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률 54 대 1 '사상 최대'… 학원가-24시간 카페 등 불야성

  • 22만명이 응시하는 사상 최대의 9급 공무원시험이 이틀앞으로 다가왔다. 공시족들이 몰려있는 노량진 학원가는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24시간 막바지 열공무드가 한창으로 숨소리 조차 맘대로 낼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이 가득하다.

    주말인  9일 전국 300여개 고시장에서 시행되는 '국가직 9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에는 22만1853명이 응시원서를 접수했다. 경쟁률 54대 1로 역대 최다 인원이 몰렸다.

    그동안 평균 19만명대에 그쳤던 9급 공무원시험은 이번에 처음으로 20만명을 넘어섰다.


    대형 학원들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 일대는 온종일 수험생들로 넘쳐난다. 수험생들은 강의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이어진 긴 줄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깨에는 모두들 대형 가방을 메고 있다.

     

    거리를 오가는 중에도 하나같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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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음도 아까운 터라 점심시간에는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컵밥 거리'가 붐빈다. 3000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빠른 식사까지 할 수 있어 많은 수험생들이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수험생 이모씨(25·경기 안산시)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  식사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 공부하느라 바빠서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는 날도 많다"고 말했다.

    한 노점상 주인은 "자식 같은 애들이 나와서 고생하니까 안쓰럽다. 매년 공무원 수험생들이 늘어가는 걸 보니 그만큼 취업이 어려운 것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 학원 수업이 끝날 무렵인 오후 6시. 강의실을 나선 이들로 다시 거리가 붐빈다. 삼삼오오 스터디 그룹 별로 모여 곳곳의 커피숍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의견을 나눈다. 

    이윽고 저녁과 심야, 주변 곳곳의 고시원은 다시 정적무드로 바뀌고 밤늦도록 불은 꺼지지 않는다.
    이렇게 노량진 일대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 대략 30만~40만명에 달한다.

    역대 최다인원이 몰린 이번 시험에서는 또 십수만명이 분루를 삼키고 다시 노량진 공시족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 채모씨(26·경기 용인시)는 "이번 시험 지원자 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마냥 공부하다 보면 시험에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생긴다. 노량진에는 공무원시험에 인생을 '올인'하는 사람들이 많다. 떨어지면 오갈 데가 없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고 불안감을 내비쳤다.

    수험생 양모씨(28·서울 강서구)는 "사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직업적 안정성 때문에 시작했다. 솔직히 큰돈을 벌려는 욕심은 없다. 주위에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이 많다. 취업했다가도 버티기 힘들어 노량진에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털어놨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 20~30대 청년층의 실업률은 12.5%를 기록했다.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올해 대기업 채용규모는 전년대비 0.6% 증가에 그쳤고 일부 회사는 채용규모를 줄이기도 했다.

    청년실업 등 고용불안과 경기악화로 안정적인 직장과 복지를 원하는 이들이 늘면서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한 셈이다.

    치열한 공무원 시험으로 인해 곳곳에서는 사건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공무원시험에 불합격했지만 가족들에게는 합격했다고 전한 뒤 1년간 거짓 출근을 했던 A씨(30)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에는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자신이 응시한 7급 공무원 시험의 성적을 조작한 송모씨(26)가 경찰에 붙잡혔다.

    잇따르는 사고와 불안감에도 수험생들은 곧 다가올 시험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박모씨(28·서울 강남구)는 "요즘 몸이 안 좋다. 시험날까지 몸이 버텨줬으면 한다. 이젠 적은 나이도 아니고 솔직히 불안하다. 이번 시험이 두 번째다. 일하는 친구와 내 삶을 자꾸 비교하게 된다. 내 자신이 초라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끊었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게 중요한 건 알지만 하루하루 힘든 건 어쩔 수가 없다"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늦은 밤까지 노량진 학원가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24시간 영업하는 카페는 새벽까지 공부하는 수험생들로 가득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9급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수험생들은 시험 당일에 맞춰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내달 25일 합격자 발표와 동시에 탄식과 환희가 교차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