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롯데주류, 주력 소주 제품 알코올 도수 낮춰… 원가 절감 효과오비맥주, '카스' 역수입, 롯데주류 수입 맥주 시장 도전"주류업계 경쟁력 갖추기 위해선 장기적 안목에서의 전략과 투자 필요해"
-
국내 주류업계가 시장 침체에 맞서는 고육지책으로 세금 줄이기에 나섰다. 제품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은 줄이면서 세금을 절감해 수익 개선을 꾀하려는 움직임으로 파악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 오비맥주 등 국내 대표 주류기업들이 잇따라 제품 알코올 도수를 조정하고 세금 비중이 낮은 수입 맥주를 들여오는 등 절세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후레쉬'의 알코올 도수를 17.8도에서 17.2도로 낮췄다. 롯데주류도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7.5도에서 17도로 낮추면서 '순한 소주' 경쟁에 가세했다.
표면적으로는 저도주 추세에 발맞춰 알코올 도수를 낮게 조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원재료 절감효과가 숨겨져 있다.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 소주의 원재료인 주정을 덜 쓰게 돼 한 병당 6~10원의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소주 회사는 매년 매출의 20% 정도를 주정 구입에 쓰고 있는데 이번에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서 하이트진로는 연간 약 100억원, 롯데주류도 약 20억원의 원가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서 제품 가격은 기존 그대로를 유지해 사실상 가격 인상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업계의 관계자는 "소주는 대표적인 서민 술로 자리잡으면서 소비자들의 가격 인상 저항이 상당히 큰 제품"이라며 "인건비나 원재료, 물류비 등이 상승할때마다 제품 가격을 올리는데 눈치를 봐 온 주류업계가 원가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수익 개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이어 "주류 소비자들의 트렌드가 순한 저도주로 변화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류업체들이 신제품이 아닌 주력 제품의 알코올 도수를 매년 낮추는 것은 단순한 트렌드의 변화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이트진로는
알코올 도수는 4.5도로 하이트진로의 대표 맥주인 '하이트'(4.3도)에 비해 약간 높지만 출고가는 355㎖ 캔 기준 717원으로 동일 용량 '하이트' 보다 40% 이상 저렴하다.
이같은 가격이 가능한 것은 주류에 붙는 세금인 '주세'가 다르기 때문이다. 맥주는 국내 주세법상 맥아 비중이 총 용량의 10% 이상인데 비해 발포주와 같은 기타 주류는 맥아 비율이 10% 미만이거나 옥수수 대두 등 맥주 원료가 아닌 것을 사용해 만든 것이 특징이다.
일반 맥주에 붙는 주세율은 72%, 발포주와 과일리큐르 같은 기타주류에 붙는 주세율은 30%로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맥주 제조원가가 한 캔 당 1000원이라고 가정하면 여기에 주세 72%, 교육세 30%, 부가세 10%가 붙어 최종 출고가는 2222원이 된다. 같은 제조원가를 기준으로 기타주류로 분류될 경우 주세 30%, 교육세 30%, 부가세 10%가 붙어 최종 출고가는 1760원이 된다.
'필라이트'의 가격 경쟁력은 이 '주세'의 차이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하이트진로는 '필라이트'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후속 제품으로 '필라이트 후레쉬'를 내놨다.
주류업계는 세금 부담이 적은 수입 맥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오비맥주는 오는 6월 개최되는 월드컵을 앞두고 '카스 후레쉬 월드컵 스페셜 패키지'의 740ml 제품을 역수입한다. 오비맥주는 기존 355ml, 500ml 외에 대용량 제품인 740ml 캔 제품을 테스트 삼아 소량 선보인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생산이 아닌 미국에서 제조해 역수입한다고 밝히면서 이목을 끌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국내에 740ml 캔 제품이 흔치 않은데 대용량 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을 보고자 테스트 차원에서 수입을 결정했다"며 "월드컵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아 국내에 생산라인을 새로 구축하는데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돼 미국에서 수입하기로 했지만 향후 시장 반응이 좋을 경우 국내 생산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오비맥주가 국내 생산 맥주와 수입맥주에 부과되는 과세표준이 다른데 따른 세금을 줄이고 수익성을 살펴보기 위한 움직임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국산 맥주는 판매관리비와 영업비, 마케팅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한 출고가에 맞춰 세금이 부과된다. 반면 수입 맥주는 수입 신고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책정하고 있어 관세청에 수입 원가를 낮게 신고하면 세금을 덜 낼 수 있는 구조다.
일례로 지난해 하이네켄코리아는 지난해 상품판매액 1170억원 중 16.2%에 해당하는 190억원을 주세 및 교육세로 냈다. 반면 국산 맥주 제조사인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상품판매액 2조9884억원 중 44.4%에 달하는 1조3272억 원을 주세 및 교육세로 냈다.
같은 맥주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수입할 경우 제품에 붙는 세금이 확 줄어들어 국산맥주 세금 역차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국내 주류업계는 수입맥주 포트폴리오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추세다.
그간 수입 맥주에 수입에 소극적이었던 롯데주류는 지난해 말 미국 '몰슨쿠어스 인터내셔널'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부터 수입맥주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롯데주류는 'L7', '맥가글스' 등 일부 해외 맥주를 소량 수입해 시장 테스트 차원에서 판매해 왔다. 이와 함께 한일 합작법인인 '롯데아사히주류'를 통해 '아사히' 맥주 제품을 생산 및 판매해왔지만 '밀러'와 같은 대형 브랜드 맥주를 직접 수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주류는 한국에서 '밀러 라이트(Miller Lite)'와 '밀러 제뉴인 드래프트(Miller Genuine Draft)'를 유통, 판매한다. 이와 함께 5월께 '블루문'과 '쿠어스라이트' 등 몰슨 쿠어스 사의 다른 브랜드 맥주도 수입해 판매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이트진로는 덴마크 맥주 1위 기업인 '칼스버그(Carlsberg)와 정식 수입 계약을 체결하고 덴마크 알코올 사이다로 유명한 '써머스비 애플'과 '써머스비 블랙베리'를 선보였다. 이외에도 크로낸버그 1664 블랑(프랑스), 싱하(태국), 기린(일본), 포엑스 골드(호주)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입맥주 브랜드를 보유한 오비맥주는 현재 19종의 수입 맥주를 국내에 선보이고 있다. '버드와이저'와 '호가든' 병제품 2종은 오비맥주 광주 공장에서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그 외에 '스텔라 아르투아', '레페 브라운', '레페 블론드', '버드 아이스', '벡스', '레벤브로이',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코로나', '네그라 모델로', '프란치스카너', '바스', '모젤', '보딩턴', '호가든 포비든프룻', '호가든 그랑크뤼', '호가든 로제', '하얼빈' 등 17종을 수입해 선보이고 있다.
매일유업의 자회사인 엠즈베버리지는 일본 브랜드인 '삿포로'와 '에비스' 맥주를 수입해 국내에 선보이는 등 수입 맥주 브랜드 유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위스키 업체인 골든블루도 올해 수입맥주 브랜드를 수입해 국내 시장에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주류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류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하고 연 성장세도 3%대로 미미한 수준"이라며 "이에 주류업체들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절세 혜택을 노리고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등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가 절감이나 절세 혜택, 수입 맥주 유치 등은 단기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내 주류업계의 경쟁력을 키우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주류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더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전략과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전했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주류 산업 규모는 수출입을 포함해 2015년 기준 10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출고가 기준 국내 생산은 9조4000억원, 수입액은 약 7000억원, 수출액은 약 2600억원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국내 주류 산업은 매년 약 3%씩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