신규 주택 공급 물량이 지난해 대비 3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집단대출 증가세는 자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모처럼 어렵게 살려낸 주택시장의 불씨를 꺼트릴 수 있는 집단대출 규제를 조속히 정상화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