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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문재인대통령이 구상·제안한 동아시아철도공동체(EARC) 설립에 박차를 가한다. EARC 설립을 통한 거대경제권 구상은 기본적으로 남북·대륙철도 연결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문대통령이 총선 승리 이후 철도를 매개로 한 남북경제협력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최근 미·북, 미·중, 한·일 관계가 원만하다고 볼 수 없는 상태여서 정부가 속도를 낼수록 구상이 파행할 공산도 커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29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과 함께 EARC 국제포럼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EARC는 201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이 동북아 경제번영과 평화증진을 위해 제안한 것으로, 남과 북, 중국·몽골·러시아·미국·일본이 철도를 매개로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국가 간 협의체를 말한다.
EARC 국제포럼은 EARC 설립 필요성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천 가능한 과제를 도출하는 논의의 장이다. 중국과 몽골, 러시아, 미국, 일본 등 관계국 정부와 연구기관, 철도운영기관,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 등 저명한 연구기관의 참여를 유도해 민·관 회의체로 꾸릴 계획이다.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상황을 고려해 일정을 잡되, 참여대상 섭외와 국제포럼 발족을 거쳐 올 하반기 국제행사를 연다는 구상이다.
이날 협약에서 국토부와 철도기관들은 국제포럼에 참여할 관계 전문가 섭외와 홍보, 행사 지원 등 포괄적 협력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원활한 업무 추진을 위해 실무협의회 구성에도 뜻을 모았다.
황성규 국토부 철도국장은 "EARC 구상 실현의 성패는 설립 필요성에 대한 관계국 간 공감대 형성에 있다"면서 "국제포럼이 공감대 형성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국제포럼을 계획대로 발족할 수 있게 힘쓰겠다"고 말했다. -
문제는 철도 연계 사업에는 북한이 지정학적으로 끼어있어 북핵 문제 해결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동체 대상국인 미국과 북한의 관계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등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때 북한의 지리적 이점과 철도를 언급하며 "북한은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미북 간 대화는 좀처럼 외교적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 최근엔 외신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마저 불거진 상태여서 어수선한 형국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북한 카드를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미국은 북한 비핵화가 남북 경협의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는 견해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 27일(현지 시각) 4·27 남북 판문점선언 2주년에 대한 언론 논평 요청에 "미국은 남북 협력을 지지한다"면서도 "남북 협력이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 진행되게 하기 위해 동맹인 한국과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은 채 남한이 철도연결 등을 매개로 남북 경협에 속도를 내는 것을 경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미·중이 무역 분쟁을 계기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도 국제포럼 성패의 변수다. EARC를 통해 실질적인 협력이 가능하다고 보는 4개 철도노선 중 중·몽·러 경제회랑 철도는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에 포함된 6개 경제협력 회랑 중 하나로, 미국보다는 중국의 이득이 큰 사업이다. 여기에 경제보복 논란으로 급속히 얼어붙은 한·일 관계도 국제포럼 설립에 적잖은 영향을 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국제철도 전문가는 "7개 참여 관계국 중 미국과 일본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국제포럼과 EARC 설립 성패의 핵심"이라며 "현재로선 미, 일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동참할지 낙관적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은 물류 분야에서 태평양 벨트에 관심 있고 일본도 평양~원산 철도건설사업에 관심을 보였던 만큼 어떤 유인정책을 쓸 건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