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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이오텍들이 글로벌 임상 3상까지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본다. 한국은 신약개발의 역사가 선진국에 비해서 짧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하다. 아직은 실패 경험을 통해 노하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권명옥 PMG 인베스트먼트 솔루션(PMG Investment Solutions) 헬스케어투자 총괄(생화학 박사)는 16일 서울시 강남구 파크하얏트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바이오산업의 현주소를 이같이 진단했다.그는 한국 바이오기업들의 잇단 글로벌 임상 3상 실패에 대한 질타보다는 관용이 필요하다고 봤다. 혁신은 실패를 동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어 성공하면 된다는 것이다.
권 박사는 노바티스 스위스 본사에서 15년 이상 근무하면서 다년간 미국, 독일, 스위스의 바이오텍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현재 본사가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PMG 인베스트먼트 솔루션의 헬스케어투자 총괄로서 바이오텍 투자를 이끌고 있다.
권 박사가 바이오텍 투자에 있어서 중요시하는 것은 ▲회사의 기술력 ▲임상디자인 ▲경험이 풍부한 인력과 팀의 수행능력 등이다.
권 박사는 "바이오텍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적인 과학기술이 어떤가에 있다"며 "그 다음으로는 질병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임상시험 결과를 살펴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 회사에 경험이 풍부한 이사들이 많은지, 팀에 신약개발 경험이 많은지도 확인한다"며 "신약후보물질뿐 아니라 신약개발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이 포진해있는지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신약개발을 처음 경험해보는 사람들은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신약개발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아직 글로벌 빅파마에 비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게 권 박사의 생각이다.
권 박사는 "노바티스는 거의 200년의 역사가 있는 회사라 실패와 성공을 두루 경험해 봤고, 미국도 화이자 등 역사가 축적된 제약사가 많아 여기서 훈련된 사람들이 바이오텍을 새로 차리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언급했다.
올 들어 한국 바이오업계는 글로벌 임상 3상 도전이 잇따라 좌절되면서 많은 부침을 겪었다.
지난 6월 에이치엘비 쇼크, 지난달 신라젠 쇼크에 이어 지난 9월에는 헬릭스미스까지 임상 3상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다. 지난 5월 코오롱티슈진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의 미국 임상 3상이 중단된 것까지 포함하면 올 들어 네 번째다.
권 박사는 이러한 글로벌 임상 3상 실패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거쳐온 과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권 박사는 "한국에서 글로벌 임상 3상까지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것이라고 본다"며 "신약개발 자체가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해외 투자자들은 하루에도 몇 건의 임상 실패 소식을 듣기 때문에 덜 민감하다"며 "한국에선 아직 글로벌 임상 3상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민감하게 실패라는 걸 용납을 못하는 것"이라고 봤다.
시장에서는 최근 임상 3상에 실패한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한 가지 신약후보물질에 집중해 더욱 충격이 컸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권 박사는 미국의 바이오텍도 신약후보물질 하나에 집중해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반박했다. 젠자임(Genzyme), 알렉시온(Alexion Pharmaceuticals) 등이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는 것.
젠자임은 고셰병, 파브리병 등 희귀질환 치료제를 전문으로 개발해 지난 2009년 기준으로 46억 달러(약 5조 1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2011년 사노피에 201억 달러에 인수·합병(M&A)됐다.알렉시온은 발작성 야간 혈색소뇨증(PNH) 치료제 '솔리리스'를 개발한 미국의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 전문 바이오텍이다. 솔라리스는 지난해 글로벌 매출 35억 6300만 달러(약 4조 3000억원)을 달성한 고가의 바이오의약품이다.
권 박사는 "미국 바이오텍도 신약후보물질 하나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며 "바이오텍은 많은 자본이 없으니까 한 가지 신약후보물질에 집중하고 전문지식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잇단 임상 3상 실패에도 불구하고 해당 업체들에 대해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권 박사의 생각이다.
그는 "미국은 신약개발이 워낙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번 실패한 CEO에 대한 선입견이 없다"며 "오히려 미국의 벤처투자사(VC)들은 실패 경험이 있는 CEO를 더 믿을 수 있다고 여긴다"고 언급했다. 이어 "한 번에 성공한 사람은 정말 드물다"며 "혁신은 실패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그는 "바이오텍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도 필요하지만 VC 등 민간 투자가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며 "돈을 벌어야 하는 VC는 평가 기준이 더 까다롭기 때문에 바이오텍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다.
이어 "바이오텍이 잘 크려면 기초과학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정부는 대학 등 연구기관에서 기초과학 연구를 경제적인 압박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의 MIT·하버드, 스위스 연방대 등에서 도출된 기초과학 연구 결과는 기술이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학계에서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야 신약개발로 이어질 좋은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권 박사의 주장이다.
권 박사는 한국의 바이오텍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투명성(transparent)을 갖춰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바이오텍의 실패는 용인하지만, 투명성이 없으면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를 주지 않는다"며 "회사에 위기가 닥쳤을 때 투자자들에게 어느 시기에 어떻게 발표하는가, 악재에 대해서도 바로 알리는가 등에 따라 신뢰성이 생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