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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범유행으로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위기에서는 조세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기회복을 촉진할 수도, 거꾸로 경기 회복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어서다.
국내에선 돈맛을 본 집권세력이 당장의 퍼주기식 정책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여권 일각에선 국민에게 수십만원씩 긴급재난지원금을 더 주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치권에선 야당까지 가세해 기본소득이 뜨거운 감자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돈 쓸 곳은 많은데 쓸 돈은 부족하다 보니 증세론이 불거진 상태다.
외국은 서둘러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모양새다. 그동안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지속 가능한 부양책이 되도록 제도 개편을 통해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렸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최근 집권당인 기민·기사당 연합은 '독일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경제 재시동을 위한 10가지 과제'라는 정책제안서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제안서에는 △법인세 인하 △최저시급 동결 또는 인하 △통일연대세 폐지 △사회보장세 40% 이하 유지 △근로시간법 개정 등이 담겼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기업의 유동성을 높여 경제 활력을 제고한다는 기조가 읽힌다.
경제전문가들은 재정의 역할만으로는 경기를 활성화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기업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경제 활력을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첩경이라고 조언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계 각국은 기업에 세제 혜택 등을 주며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최근 3년간 최저임금이 30%쯤 오르고 노동생산성 제고없이 근로시간만 단축하는 등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독일의 정책제안서에서도 알 수 있듯 세계 각국은 법인세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1.5%다. 세계 금융허브 역할을 해온 홍콩과 싱가포르는 최고 17% 수준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2월 세제개편안을 통해 최고 35%였던 법인세율을 21%로 내렸다. 프랑스도 33.3%인 법인세율을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25%까지 낮출 예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8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다. 지방세를 포함하면 27.5% 수준이다.
왜 세계 각국은 법인세를 낮추려 하는 걸까? 경제 성장을 견인하려면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데 법인세 인하가 경제 전반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어서다. OECD 국가들의 총요소생산성을 분석해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수의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생산성 증가율이 낮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018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내놓은 '저상장시대의 조세정책 방향-생산성·투자·고용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법인세 부담은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켜 기업의 생산성과 국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고서는 경제적 불황시기인 2010~2016년 중소법인과 개인기업을 포함하는 기업재무자료를 분석했다. 분석기간 기업의 평균 투자율은 2.03%, 법인세 유효세율은 평균 14.12%였다. 이 보고서는 한국기업데이터(KED) 자료를 이용해 중소기업을 포함하는 균형 잡힌 분석을 했다는 게 특징이다. 기존 선행연구는 주로 한국신용정보평가 자료를 이용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이 이뤄졌다.
보고서는 "기업이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중 하나는 생산능력을 조정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수단이 투자규모를 조절하는 것"이라며 "법인세 부담은 기업의 투자율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직접적인 의사결정 변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인세 실효세율 상승은 기업의 투자율을 유의미하게 낮춘다"면서 "기업의 업력이 길수록, 자산규모가 클수록 투자율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법인세 상승이 고용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봤다. 보고서는 법인세 부담이 기업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기업성장 측정변수로 총급여와 매출액을 활용했다. 성장하는 기업일수록 고용과 인건비 지출이 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법인세 부담이 총급여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대체로 부정적인 모습이지만, 통계적 유의성은 낮다"면서 "다만 간접적인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데, 시차를 두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즉 법인세 상승은 투자를 감소시키고, 기업은 주주들의 투자수익률 제고를 위해 인건비 축소 등의 대체효과를 통해 노동수요를 감소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인건비 지출을 직접적인 상품 생산에 드는 제조급여와 상품을 판매·관리하는 판관급여로 나눠볼 때 법인세 부담은 제조급여를 판관급여보다 2배쯤 빠르게 감소시킨다고 했다. 기업유형별 유형을 살펴보면 기업규모가 클수록, 수익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판관급여 비중이 높아진다. 돌려 말하면 법인세 부담 증가는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생산직 고용(급여) 감소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
선행 연구를 살펴봐도 법인세 부담이 기업의 투자를 감소시킨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08년 OECD의 '세금은 투자와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보고서는 1983~2001년 OECD 16개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법인세율을 35%에서 30%로 내리면 자본스톡 대비 투자비율이 1.0~2.6% 증가한다고 했다. 법인세율과 소득세 최고세율은 법인의 생산성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다고도 했다.
2010년 미국경제저널:거시경제학에 실린 '투자와 기업가 정신에 대한 법인세의 효과' 보고서는 조세와 기업활동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법인 실효세율을 10%포인트(P) 인상하면 총투자는 2.2%P 감소한다고 발표했다. GDP 대비 외국인 직접투자비율도 2.3%P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경제저널에 실린 '경제 회복과 성장을 위한 세금정책' 보고서는 조세정책이 경기회복과 장기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OECD 국가의 패널자료를 분석한 결과 법인세는 기업의 생산성과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그 정도는 업력이 오래된 기업일수록 크게 나타났다.
법인세 인하가 경제위기 때 빛을 발한다는 분석도 있다. 1970~2010년 미국 내 45개 주(州)의 법인세 증감 효과를 분석한 2016년 보고서 '자르거나 자르지 않으려면?-법인세가 고용과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법인세율 인하는 경기침체기에 효과적이었다. 법인세율을 1%P 내리면 고용률은 0.6%, 고용소득은 1% 각각 오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법인세율 인상은 노동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법인세율을 1%P 올리면 고용률은 0.3~0.5%, 고용소득은 0.3~0.6% 각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경제를 대상으로 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2005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법인세 부담이 기업의 투자활동에 미치는 효과 분석'을 보면 통계적 유의성이 크진 않았지만, 기업의 세부담이 투자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2013년 조세재정연구원의 '기업특성과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에 관한 연구'는 법인세 부담이 10% 줄어들면 순투자가 0.7% 증가하고, 그 여파로 고용은 0.2%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산업경제학회의 '법인세가 기업투자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분석'에는 법인세 유효세율 인하가 유형자산 증가율을 통해 종업원 수 증가율을 증가시킨다는 내용이 담겼다. -
일각에선 법인세 인상으로 대변되는 문재인 정부의 소위 부자증세와 관련해 기업 옥죄기 이상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2017년 부자증세 논란이 제기됐을 때 "법인세를 올리면 문재인 정부 3년간(2019~2021년) 증세액은 8조로, 이는 담뱃세인상 증세액 22조의 36%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납세자연맹은 "정치인들이 부자 증세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부자를 유치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세계는 조세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스웨덴·캐나다·호주 등은 부자를 더 유치하려고 상속세·증여세·재산세까지 없애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돈 퍼주는 정부를 어느 국민이 싫어하겠나. (다만) 국가위기 상황에선 기업과 경제를 살리는 게 답"이라며 "기업의 해외 이전이나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법인세율 인하 등 과감한 기업투자 독려정책을 펼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최소 OECD 평균인 22%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요청한다. 기업투자를 촉진하고 생산성 향상을 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는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