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고·흑자경영·고객서비스 우수한 데도 '미흡' 평가공기업 길들이기·사장 교체설 등 의견 분분전문가 "첫해 짠물평가 기조… 이젠 오를 일만 있을 것"
  • ▲ SRT.ⓒ㈜에스알
    ▲ SRT.ⓒ㈜에스알
    129개 공공기관이 19일 재정 당국의 경영평가 성적표를 받은 가운데 지난해 공기업으로 지위가 오른 ㈜에스알(SR)이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정부가 '안전' 등 사회적 가치 중심의 평가를 했다고 밝혔음에도 안전 모범기업인 SR이 낙제점인 '미흡'(D등급)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철도업계 일각에선 공기업 진입 첫해 길들이기라는 분석과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라는 의견이 봇물 터지듯 제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로 제6차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결과'를 심의·의결했다.

    이번 평가에서는 유독 철도공기업의 저조한 실적이 눈에 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경영부진으로 D등급을 받은 데 이어 고객만족도 조사 조작으로 윤리경영에도 문제가 제기돼 2중으로 기관장 경고를 받았다.

    SR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공공성을 인정받아 기타 공공기관에서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신분이 오른 SR은 공기업 진입 첫해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경영평가에서 코레일, 대한석탄공사와 함께 D등급을 받은 데 이어 상임감사 평가에서도 한국전력기술㈜과 함께 '미흡' 평가를 받았다.

    SR 내부에선 이번 평가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우수'(A등급) 평가를 받아도 모자란 데 낙제점은 말이 안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철도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SR은 지난해 안전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행정안전부 주관 안전문화대상을 받았고, 재난시나리오 최우수상, 재난대비상시훈련 우수상, 노동부가 주관한 안전평가에서도 A등급을 받았다. 철도업계 최초로 안전보건경영시스템도 인증을 받았다.

    열차운행의 기본인 정시율(99.9%)에서도 눈에 띄는 실적을 올렸다. 안전사고도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올해 기재부가 밝힌 안전성 측면에서 감점을 받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경영에 있어서도 올해는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로 타격을 받았지만, 지난해까지 공기업 중에선 3년 연속 흑자기업에 뽑힐 정도로 실적도 좋았다.

    코레일이 경영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성과급을 더 받으려고 고객만족도 조사를 조작한 것과 달리 SR은 지난해 부폐방지시책 최우수기관으로 뽑혔고, 지난해 철도노조가 파업했을 때도 안정적으로 승객을 실어날랐다. 지난해는 채용 비리도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SR 관계자는 "지난해 사고도 없었고 (코레일처럼) 고객만족도 조사를 조작한 것도 아니고, 같은 D등급을 받은 석탄공사처럼 만년 적자도 아닌 데 낙제점을 받은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 ▲ KTX산천-SRT.ⓒ연합뉴스·SR
    ▲ KTX산천-SRT.ⓒ연합뉴스·SR
    상황이 이렇다 보니 SR과 철도업계 일각에선 경영평가 결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공기업 진입 첫해 길들이기 차원에서 '짠물' 평가를 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기재부가 공기업으로 진입한 첫해 평가점수를 후하게 주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른 일각에서는 이번 평가 이면에 정치 공학적 셈법이 깔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철도공기업이 나란히 낙제점의 평가를 받은 것을 계기로, 정치권의 낙하산 내리꽂기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견해다.

    과거 경영평가에 참여한 적 있는 한 철도전문가는 "경영평가를 단면만으로 볼 수만은 없다"며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우선 경영평가 첫해 너무 좋은 성적을 주면 해당 기관이 기고만장해 사고를 칠 수도 있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의 의미로 평가를 깐깐하게 했을 수 있다"며 "SR로서도 나쁘게만 볼 게 아니라 이번 평가를 계기로 분발해 앞으로 우수등급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는 이어 "SR이 황금노선을 운영하고 있어 경영실적에선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도 평가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면서 "경영평가할 때 규모가 작은 기관은 규모가 큰 기관(코레일)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하는 기조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한편으론 코레일 때문에 SR이 불이익을 당한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코레일이 고객만족도 조사 조작과 실적 부진으로 낙제점을 받은 상황에서 경쟁상대인 SR이 대조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 코레일에 쐐기포를 날리는 격이 된다. 이 경우 거꾸로 코레일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평가를 엇갈리게 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