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직에 1년 계약직도… 일자리 '질'도 논란
  • ▲ 서울시내 한 대학교 취업정보센터. ⓒ연합뉴스
    ▲ 서울시내 한 대학교 취업정보센터. ⓒ연합뉴스


    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정책 설계의 근거가 되는 중소기업 통계 자체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약 20만개의 빈 일자리가 있다고 보고 청년 고용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 일자리는 이보다 훨씬 적고 질도 나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 미스매치' 규모가 정부 예측보다 적다면 중소기업의 빈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통계에 일부 부족함이 있어도 정책의 방향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수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 통계는 더 정확하고 치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최근 청년의 중소기업 취업을 촉진하는 일자리 대책을 만들기 위해 파악한 중소기업 빈 일자리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20만1000개다. 정부는 최악의 청년 실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동시에 중소기업에서는 20만개의 일자리가 남아돌고 있다며 '일자리 미스매치'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이번 청년 일자리 대책도 바로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처우 격차를 해소해 중소기업 취업을 유도함으로써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정부가 정책 목표로 삼은 '중소기업 빈 일자리 20만개' 통계가 실제보다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 '중소기업 관련 통계 현황과 개선방안'을 통해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는 "9988 통계 프레임이 기업 수와 고용자 수에 있어서 중소기업의 비중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9988'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위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우리나라 사업체의 99% 이상이 중소기업이고, 이들이 노동자의 88%를 고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의 현황이 과대평가된 이유는 일부 부처에서 '사업체'와 '기업' 통계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기업 통계와 달리 사업체 통계는 지점·지사를 각각 개별 단위로 구분해 집계한다. 1개 대기업도 지점·지사가 있으면 각각 별개의 사업체로 통계에 잡힌다.

    정부가 이번 청년 일자리 대책의 기초자료로 사용한 '중소기업 빈 일자리' 통계는 정확하게 말하면 '300인 미만 사업체' 통계다. 즉 대기업의 지점이나 지사라고 해도 300인 미만이면 모두 '중소기업'으로 분류됐다는 뜻이다.

    정부가 인용한 통계가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것임에도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기업' 통계라고 명시하는 오류를 범했다.

    보고서는 "1기업 다(多)사업체 중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나는 기업체는 대기업으로 분류하고 지사는 중소기업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종사자 수를 기준으로 하는 중소기업 비중은 지금보다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통계를 토대로 정책을 수립하면 정책 목표 달성은커녕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채워야 할 중소기업 일자리 20만1000개에 대한 일자리 '질' 문제도 논란이 된다.

    빈 일자리가 대부분 서빙·배달원 등 임시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부는 20만1000개 중 제조업·교육 등 10만6000개가량은 '비교적 괜찮은 일자리'라고 반박했다.

    뿐만 아니라 "숙박·음식 등 서비스업 일자리 9만5000개 중에서도 76%가 '상용직'이기 때문에 서빙·점원 등 질 낮은 임시·일용직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모든 상용직이 임시·일용직이 아니라고 해서 모두 괜찮은 일자리인 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통계상 상용직은 고용계약기간이 1년 이상인 노동자를 뜻한다. 기간이 1개월 미만이면 일용직, 1개월 이상 1년 미만이면 임시직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고용이 안정됐다고 볼 수 없는 '1년짜리 계약직'도 무기계약직·정규직과 함께 모두 상용직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상용직에 대해 임시·일용직이 아니라며 '나쁘지 않은' 일자리라고 강조하면서 정작 상용직에 1년짜리 계약직이 포함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책의 근거로 삼는 중소기업 빈 일자리 20만1000개 중 상용직은 17만1000개다. 정부는 질 낮은 일자리로 주로 임시·일용직을 들고 있지만, 상용직에 포함된 1년짜리 계약직까지 포함하면 질 낮은 일자리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조만간 관련 국제 통계 기준이 개선될 예정인 만큼 해당 내용을 반영해 통계의 실효성을 높일 계획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계약기간 존재 여부를 기준으로 종사상 고용 지위 분류를 세분화하는 안을 검토 중이며 오는 10월에 관련 내용을 확정할 예정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대책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중소기업 빈 일자리 통계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대한 가용한 통계를 사용한 것"이라며 "그렇다고 해서 중소기업 일자리가 남아도는 일자리 미스매치 현실이 달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부)는 "대기업의 지점이나 지사라고 해도 사실상 중소기업처럼 움직이면 중소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정부 정책을 위한 통계는 정확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