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원대 송현동·중학동·사간동 부지 2만1137㎡ 매각왕족집터→식산은행 사택→미 대사관 숙소…영욕의 역사 20년째 공터…삼성 '문화시설'·한진 '한옥호텔' 잇단 무산
  • ▲ 한진그룹이 매각의사를 밝힌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 뉴데일리DB
    ▲ 한진그룹이 매각의사를 밝힌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 뉴데일리DB

    코로나19(우한폐렴)발 경기침체가 깊어지면서 재계안팎에 부동산 매각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실물경제가 바닥을 치자 보유하고 있던 땅과 건물 등 유휴자산을 팔아 현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 48-9 일원 토지 2만1137㎡를 매각키로 했다. 대지가 큰 만큼 종로구 송현동을 비롯해 중학동·사간동이 같이 물려있다.

    대한항공은 지난 2월6일 이사회를 열고 송현동 부지 매각 등의 내용이 담긴 경영개선안을 의결, 지난달 삼정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매각 주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토지대장에 따르면 송현동 대지 ㎡당 가격은 지난해 1월 기준 845만7000원으로 평당(3.3㎡)당 2790만8100원이다. 부지면적이 2만1137㎡인 점을 고려하면 공시지가 가격만 무려 1787억5560만9000원인 셈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지난해 공시지가 현실화율과 올해 증가율, 종로 한복판 요지인 점, 시세 등을 감안하면 송현동 가치는 대략 5000억원이상"이라며 "이는 종로구 일년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시국이 어려운 만큼 선뜻 사겠다고 나설 곳이 있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경복궁 옆 송현동 부지는 조선시대 말까지 왕족과 고위관리들 집터였다. 그러던 1919년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은행 직원사택이 들어섰고, 해방 후에는 한미협정에 따라 미국에 무상 양도됐다. 미국은 이 땅에 미군장교와 대사관 직원 숙소를 지어 이용했다.
     
    소유권이 민간으로 넘어온 건 1997년 미 대사관 숙소이전이 결정되면서다. 삼성생명은 그해 2월26일 국방부로부터 해당부지를 1400억원에 사들였다. 당초 삼성생명은 이곳에 복합문화시설을 지으려했지만 10년 가까이 개발규제에 부딪혀 2008년 6월9일 대한항공에 2900억원을 받고 팔았다.

  • ▲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토지대장 및 등기사항전부증명서. = 박지영 기자
    ▲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토지대장 및 등기사항전부증명서. = 박지영 기자

    이듬해 1월7일 소유권 이전을 완료한 대한항공은 이곳에 지하 4층~지상 4층 150실 규모 7성급 한옥호텔을 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개발규제와 학교보건법에 발목이 잡혀 10년째 첫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당시 송현동 부지 주변에는 풍문여고(현 풍문고)와 덕성여중·고가 있었다.

    또한 송현동 일대는 북촌지구 단위계획구역에 포함돼 건축물 높이는 16m 이하로 제한되고,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건폐율 60%·용적률 200%·4층 이하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 근린생활시설만 지을 수 있다. 게다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으로 문화재청의 관련 심의도 통과해야 한다.

    주민들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카지노 등 유해시설이 함께 들어올 수 있다는 이유로 교육당국은 물론 지역주민들도 반대에 나섰다.

    이에 대한항공은 서울 중부교육청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2년 대법원은 "부지를 매입하기 전부터 전통 있는 세 학교가 있었고 정화구역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주민들 손을 들어줬다.

    최근에는 대한항공에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서울시와 종로구가 이곳을 '공원화'하겠다고 나선 까닭이다.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대항항공 측에 공개입찰 대신 서울시와 1:1 매입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울시는 대한항공 측이 공개입찰을 하더라도 다시 도시계획시설로 지정할 계획으로, 대한항공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종로구는 아예 현재 종로구청이 위치한 수송동 부지와 송현동 부지를 맞교환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송승현 대표는 "대한항공으로선 당혹스러울 수 있다. 각종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가 개별기업 이익이 걸린 협상에 개입하는 것은 압박성 행위"라며 "서울시 배짱에 예비 매수자들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서울시가 공원지정을 밀어붙일 경우 개발수익이 낮아지는 만큼 지대(地代)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진그룹은 송현동 부지 외에도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파라다이스호텔 토지(5만3670㎡) 및 건물(1만2246㎡) △왕산레저개발 지분 100%를 처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