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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의 지각변동을 기대하게 했던 '빅딜' 두 건이 '노딜'로 끝날 전망이다. 코로나19 직격탄으로 제주항공-이스타항공에 이어 HDC현대산업개발-아시아나항공 M&A도 사실상 좌초 위기에 놓인 것. HDC도 제주항공처럼 '시간끌기-명분쌓기-포기선언' 수순의 데자뷔를 연상케하고 있어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HDC가 지난 24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공문을 보내 거래 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다음달 중순부터 12주 정도 아시아나항공과 자회사들의 재실사를 제안했다.
이는 금호산업이 지난 14일 HDC에 내용증명을 보내 기업결합심사 등 선행조건이 충족됐으니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을 서둘러 마무리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한 응답 차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HDC의 답변은 사실상 계약파기 움직임으로 해석되고 있다. 딜이 무산된 제주항공-이스타항공의 경우와 흡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미충족 선행조건을 이유로 딜 종료를 늦추는가 하면, 향후 법적 소송이나 책임론에 대비해 명분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6월 9일 HDC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HDC는 “아시아나항공은 계약 체결 당시와 비교해 2019년말 기준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로 인식되고 1조7000억원 추가 차입으로 부채가 4조5000억원 증가됐다”며 “부채비율은 2020년 1분기말 현재 계약 기준인 2019년 반기말 대비 1만6126%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4월 9일부터 15차례 자료 요청을 했지만, 10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충분한 공식적인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아시아나항공은 인수준비단 및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영진이 요구하는 자료를 성실하고 투명하게 제공해 왔다며 반박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때부터 HDC가 명분쌓기에 나섰고, 계약 해제가 이뤄질 경우 귀책사유는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계약금 2500억원을 놓고 향후 진행될 반환 소송을 염두한 움직임으로도 보여진다.
업계 관계자는 “HDC의 행보는 계약 파기를 위한 명분쌓기에 불과해 보인다”며 “산은이 중간에 있기 때문에 제주항공처럼 이스타항공의 대규모 실업 사태에 대한 부담은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
HDC는 지난달 25일 정몽규 회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전격 회동을 했지만, 특별한 움직임 없이 침묵을 지켜오다가 금호산업이 내용증명을 보낸지 열흘만에 재실사 카드를 꺼냈다.
이에 대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신중한 모습이다.
금호산업 관계자는 “입장을 밝힐 만한 상황이 아니다”며 “향후 입장이 정리되면 밝히겠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도 “성공적인 M&A 종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으며, 앞으로도 당사가 거래종결까지 이행해야 하는 모든 사항들을 성실하게 이행할 것”이라며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을 내놨다.
산업은행도 HDC 제안에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미정이다. 내부적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HDC-미래에셋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27일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30.77%)을 3228억원에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이후 2조177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빅딜을 진행할 예정이었다.