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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사태 한 달을 맞은 부산항에서는 한진 선박들에 실린 화물을 내리는 작업에 속도가 붙는 등 물류대란이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영세한 협력업체들은 그동안 밀린 돈을 받지 못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고 종사자들의 실직 위기도 여전하다.
게다가 우려대로 환적화물의 이탈 사태가 벌어지면 항만산업 전반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부산항의 위기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 속도 붙은 한진 화물 내리기…중국 항만 하역재개로 숨통 트여
사태 초기에 며칠에 한척 꼴로 접안하던 한진해운 선박이 최근에는 하루에 2~3척으로 늘어 싣고 있던 화물들을 부산항에 내리고 있다.
부산항만공사가 관리하는 28척의 컨테이너선 가운데 18척이 20피트 기준으로 5만4천850여개의 컨테이너를 내렸다.
남은 10척의 화물은 10월 초까지 모두 내릴 수 있을 것으로 항만공사는 예상했다.
억류나 입항거부 등을 우려해 목적지로 가지 못하고 대기하던 한진해운 선박들이 싣고 있던 컨테이너들을 한꺼번에 내려놓으면서 부산항은 장치장 부족으로 한때 비상이 걸렸다.
한진해운 선박이 주로 이용하는 부산신항 한진터미널의 장치율은 사태 초기에 원활한 작업이 가능한 한계치인 80%를 넘어 90%에 육박했다.
사실상 더 이상 배가 접안해 화물을 내리는 것이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항만공사가 급히 배후단지에 있는 공용 장치장과 도로부지에 빈 컨테이너들을 옮겨 부두가 마비되는 사태는 면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로 가야할 환적화물들이 제때 수송되지 못하고 쌓여 한진터미널의 장치율은 여전히 70% 후반에 머물고 있다.
다행히 닝보 등 중국의 일부 항만에서 하역이 재개됨에 따라 애초 목적지가 중국인 일부 선박이 부산항에 화물을 내리지 않아도 돼 선석과 장치장 운영에도 숨통이 트였다.
부산해양수산청 관계자는 29일 "부산항에 화물을 모두 내리기로 했던 선박 가운데 4척이 닝보항에 입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대기 중인 선박들도 현지 하역이 여의치 않으면 부산항으로 오는 대신에 중국 항만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운송지연이 장기화하면서 판매 시기를 놓친 화주들이 방치해 부두 운영에 지장을 주는 화물이 생기는 것도 문제인데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닐 것으로 부산해수청은 보고 있다.
한진해운 선박들이 부산항에 내려놓은 환적화물을 목적지인 다른 나라로 실어나가는 작업은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물량이 많은데다 CKYHE동맹 소속 외국선사들이 투입한 대체선박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 협력업체들 "밀린 돈 못 받으면 도산 위기"
한진해운과 거래하는 부산지역 업체는 289곳, 종사자는 1만1천840명에 이른다.
이 업체들이 한진해운에서 받지 못한 돈은 538억6천700만원에 이른다.
터미널 운영사가 432억4천900만원으로 가장 많고, 화물고박업(래싱) 21억3천400만원, 선용품공급업 19억3천500만원, 예선업 17억6천300만원, 화물검수업 16억3천500만원 등이다.
터미널 운영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세 업체들이다.
특히 한진해운 거래 비중이 큰 일부 업체는 도산 직전에 놓였다고 업계는 전했다.
법원이 법정관리가 개시된 9월 작업분에 대해서는 대금지급을 승인해 조만간 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8월 이전에 밀린 돈은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항만산업은 특성상 매출의 90%가량이 인건비로 나가는데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10억원 이상 물리다 보니 영세업체들로선 버티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항만공사는 영세업체들의 대금을 우선 지급해 달라고 법원에 계속 요청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이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 관련 종사자들은 실직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진터미널에서 야드 트랙터로 화물을 옮기는 협력업체 근로자 100여명은 이미 일손을 놓은 지 오래됐다.
한진해운과만 거래하는 업체들은 일감이 줄어 일부 직원을 내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항만 근로자들의 대량 실직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련 업계는 보고 있다.
국제영업네트워크가 상당 부분 붕괴하고 선박 규모가 쪼그라든 한진해운이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관련 업계의 일감이 크게 줄어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 앞으로가 더 문제…환적화물 대량 이탈 땐 항만산업 전반에 위기
한진해운이 해운동맹 CKYHE에서 사실상 퇴출된 데다 내년 4월에 출범할 새 동명체 디 얼라이언스 합류도 불투명해지면서 부산항으로서는 막대한 환적화물 이탈을 우려하는 처지에 놓였다.
CKYHE를 주도하던 한진해운이 부산항에서 처리한 환적화물은 연간 20피트 기준 100만개에 이른다. 동맹 소속 외국선사들의 환적물량도 40여만개나 된다.
부산항 환적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진해운이 사라지거나 해운동맹에서 빠지면 외국선사들이 부산항에서 환적화물을 처리할 이유가 없어진다.
자기 터미널이 있는 중국이나 대만 등지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부산항만공사는 최대 60만개 이상이 이탈할 것을 우려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100만개 이상 이탈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 우려가 현실화하면 막대한 부가가치가 사라지고 그 피해는 항만산업 전반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부산항만공사는 항만산업의 매출 감소액을 연간 1천778억6천여만원으로 추산했다.
항만공사가 환적화물 이탈을 막으려고 연말까지 150억원에 이르는 각종 인센티브를 추가로 제시하고 나섰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부산해수청과 항만공사는 "당장은 환적화물 이탈 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발이 묶였던 한진해운 화물을 조속하게 처리하고 나서 글로벌 선사들을 대상으로 부산항이 가진 환적항으로서 장점을 적극 홍보하는 등 마케팅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