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취약 업종 중 조선·해운에 강도높은 드라이브 예상아직 구체적인 방안 없어, 실업대책 및 재원마련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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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실한 기업들을 솎아내기 위한 구조개혁이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특정 업종이나 기업에 국한되기 보다는 체질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특히, 정부 주도의 구조개혁보다는 시장 논리에 입각한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하기 위한 기로에서 5대산업 구조개혁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각 업종별 올바른 방향성을 제언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정부가 한계기업(좀비기업)에 대한 대수술을 시작한다. 취약 업종으로 분류된 조선, 해운, 철강, 건설, 화학 등 5대 산업이 대상이다. 특히 조선과 해운에 초첨이 맞춰지고 있다. 정부는 구조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이 8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며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총선 직후이자 대선이 본격화되기 직전인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해서다.

     

    문제는 정부의 구조개혁 밑그림이 제대로 그려지고 있느냐는 점이다. 정확한 진단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솔루션을 도출했는지가 관건이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법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 내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대량 실업 사태와 예산 마련 등의 후폭풍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되면서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 없게 됐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이 새누리당 또는 더불어민주당 손을 들어줘도 표가 부족하다. 복잡하게 얽힌 정국에서 3당의 시각과 정책 방향도 다르다. 여기에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금융당국과 산업은행, 한국은행까지 한 마디로 사공이 너무나도 많은 상황이다.

     

    5대산업 구조개혁은 여러가지 정치 현안과 맞물려 있어 더욱 복잡하다.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법과 노동법 등 경제활성화법을 놓고 3당이 힘 겨루르기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신사업 투자 등 고용 창출을 위해 남은 19대 국회 임기 내에 경제활성화법이 우선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아닌 경제민주화를 고수하고 있으며, 국민의당도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테이블에 앉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새누리당의 원유철 당대표 권한대행은 “정부와 새누리당은 일관된 원칙을 갖고 구조조정을 추진했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법과 노동법 등 경제활성화법이 19대 국회 내에서 처리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정부가 먼저 현 상황을 면밀하게 인식하고 제대로 된 전반적인 구조조정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며 “그에 따라 우리가 협력할 건 협력하겠다”며 공을 정부 측에 넘겼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여야정이 산업구조 개혁을 위한 청사진을 함께 만들자”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4일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주재로 경제현안회의(청와대 서별관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이동걸 산업은행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산업별 구조조정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했으며, 특히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 대책과 재원 마련이 관건이다.

     

    25일에는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 주재로 지난 22일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 등 해운업계 재편 동향을 점검한다. 26일에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산업·기업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를 열고 정부차원의 방안을 밝힐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구조조정 또는 빅딜로 현안을 접근해서는 안된다.

     

    산업계에서는 정부 주도의 구조개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시장에서 개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자구안을 만들고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실의 원인이 개별 기업의 자체 경쟁력 약화 때문인지, 시황이나 업황이 안좋아서 불가피한 것인지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며 “전자의 경우라면 강도 높게 개혁해야겠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시장의 좋아질 때까지 지원해주면서 기다려주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율적인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이다. 삼성그룹은 2014년 말 화학과 방산 계열사 4곳을 한화그룹에 넘겼다. 당시 파격적인 빅딜로 평가됐다. 결국 한화테크윈, 한화탈레스, 한화종합화학, 한화토탈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덕분에 한화그룹은 방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두산DST까지 인수하면서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해서 억지로 합병하거나 인위적으로 인력을 감축하는 등의 구조조정은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내부에서 노조들의 반발도 클 수 밖에 없다.

     

    지난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을 2개 또는 1개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너무나도 현실을 모르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조선업체를 인위적으로 통폐합하면 그 빈틈은 결국 중국의 차지가 될 것”이라며 “나중에 경기가 회복하더라도 주도권을 뺏어오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설도 비슷한 맥락이다. 연초에만 해도 조양호 회장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채권단은 한진그룹이 현대상선을 떠안으라고 종용했고, 결국 자율협약 신청이라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울며 겨자먹기식의 구조조정은 탈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부가 직접 주도해서 인위적으로 퇴출시키고, 합병하기보다는 각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회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각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하고,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하는지 점검하고 독려할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 논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